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살해’에 맞선 멕시코 여성의 총파업

[INTERNATIONAL3]안전할 권리, 삶의 권리를 요구하다

  멕시코 3월 8일 장면 [출처: https://desinformemonos.org/]


피해자. 살해당하는 여성들

2020년 2월 9일, 멕시코시티에서 에릭 프란시스코가 잉그리드 에스카미야를 살해했다. 그들은 5년간 연인이었으며 함께 살고 있었다. 음주 문제로 다툰 후 에릭 프란시스코는 잉그리드 에스카미야의 목을 여러 차례 찔러 살해했고, 시신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에릭 프란시스코는 전 부인에게 범행을 털어놓았고, 전 부인의 신고로 현장에서 체포됐다.

다음날 2월 10일 황색언론매체인 파사라(¡Pásala!)와 라프렌사(La Prensa)가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범행 현장의 피해자 사진을 표지에 실었다.

2월 11일, 또다시 멕시코시티에서 일곱 살 파티마가 하굣길 중 엄마를 기다리다가 실종됐다. CCTV에는 한 여성이 파티마를 데려가는 모습이 담겼다. 파티마는 나흘 후인 15일 학교에서 5km 떨어진 곳에서 비닐포대에 담긴 시신으로 발견됐다. 성폭행당한 흔적이 있었고 시신은 훼손돼 육안으로 식별이 어려웠다. 파티마를 데려간 여성은 글라디스 지오바나로 밝혀졌고, 남편인 마리오 알베르토와 함께 용의자로 체포됐다. 글라디스 지오바나는 파티마 어머니의 친구였다.

글라디스 지오바나는 남편의 협박에 못 이겨 파티마를 데려갔다고 주장했다. 마리오 알베르토는 ‘어린 애인’을 구해오지 않으면 두 딸을 성폭행하겠다고 협박했고, 파티마를 성폭행한 후 아내를 시켜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 파티마의 어머니를 비롯한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글라디스 지오바나는 오랫동안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다.

2월 두 명의 피해자가 멕시코시티에서 연달아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두 사건에는 거의 30년에 가까운 멕시코 여성 살해의 복잡한 가해 구조가 반영돼 있었다. 피해자와 가까운 관계인 피의자, 또 다른 피해자이면서 공범이 된 여성 글라디스 지오바나, 피해자의 사진을 표지에 게재함으로써 여성의 신체를 전시용 사물로 취급하는 언론, 글라디스 지오바나가 남편의 폭력과 협박에 시달리는 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 사회, 실종된 7살 파티마를 구조하지 못한 경찰, 이 모두가 여성 살해의 구조 안에서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 구조 속에서 언제나 피해자였거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여성들이 여성 살해를 멈추기 위해 ‘#우리여성없는하루’ 해시태그를 퍼뜨리며 “9일 여성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를 모토로 멕시코의 여성 총파업을 조직했다.

  파업 호소문

죄명. 여성 살해

멕시코 당국과 언론은 두 사건을 즉각 ‘여성 살해’로 규정했다. 대다수의 언론은 두 사건의 용의자를 ‘여성살해범(feminicida)’으로 지칭했다. 영어로 페미사이드(femicide), 한국어로 ‘여성 살해’로 번역할 수 있는 스페인어 페미니시디오(feminicidio)는 긴 역사를 가진 개념이자 법률 용어다. 살해 대상을 기술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개념으로 ‘여성 살해’를 사용하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아직 생경하다. 이 개념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미묘한 쟁점들에 대해 아직 적확한 입장을 표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¹

그러나 위의 두 사건을 멕시코 수사기관, 사법부, 언론이 정확히 ‘여성 살해’라고 규정할 수 있었던 이유는 멕시코에서 2012년 ‘여성 살해’를 연방형법 상 범죄유형으로 규정하고 현재 28개 주 형법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미국과 국경지대에 위치한 후아레스 시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살해사건들이 사회적 쟁점이 된 후 피해자 가족, 활동가, 학자, 인권운동가들이 오랜 투쟁을 통해 법 개정에 성공했다. 멕시코에서 법률용어로서 도입된 ‘여성 살해’는 페미니즘 운동의 성과였다.

