동두천, 여전히 배제된 여성들의 도시

[3·8 세계여성의날 특별기획④] 배제된 여성들의 도시

<3·8 세계여성의날 특별기획>
① 동두천, 턱거리마을에는
② 기지촌 마을, 빨래하는 여성들
③ 기지촌 엄마와 마미(mommy)
④ 동두천, 여전히 배제된 여성들의 도시
⑤ 동두천의 이집트 여성 난민, 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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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상처, 몽키하우스와 무연고 묘지

소요산 주차장 인근에는 버려진 폐허 건물 하나가 숨어있다. 지도상에도 나오지 않는 곳. 굳이 찾으려 애쓰지 않는 한 눈에 띄지 않는 곳. 마치 누가 꽁꽁 숨겨놓기라도 한 듯 잡초와 이끼가 가득 찬 건물. 그곳은 과거 동두천 기지촌에서 일하던 여성들을 가두던 성매매 여성 낙검자 수용소, 몽키하우스다.

과거 박정희 정부는 주한미군 주둔을 위해 기지촌 성매매 산업을 활성화시켰다. 기지촌 성노동 여성들을 ‘달러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로 치하하기도 했다. 실제로 동두천 기지촌 미군 전용 클럽에서 한 해 동안 벌어들인 돈은 약 40만 달러에 달했다. 당시 한국의 연간 총 수출액(4천만 달러)의 1%에 달하는 규모였다. 하지만 ‘달러 애국자’라는 애칭이 무색하게도, 정부는 성병 관리를 목적으로 이들을 강압적으로 감금하곤 했다.

기지촌 성노동 여성들이 국가로부터 감금된 곳은 ‘몽키하우스’라 불리던 낙검자 수용소였다. 느닷없이, 그리고 강압적으로 감금된 여성들은 이곳에서 페니실린 주사를 맞았다. 이들은 극심한 통증을 겪었고, 일부는 과민성 쇼크로 사망하기도 했다. 수용소에서 탈출하기 위해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여성들도 있었다. 수용소 창살에 갇힌 여성들이 마치 동물원 원숭이 같다고, 페니실린 부작용으로 허리가 굽어진 것이 꼭 원숭이 같다고, 그곳은 ‘몽키하우스’라고 불렸다.

수많은 여성들의 상처와 폭력으로 얼룩진 몽키하우스는 지금 소요산 주차장 인근에 버려지듯 방치돼 있다. 깨진 유리창과, 무너져 내리는 천장과, 발 디딜 틈 없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쓰레기들, 빨간 스프레이로 벽에 새겨놓은 낙서까지, 그 모습은 과거 그곳에 갇혀 있던 여성들의 삶만큼 처참하다.

이름 없이 죽어간 여성들은 동두천시 상패동에 위치한 무연고 묘지에 묻혔다. 낙검자 수용소처럼, 이들의 무덤은 상패공동묘지 곳곳에 조용히 숨겨져 있다. 사람이 묻힌 봉분일까, 그저 흙더미일까, 오래 들여다봐야 그들의 흔적이 보인다. 묘비는커녕 이름도, 삶의 기록도 없이, 그저 작은 나무막대기 하나에 새겨진 세 자리 숫자만이 그들의 존재를 일러준다. 아무도 찾지 않는, 그래서 복원되지 않는 그곳에 과거 여성들이 겪었던 폭력이 함께 묻혀 있다.

[출처: 워커스 취재팀]

가장 번화했던 도시, 가장 화려했던 동네

동두천은 미군기지로 인해 흥망성쇠를 겪어온 도시다. 1950년 7200명이던 동두천 인구는 미군기지와 기지촌 형성에 따라 1970년대 6만여 명으로 10배가 늘었다. 1966년 당시 전국의 기지촌에서 일하던 2만 명의 여성 중, 6천 명 이상이 동두천에서 일을 했다.¹ 그리고 동두천 경제활동인구 47%가 미군 관련 서비스업에 종사했고, 28%는 장사를 했다. 그 가운데서도 캠프 케이시가 위치한 보산동은 동두천 일대에서 가장 번화한 기지촌이 형성된 동네였다.

하지만 2004년 이라크 전쟁 당시, 동두천에 주둔하던 미군 50%가 빠져나갔고 평택 미군기지 이전으로 병력이 분산돼 현재 미군 규모는 10분의 1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형성돼 온 보산동 일대 상권은 자연스레 몰락의 길을 걸었다.

보산역 캠프 케이시 인근에 조성된 외국인 관광특구에도 사람의 발길이 뜸했다. 아주 가끔, 미군이 지나갈 때면 오래된 미군 전용 양복점 상인들이 서둘러 나와 유창한 영어로 호객행위를 했다. 보산동에서 다리하나 건너에 위치한 상패동도 미군기지 철수로 쇠락한 마을이 됐다. 상점들이 사라지고 사람의 발길이 끊긴 그 곳은 동두천시 광암동, 턱거리마을의 모습과 흡사했다.

