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착한 피해자’이고, ‘나쁜 피해자’인가

[꿘 여성의 생존기]


여전히 우리 사회는 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호소할 경우 피해자의 말을 신뢰하고 도우려 하기보다, 그 여성이 진짜 피해자인지 여부를 판단하려 한다. 피해자가 겪는 많은 2차 피해는 성폭력에 대한 몰이해와 잘못된 편견 때문에 벌어진다. 다행히 최근 미투 운동과 반성폭력 운동이 전개됨으로써 운동 사회 내에서 2차 가해 문제가 많이 지적됐다. 또한 여성 진술의 신빙성을 판가름하는 근거로 여성의 옷차림이나 성 이력, 기타 장애나 병력 유무 등을 드는 것이 2차 가해라는 인식이 많이 확산됐다. (물론 여전히 이런 짓을 자행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최근 운동 사회에서의 2차 가해 양상은 더욱 정교해졌다. 피해자를 노골적인 거짓말쟁이로 모는 것이 2차 가해로 지적되자, 그 대신 피해자에게 자의적이고 강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 또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피해자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방식으로 2차 가해 방식이 바뀌고 있다. 소위 ‘이기적인 피해자’를 처벌·배제해야 한다는 잘못된 태도들이 은연중에, 혹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이들은 피해자를 ‘가해자와 운동의 미래를 걱정하며 사적인 보복이 아닌 공동체의 신뢰 회복과 성평등 문화를 원하는, 적법한 절차를 통해 제소하는 피해자’와 ‘피해자 권력을 휘두르며 본인의 말을 듣지 않으면 2차 가해로 몰아가고, 가해자를 영구 추방할 것을 주장하는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피해자’로 나눈다.

즉, 이전에는 피해자들을 ‘진짜 피해자’와 ‘가짜 피해자’로 구분했다면, 지금은 ‘착한 피해자’와 ‘나쁜 피해자’로 분류한다. 이처럼 피해자를 분류·규정·심판하는 태도는, 반성폭력 운동에서조차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합리적이고 급진적인 비판이라는 말로 포장된다. 하지만 이는 피해자를 ‘진짜 피해자’나 ‘꽃뱀’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낡은 시선의 변형에 불과하다. 나아가 모든 성폭력 피해자를 침묵하게 한다는 점에서 백래시의 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성폭력 피해자에게 엄청난 압박감과 자기검열을 강요한다.

예를 들어, 나 또한 과거 우호적인 지지자에게 “이한 씨는 ‘OO 사건의 피해자’처럼 대리인 뒤에 숨어 있지 않고 직접 나서서 용기 있게 말하잖아요. 피해자인데도 ‘그 사람’처럼 비이성적으로 굴지도 않고 재발 방지 대책 등을 고민하는 게 정말 멋있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 나는 고마우면서도 특정 피해자를 나쁘게 말하는 것이 불편했다. 하지만 그보다 ‘내가 혹시 누군가에게 ‘그 피해자’처럼 보이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가장 컸다. 이후에도 요구 사항을 말하거나 진술할 때면 ‘그 피해자’처럼 보일까 봐 눈치를 보게 됐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지 못했다. 나도 ‘기분 나쁘면 뭐든지 2차 가해로 몰고 화내는, 예민하고 말이 안 통하는 사람’처럼 여겨질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가해자의 말만 믿기로 작정한 사람과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려는 사람에게 나의 노력 여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쁜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기검열을 했는지도 그들에게는 중요치 않았다. 실제로 내가 공론화한 성폭력 사건의 2차 가해자들은 나의 문제 제기를 운동이나 사회정의와는 무관하며, 개인적 복수심, 남을 헐뜯는 짓, 비합리적 분노에서 비롯된 거짓말로 만들려 했다. 하지만 그들이 근거로 제기했던 것은 내가 평소 그 단체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는 점, 다른 성폭력 피해를 언급한 적이 있다는 점 등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재판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증거’라며 SNS 계정의 비공개 글과 고통 호소의 글을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지지하는 누군가에게 나는 수년간 가해자들과 싸우며 운동 사회 문제를 바꾸기 위해 투쟁하는 ‘용기 있고 훌륭한 피해자’였다. 반면, 가해자들과 그 주변인에게는 ‘뭘 해도 문제 있는 피해자(심지어 피해자도 아닌 거짓말쟁이)’일 뿐이었다.

이처럼 많은 이들이 ‘착한 피해자’와 ‘나쁜 피해자’가 실재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피해자에 대한 평가와 규정은 그저 믿고 싶어 하는 욕망의 반영이자, 자기 행동에 대한 명분이며 구실일 뿐이다. 피해자가 ‘착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해서 피해가 전부 거짓인 것도, 피해자 인권이 존중받을 가치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착하지 않은’ 피해자의 문제제기를 무의미하거나 거짓으로 치부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피해자가 사적인 동기로 피해를 고발하면 들을 가치도 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이것은 피해자의 문제가 아닌 주변인들의 문제이며, 가해자에게 감정이입 함으로써 폭력에 침묵하는 행동이다.