2012년 멕시코는 법 개정을 통해 연방형법에 제325조를 추가했다. 이에 따르면 “여성 살해는 성별을 이유로 여성의 생명을 빼앗는 죄다. 다음과 같은 경우 성별을 이유로 자행된 살해로 간주한다. 첫째 어떤 형태로든 피해자에게 성폭력의 흔적이 발견되는 경우, 둘째 피해자의 사망 혹은 시체 간음 이전 혹은 이후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하는 상처 혹은 신체 절단이 발견되는 경우, 셋째 피의자가 가정, 직장, 학교에서 피해자에서 어떤 형태로든 폭력을 행사한 전례와 기록이 있는 경우, 넷째 피의자와 피해자 사이에 정서적 관계, 애착 관계 혹은 신뢰관계가 존재하는 경우, 다섯째 피의자가 피해자에게 범죄사실과 관련된 협박, 성폭력 혹은 상해를 입혔다는 기록이 있는 경우, 여섯째 피해자가 사망 전 얼마 동안이든 연락두절 상태였던 경우, 일곱째 피해자의 시신이 공공장소에 노출 혹은 전시된 경우이다.” 여성 살해로 규정되면 40년 이상 6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고, 여성 살해로 분류되지 않으면 살인죄로 처벌받는다. 멕시코 이외에도 라틴아메리카 다수의 나라에서 형법 상 여성 살해를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여성 살해’는 단순히 ‘여성을 살해한다’는 기술에 머물 수도 있었을 단어다. 하지만 종국에는 가부장적, 남성중심적, 이성애중심적 사회 구조가 특정 성별을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개념으로 의미화되기 시작해, 불행히도 멕시코에서는 법률용어로까지 자리를 잡게 됐다. 하나의 단어가 법률용어로 안착하는 것은 그 단어가 지시하는 명백한 행위가 실재함을 사회적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멕시코 사회는 25살 잉그리드와 7살 파티마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연인과 이웃남성에 의해 살해당했으며, 파티마를 납치한 글라디스 지오바나는 가부장적 구조 속에서 남편의 폭력에 의해 살인자가 됐음을 인정한다. 지난 30년 동안 페미니스트들의 투쟁으로 2020년 잉그리드 에스카미야와 파티마는 ‘여성살해’ 피해자로 불리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멕시코는 ‘여성 살해’라는 언어를 가지고 있고, 그 언어를 통해 가부장제가 휘두르는 폭력에 이름을 붙일 수 있으며, 그 규모를 수치화할 수 있는 근거를 갖추고 있다.

  소칼로 광장에 적힌 여성살해 피해자의 이름들 [출처: https://gluc.mx/marcha-8m-nombres-pintados-zocalo-piso-feminicidios-pintas-109015]

가해자. 불처벌 관행

그러나 정작 죗값을 치르는 자는 많지 않다. 2월 20일 멕시코 인터넷 언론 아니말 폴리티코(Animal politico, ‘정치적 동물’이라는 뜻)에 실린 아르투로 앙헬(Arturo Angel)의 기사에 따르면, 2015-2018년 4년 동안 1만 2378명의 여성이 살해됐지만 그 가운데 407건 만이 여성 살해 죄목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여성 피해자가 발생해도 수사기관은 여성 살해 죄목을 적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수사를 진행하지 않아 재판에 이르는 수도 매우 적다. 이른바 불처벌 관행이라 불리는 멕시코 사법부의 태도는 여성 살해뿐 아니라 부패와 조직범죄에서도 악명이 높다. 시민사회가 수십 년 동안 벼른 칼을 쥐어주었지만 사법당국의 의지는 너무나 미약하다.