동두천은 미군부대로 인한 여성 폭력이 일상적으로 재생산되는 도시였지만, 미군부대 없이는 독자적 생존이 불가능한 기생적 도시이기도 했다. 그래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용인했고, 여성들은 도시 경제의 희생양이 됐다. 미군 규모가 축소되고, 상권이 쇠락한다고 이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은 또 아니었다. 동두천시의 지난해 재정자립도는 12.7%로, 경기도 평균인 40%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실업률은 5.1%로 75개 시 중 6번째로 높다.

[출처: 워커스 취재팀]

고령화도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는 2004년 7771명에서 2017년 1만7011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2019년 기준 동두천시 인구의 18.4%가 노인이며², 이곳의 평균연령은 43.7세로 경기도 평균보다 3.4세가 높다. 도시 양극화도 진행됐다. 동두천시 지행동을 중심으로 신시가지인 아파트촌이 조성되면서,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있는 주민들은 신시가지로 거처를 옮겼다. 쇠락한 옛 시가지에 남은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동두천에서 문화운동을 하고 있는 이경렬 활동가는 “지행동과 다른 동네 사이의 경제적 격차가 매우 크며, 특히 소득수준이 낮은 동네에 사는 주민들은 경제적, 문화적인 고립을 겪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여성들의 삶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동두천시가 지난해 발간한 ‘사회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이 도시의 월평균 가구 총 소득은 ‘100만 원 미만’이 27.3%로 가장 많았다. 2017년 전국 월평균 가구 소득은 100~200만 원 미만이 23.7%, 200~300만 원 미만이 19.2%, 100만원 미만이 18.4% 수준이다. 그리고 동두천시에서 월평균 소득이 100만 원 이하인 여성 비율은 51.3%로, 남성(17.2%) 대비 3배가 높았다. 주택 점유형태 역시, 자신의 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 중 남성의 비율은 77.2%였지만, 여성은 22.8%에 그쳤다. 이주계획이 있는 주민들 중, 경제적 형편 때문에 이주를 계획한 여성비율은 23.9%인 반면, 남성은 6.9%에 불과했다. 삶에 만족하고 있다는 응답에서는 남성(37.7%)이 여성(33.6%)보다 4%가량 높았다.

  턱거리마을에 건립된 LNG복합화력발전소 [출처: 워커스 취재팀]

그리고 배제된 이주 여성들의 도시

이와 함께 이 도시는 다시금 배제된 여성들로 채워졌다. 과거 대다수가 한국인이었던 기지촌 성노동자는 필리핀, 러시아 등의 외국인 여성들로 교체됐다. 이들은 중개업자로부터 E-6(예술흥행) 비자를 발급받아 유흥업소에서 일을 하고 있다. 2018년 기준, 동두천에 거주하는 등록 외국인 여성은 1358명이며, 그들 중 23.12%(341명)은 E-6비자를 발급받았다. 같은 비자를 발급 받고 들어온 외국인 남성은 15명에 불과했다.

미군 규모가 축소되고 상권이 몰락해도, 여전히 미군과 내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성매매업소는 성업 중이다. 동두천중앙역 인근 ‘양키시장’ 일대에는 청소년 24시간 출입 금지 구역이 존재한다. 골목 곳곳에 드리워진 가림막은 50년간 이어진 동두천의 과거이자 현재이기도 하다. 미군부대가 위치한 보산동과 광암동(턱거리마을)을 비롯한 생연동 등에서도 수많은 클럽들이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전쟁이나 정치적 박해 등을 피해 한국으로 탈출한 난민들도 동두천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은 쇠락한 도시인 동두천 보산동의 빈집으로 들어갔다. 저렴한 비용으로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서다. 이경렬 활동가는 “보산동 인근에 난민들이 많다. 미군이 철수하면서 빈집이 된 곳에 저렴한 월세를 내며 살고 있다”며 “한국에 막 도착한 난민들에게 버스나 택시 기사들이 동두천을 추천해 주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현재 보산동에 약 700명의 난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난민들은 이곳에서 또 다른 차별과 배제를 경험한다. 지난해 9월, 동두천에 가톨릭 난민센터가 건립될 예정이었으나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주민들은 가뜩이나 쇠락한 동네에 난민 시설이 들어서면 지역 경제가 더욱 위축될 것이라 주장했다. 결국 천주교 의정부교구는 동두천시 보산동에 마련된 ‘가톨릭 난민센터’ 개소를 무기한 연기했다. 당시 의정부교구는 입장문을 통해 “센터운영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마음과 우려를 이해”한다면서도, “이주민 중에는 피할 수 없는 이유로 고향을 떠나, 살 터전을 찾아온 난민 신청자들이 있다. 이들은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밝혔다.³

  턱거리마을의 유흥주점과 각종 클럽들 [출처: 워커스 취재팀]

1) 땅과 기억: 동두천 턱거리마을과 공동체 아카이브, 경기문화재단 북부문화사업단, 2017
2) 2019년 기준 경기도의 노인인구 구성비는 11.9%다.
3) 동두천 ‘가톨릭난민센터’ 개소 연기, 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9.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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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

    리사야 오빠는 널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