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弄談)같은 유하네 농담(農談)

[유하네 농담農談]

  유하와 세하 [출처: 이꽃맘]


“깍! 깍!”
요란한 까치소리에 눈을 뜹니다. 집 앞 커다란 은행나무 꼭대기. 까치 두 마리가 번갈아가며 나뭇가지를 물어와 집을 짓고 있습니다. 집 앞 텃밭에는 아직 서리가 성성하지만 까치는 벌써 새봄을 준비합니다. 그 속에 유하네가 있습니다.

유하네는 원주시 호저면 광격리 영산마을에 삽니다. “시골 가서 농사나 지을까”했던 장난스런 농담이 현실이 된지 햇수로 8년, 만으로는 7년이 꽉 찼습니다. 원주에서 농부로 농사이야기를 만든 지 3년 차입니다.

2013년 겨울, 유하가 막 일 년을 살아냈을 즈음이었습니다. 유하에게 자유와 평화 뜻을 담은 이름을 선물한 지 일 년이 됐을 무렵 유하네는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로 갔습니다. 자유롭고 평화롭게 사는 것은 무엇인지 찾아가는 여행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농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유하네에게 농부란 자본주의를 넘어 대안적인 삶을 고민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유하네가 되려는 농부는 스스로 가난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스스로 가난을 선택한다는 것은 경쟁과 욕망으로 가득 찬 자본주의를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돈이면 뭐든 되는 자본주의 쳇바퀴를 벗어나 조금은 느리게 살고 싶었습니다. 소비하기 위해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나누기 위해 무언가 만들어 내는 것,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마음을 가득 채우는 삶을 만들어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유하네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농사를 짓기로 했습니다. 더 많은 농산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땅이며, 물이며 다 죽이는 것이 아니라 느리더라도 땅을 살려 더불어 사는 농사를 짓는 것이 목표입니다. 어느새 농사의 필수품이 된 비닐을 쓰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화학비료며 제초제를 쓰지 않는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매일 풀과 씨름 중인 유하네를 보고 앞집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차지시만 말이죠.

[출처: 이꽃맘]

“유하 같아”
초여름 어느 날, 세 살짜리 유하가 마당에 앉아 엄마가 따다준 완두콩을 깝니다. 야무진 손끝으로 완두콩 깍지 끝을 쭉 잡아 가르면 탱글탱글 완두콩이 얼굴을 내밉니다. 유하가 영롱한 연두빛 동글동글 완두콩 한 알을 집어 들고 “예쁘지?” 합니다. “크레파스에도 없는 참 예쁜 색이네”하니 “유하 같아”라고 답합니다.

유하를 낳고 ‘사람을 낳아 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맞벌이가 필수인 도시에서 돌도 안 된 유하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바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정답일까. 우리는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유하, 세하의 시간 속에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스물네 시간 함께 자고, 함께 먹고, 함께 일하고, 함께 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유하, 세하의 삶이 정해져있는 답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답을 함께 만드는 순간들이 모이고 쌓이기를 바랐습니다. 유하는 오늘도 ‘제 밥값은 누구나 해야 한다’며 개똥을 치우고, 잔가지를 모아 땔감 더미를 만듭니다.

유하네의 농사이야기(農談)를 나누려고 합니다.

농사는 비단 농작물을 생산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어느 선배 농부는 “하늘 농사, 땅 농사, 아스팔트 농사까지 지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늘을 이고 땅을 딛고 농사를 짓다보니 세상 이야기가 더 잘 들리는 듯합니다.

시골 마을 어디서든 심각한 얘깃거리로 나오고 있는 노령화, 인구절벽의 문제, 농민 스스로가 망가뜨리고 있는 자연, 막무가내로 지어지는 태양광 발전소며 축사들, 아이들이 없다는 이유로 사라지고 있는 작은 학교들 등등. 도시의 삶에 가려진 문제들이지만 결국 우리에게 심각한 영향을 줄 많은 이야기들이 시골에 있습니다.

이런 시골의 이야기, 농촌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유하, 세하가 만나고 있는 동화 같은 이야기들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유하네가 만들어가고 있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이야기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답답한 삶 속에서 유하네의 이야기들의 작은 숨구멍이 되길 바라봅니다.

작은 이야기

겨울은 농한기입니다. 땅이 꽁꽁 어니 땅도 쉬고 사람도 쉬는 때이죠. 하지만 유하네는 쉴 수가 없습니다. 유하네 밭은 한동안 사람이 만지지 않은 곳이 많아 그곳에 자리 잡고 있는 잡목들을 정리해야 올해 봄부터 농작물을 심을 수 있거든요. 톱을 들고 숨어 있는 밭을 찾아 나섭니다. 화전민이 따로 없네요. “유하야 피해!!” 유하아빠가 소리를 지르니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가 우지끈 넘어갑니다. 엄마 뒤에 숨었던 유하, 세하가 얼른 뛰어나오며 “우아~ 놀이터가 만들어졌다!”합니다. 다른 나무에 걸쳐 반쯤 쓰러진 나무 위에 유하가 올라섭니다. 울렁울렁 엉덩이로 앉아 눌러보기도 하고 아슬아슬 나무 위를 걸어도 봅니다.

유하, 세하가 놀고 있는 사이, 우리는 나뭇가지를 정리하고 주변을 돌아봅니다. 언제 썼는지도 모를 폐비닐 뭉텅이를 발견했습니다. “어휴... 또 비닐이야” 손으로 풀을 뽑는 일을 줄이겠다고 밭에 깔았던 비닐들이 아무렇게나 버려져 나무들 사이며, 땅 속이며 썩지도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겁니다. 검은 폐비닐들을 보며 유하, 세하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비닐들이 이렇게 많으니 땅이 제대로 숨을 쉴 수 있겠어?” “그러게 나도 언젠가 장난으로 비닐봉지를 머리에 써 봤는데 숨을 쉴 수 없더라고. 정말 깜짝 놀랐어” 나무에서 내려온 유하, 세하와 함께 얼른 비닐들을 모읍니다. 땅이 답답하지 않게, 숨을 쉴 수 있게 말이죠.

통계에 따르면 농촌에서는 매년 약 32만 톤의 영농 폐비닐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유하네는 꼭 필요한 곳에만 전분으로 만들어 6개월이면 썩어 없어지는 친환경 비닐을 사용해보려고 합니다. 강원도는 너무 추워 비닐 없이 고추농사를 짓기 참 어렵거든요. 비닐 없이 농사짓다 고추농사가 다 망해버린 유하네 고추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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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속에서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감동적이네요.
    읽는동안 할링되는 느낌.
    좋은 글 감사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