결국 처벌과 제재가 이루어지지 않는 틈에 피해자가 늘어간다. 여성을 살해함으로써 자신을 강자의 지위에 올려두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집단적 경험이 사회를 장악한다. 그 속에서 여성은 폭력의 대상이 돼도 괜찮은 집단이라는 인식이 강화된다. 폭력적 가부장제는 그렇게 재생산된다. 멕시코 사회 전반의 폭력과 범죄,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차별이 그 구조를 한 번 더 공고화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정의를 보여주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문제들이 사회를 메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더’ 중요하다고 믿고 싶은 문제들은 언제 어디서나 끝없이 밀려든다. 여성 살해는 그렇게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되고 황색언론의 표지를 장식하는 데 사용된다.

멕시코에서 여성 살해의 역사는 깊고 어둡다. 사법당국은 처벌의 의지가 없고, 국가를 전방위적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포부를 가진 좌파 대통령에게 여성 살해는 능력 밖의 문제로 보인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2월 연이은 충격적인 사건에 분노한 여성들이 대책을 촉구하자 원론적인 입장만을 되풀이하며 분노에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성 살해를 쟁점화하려고 노력해온 많은 시민단체들은 이러한 정부의 소극적 태도와 검경의 무능을 지탄해왔다. 그렇지만 2019년 오히려 관련 정부기관의 예산은 삭감됐고, 뚜렷한 방향을 가진 관련 정책은 부재하다.

#여성 없는 하루

때문에 2020년 3월 9일 멕시코 여성의 총파업은 놀랍지 않았다. 2월 18일 베라크루즈 주에서 활동하는 ‘브루하스 델 마르’(Brujas del Mar, ‘바다의 마녀’라는 뜻)는 트위터 계정을 통해 여성 폭력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3월 9일 모든 활동을 멈추자고 호소했다. 그리고 ‘길거리에도, 직장에도, 학교에도, 대학교에도, 상점에도 여성은 없다’는 결의가 실행됐다. 대규모 시위가 있었던 3월 8일 여성의 날 다음날, 멕시코는 여성 없는 하루를 보냈다. 멕시코시티 지하철 공사에 따르면 사용자가 평소보다 40%, 약 2백만 명 줄었다. 일부 학교는 업무를 중단했고, 여성경찰들은 파업에 동참하는 대신 보라색 리본을 달아 연대를 표명했다. 쇼핑몰은 한산했고, 상점 계산대는 비어있었다. 3월 9일 멕시코 여성들은 모습을 감춤으로써, 누군가의 손에 사라진 여성들을 추모하고, 현재와 미래의 자신을 위해 싸웠다.

하지만 3월 8일 대규모 시위와 연이은 9일 총파업의 성공만으로 희망을 기대하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을 포함한 모두가 여성 살해 반대와 문제 해결이라는 원칙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만, 개인의 삶에 스며들어 있는 가부장적 사고와 폭력성은 그러한 원칙과 동떨어진 채 자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근절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인 법적 처벌을 기대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붉은 구두’ 프로젝트 [출처: http://unaclasemuyespecial.blogspot.com/2016/11/proyecto-mis-zapatos-rojos-con-elina.html]

10년 전인 2011년 시작된 ‘빨간 구두(Zapatos rojos)’는 이제 누구나 아는 상징이 됐다. 멕시코의 여성 살해가 처음으로 가시화된 후아레스 시에서 아티스트 알리나 쇼베(Alina Chauvet)가 시작한 설치예술 프로젝트인 ‘빨간 구두’는 온갖 종류의 신발을 기부 받은 후 붉게 칠해 광장에 놓아둔다. 덩그러니 놓인 구두는 피해자의 부재를 보여주며, 붉은색은 피해자가 흘렸을 피를 상징한다. 여성 살해를 이슈화하고 각성을 요구하며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10년이 흐른 지금 옛것이 되는 대신 더욱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멕시코시티 소칼로 광장에 하얀색으로 적힌 이름들과 ‘빨간 구두’가 불러일으키는 슬픔은 떠난 자들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 자신 때문인지도 모른다. 떠난 자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묻고 또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