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팔레스타인에서의 경험

[INTERNATIONAL1]

“이스라엘협력사무소(DCO)에서 전화가 왔어. 이스라엘 군이 너희들이 여기 있는 걸 알고 있고 언제 너희를 잡으러 올지 모른대.”

머뭇거리던 라시드가 말했다. 라시드는 ‘요르단 계곡연대’의 활동가다. 우리가 서안지구에 있는 한 이스라엘 군이 언제든 우릴 잡으러 올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코로나19 때문에. 한국행 특별 비행기가 오늘 출발하니 타러 오라는 지인의 권유를 거절한 게 불과 두 시간 전이었지만, 이후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쫓기듯 텔아비브 공항으로 향했다.

  요르단 계곡의 농경지. 저 멀리 요르단이 보인다. [출처: 뎡야핑]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1~2년에 한 번 꼴로 팔레스타인에 활동가를 파견한다. 이번 현장 활동 직전인 2020년 1월 말, 트럼프 대통령은 중동평화 청사진을 내놓았다. 이를 통해 서안지구의 불법 유대인 정착촌과 요르단 계곡을 이스라엘 영토로 불법 할당하면서 팔레스타인에 긴장이 고조됐다. 특히 서안지구의 30%에 달하는 요르단 계곡에 오래 머물러 달라는 요청을 받아 일정의 상당 부분을 그곳에 할애하기로 했다.

물리적 거리와 시간, 비용 문제로 자주 올 수 없기 때문에 일정은 늘 빡빡했다. 저녁까지 일정을 소화한 뒤, 회의를 하고 다음 일정을 준비하면 뉴스를 볼 여력이 없다. 1월 말 출발 전까지 한국의 코로나19의 확산 속도가 대단히 우려될 정도는 아니어서, 한국 소식을 체크할 때도 코로나는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물론 길거리를 걸을 때 우리를 향해 코로나라고 외치는 팔레스타인 남자들 덕에 코로나 자체의 화제성은 익히 겪고 있었다. 다짜고짜 코로나를 외치거나 “중국인이니?” 라고 묻고 대답이 없으면 “코로나!” 하고 외쳤다. 가끔은 한 명이 “어이 중국인, 코로나!” 하고 외치면 옆에 있는 사람이 쟤네는 한국인이라며 넌지시 말리기도 했다. 아직까지 코로나가 중국 문제라고 여겨지던 때였다.

다른 곳들처럼 팔레스타인도 외국인 여성을 향한 길거리 성추행과 인종차별이 있지만, 이번에는 용케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겪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멀찍이서 “코로나!”라고 외치며 우리를 피할 뿐이었다. 어느 날은 버스 터미널에서 엘리베이터를 타자 우리를 본 여성들이 일제히 히잡으로 입과 코를 가렸다. 남자들은 아예 엘리베이터에서 내려버렸다.

그 뒤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대중교통은 버스와 택시, ‘세르비스’라는 8인승 승합차가 전부인데, 택시는 비싸고, 버스는 저렴하지만 대부분 시외로 다닌다. 세르비스는 승객 7명이 차면 바로 출발하고 시내도 다니기 때문에 가장 많이 이용된다. 우리도 세르비스를 자주 탈 수밖에 없었는데, 항상 동승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일부 승객들은 입을 가리거나 그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든 멀리 떨어지려 했다. 차량 내 라디오 뉴스에선 매일 ‘바이러스 코로나’라는 단어가 선명히 들렸다. 마른기침이라도 나올라치면 사람들이 불안해 할까봐 어떻게든 참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는 확진자가 없었다(이스라엘 첫 확진자는 일본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호의 탑승객으로 귀국 전이었다). 현지 활동가들에게 고충을 토로했는데, 와엘이라는 활동가가 팔레스타인인에게 시민교육이 필요하다며 위로했다. 와엘은 중국 민중에게 어떤 연대를 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었다.

일정의 3분의 2를 소화한 시점에 요르단 계곡으로 향했다. 서안지구 내 요르단 계곡은 요르단 강을 따라 요르단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이곳의 95%가 이스라엘 군사정부의 직접 통치를 받고 있으며(C지역) 군사 구역은 56%에 달한다. 팔레스타인의 빵 바구니라고 불렸을 만큼 수자원이 풍부한 농업 중심지이지만 이스라엘은 ‘안보’를 명목으로 이 땅의 영토 병합을 노려왔고, 트럼프는 이를 승인했다.