또한 ‘착한 피해자’와 ‘나쁜 피해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가해자가 대가를 치렀으면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피해자가 이런 욕구를 분출했다는 이유로 ‘반성폭력 고민과 헌신이 없는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 ‘이타적/공익적 욕구’와 ‘이기적/사익적 욕구’는 언제나 한 사람 안에 혼재돼있다. 하지만 많은 피해자는 개인적 욕구와 감정을 얘기하는 순간, 자신이 ‘나쁜 피해자’로 여겨질 것을 알기에 자기검열과 자기혐오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금기시돼온 측면도 있다. 그러므로 피해자가 자신의 권리를 말하는 것은 반성폭력 운동의 퇴보나 피해자 권력의 남용이 아닌, 운동이고 진보이다.

물론 내심 가해자의 파멸을 바라는 피해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가해자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킬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한 사례는 없다. 대부분의 성폭력 피해자는 단순히 자신의 감정 배설을 목적으로 사건 해결을 요구하지 않는다. 피해자는 누구보다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진 주체다. 물론 모든 피해자가 성폭력 문제의 노련한 해결책을 갖고 있지 않기에, 피해자의 해결방식에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성폭력 해결의 책임은 피해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피해자와 소통하고 조력하며 함께 문제를 해결할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2차 가해로 지목될까 봐 무서워서 말을 못 하겠다’며 피해자와 소통하지 않으면서, 제 3자의 위치에서 피해자를 손쉽게 평가하고 비난하는 것은 책임 회피이며 남성 중심적 문화, 권력 구조에 동조하는 행동이다. 이제는 피해자들을 타자화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대등한 운동 주체, ‘동지’로서 존중하고 소통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성폭력에 대한 책임을 피해자에게 묻는 잘못된 관습과 인식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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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저씨

    한국은요 "운동권"에서도 성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지만. 어떤 나라의 노동운동 역사를 보면 아예 나오지도 않아요. 또 한국은 성에 대한 논란이 그토록 많으면서도 잘 고쳐지지도 않더라고요. 당신 같은 사람은 성에 대한 논란이 오히려 밥벌이로는 적격이겠네요.

  • 위드유

    아저씨. 개념은 어디로 가셨나요. 한국의 운동권에서만 이런 논의가 무성한 게 아니라, 성폭력 문제가 해결이 잘 안 되고 있는 거구요, 외국은 이런 논의가 이미 아주 많아서 어느 정도 기준이 만들어지고 나름 해결이 되고 있는 거구요, 성폭력에 대한 진지한 제기는 밥벌이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기여인 겁니다. 한국의 운동권에서 이런 문제가 해결이 잘 안 되는 이유는 본인을 돌아보면 아시겠죠.

  • 아저씨

    또라이가. 외국은 성에 대한 기본교육이 잘 되어 있어서 노동계에서 따로 논란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 말은 한국과 같은 성 논란이 많은 곳에서는 패미니스트가 가장 성적 건강성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요. 선진국에서는 모지라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겠지만.

  • 아저씨

    "운동권"은 "논란"이라고 하지만 가부장제의 성은 잘 아시나. 가부장제의 성은 1부 1처제의 형식으로 1부 다처제를 하고 있다고 한다. 성이 중세에서 현대로 넘어오며 그 건강성을 회복하기도 했지만 1부 다처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평가를 한다. 그 예로 고위층과 대기업은 고급술집과 애인 등으로 성적 만족도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어떤가 "떡검사"라는 말은 법률적으로 진보된 한국에서도 민낯으로 회자되고 있지 않는가. 그렇지만 니들은 실상 낮은 곳에서 지배계급의 몽상이라도 하고 싶어서 그 모든 흉계 등을 동원하여 노동계와 하층을 핍박할 궁리를 하지만.

  • 위드유

    에휴. 뭐 더 대꾸할 의미가 없네요. 게시판 물 흐리며 좋은 글에 흠집만 내기 그만하시고 좀 사라져 주시길

  • 아저씨

    에휴, 이념과 성에 대한 상식도 없는 아한테 인간의 상식까지 바라지는 않는다

  • 아저씨

    위드유도 "운동권"에 끼어든 00인가요. 다분히 논리가 그렇군요. 혹시 노연에 있는? 그곳은 대필이 아니라, 남의 것 복사까지 해가는 곳이긴 합니다만. 어쨌거나 지금까지 좋게 봐주고 있어요. 그리고 그곳은 지금 실수하고 있는 것이 있지요. 미국의 진보주의자들은 거짓말도 그렇게(?) 해왔답니다. 진보와 머저리를 섞은 노연. 그렇게 미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자신의 국가에 대해서는 결코 책임을 묻지 않고 다른 곳으로 돌려왔답니다.

  • 연설력

    와 얜 진짜 꼴통이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