결국 필자는 활동 중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열이 나지 않는 코감기라 코로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인터뷰 상대에게 괜한 불안감을 주고 싶지 않아 빨리 낫기 위해 노력했다. 아직 감기가 완치되지 않은 2월 22일 저녁, 이스라엘군이 설치한 지뢰를 제거하다 숨진 피해자 가족을 인터뷰하던 중이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로부터 전화를 받은 라시드가 인터뷰를 중단시키더니 불쑥 물었다. “너희들 코로나 걸린 한국인 성지순례자 9명 만난 적 있니?”

한국에 돌아간 성지순례자 9명이 오늘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그들을 만난 적 있느냐는 거였다. 도대체 9명이 누군지를 알아야 만난 적이 있는지 없는지 알 거 아니냐고 물었지만 그쪽에선 막무가내로 대답을 재촉했다. 일단은 없다고 했다.

갑자기 겁이 났다. 베들레헴에서 인사했던 한국인 성지순례객 중에 확진자가 있었다면? 성지순례 가이드인 지인과 한 번 만났는데 혹시 그가 성지순례객들과 마주쳤다면? ‘한국인 성지순례자 9인’이라는 것 외에 다른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우리 중 누군가가 감염됐을 수 있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봉쇄된 가자지구만큼은 아니지만, 이스라엘 군사정부의 통제로 서안지구에도 의료 접근권이 거의 없는 마을이 곳곳에 존재한다. 누군가 나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공포스러웠다.

인터뷰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와 곧바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성지순례객들의 일정표를 확인했다. 2월 8일에 입국해 15일에 출국하는 짧은 여정이었다. 우리와도, 지인과도 날짜와 동선이 겹치지 않았다. 안도하는 마음도 잠시, 다음 날 예정된 행사가 취소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같이 간 활동가의 일본군 ‘위안부’ 강연 일정이 취소된 것이었다. 소셜 미디어에 들어가자 팔레스타인은 패닉 상태였다. 아직 성지순례자들이 다녀간 도시 이름 외에 구체적 동선이 나오지 않은 까닭이었다. 이들의 방문 여부에 따라 도시 별로 희비가 엇갈렸다.

  요르단 계곡의 구아바 농장 [출처: 뎡야핑]

그날 오후 뉴스가 나온 뒤, 소셜 미디어엔 한국인 확진자들이라며 아시아인 사진이 몇 장이 돌고있었다. 이 중에는 길거리에서 몰래 찍은 사진도 있었다. 가짜 뉴스는 삽시간에 퍼졌다. 멀리서 몰래 우리 사진을 찍던 남자들이나 같이 사진 찍자던 이들이 우리 사진을 공유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서워졌다. 이스라엘 뉴스를 검색하니 그 쪽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에 걸린 한국인이라는 동영상이 돌고 있었다. 그날 밤 팔레스타인 나블루스 지역의 보건 최고 책임자는 확진자의 방문 시간은 파악됐지만 방문지는 알아내지 못했다며 관련 정보를 신고해 달라고 발표했다. 아울러 현재 돌고 있는 확진자 사진은 거짓이며, 나블루스에 아시아 유학생과 일반 방문자도 많으니 가짜 뉴스를 퍼뜨리지 말라고 호소했다. 다음 날 구체적인 동선이 나왔지만, 사진들은 며칠 더 회자됐다.

같은 날 저녁 8시 반쯤 팔레스타인 보건당국에서 보낸 의사와 간호사가 찾아왔다. 간단히 체온을 재고 코로나 증상이 있는지, 성지순례객들과 아는 사이인지, 어디를 다녔는지 묻고는 여권 사진을 찍었다. 의사는 코로나 증상도 없고 성지순례객들과 접촉했을 가능성도 없는데다 입국한지 3주 이상 됐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을 거라면서도, 규정이기 때문에 내일 아침에 코로나 검사를 하러 다른 의사가 올 거라고 했다.

우리가 머물던 마을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이스라엘이 공동으로 통치하는 곳이다(B지역). 언급했듯 요르단 계곡의 95%를 이스라엘 군사정부가 통치하고 있다. 때문에 혹시 검사 결과가 음성일 경우에도 우리의 신상 정보가 점령당국과 공유되는지를 물었다. 팔레스타인에 들어가려면 이스라엘을 거쳐야 하고, 이스라엘은 국제 활동가를 찾아내기 위한 까다로운 검문 절차를 갖추고 있다. 때문에 활동가들은 입출국 때마다 관광객이나 성지순례객 코스프레를 해 왔다. 하지만 우리가 있던 마을은 관광객이나 성지순례객이 갈 법한 마을이 전혀 아니었다. 우리가 여기 있었다는 사실이 공유될 경우, 출국 때 추방당할 위험이 있다. 의사는 국제 활동가로서의 우려를 이해한다며 아마 아닐 거라고, 공유되지 않게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

이들이 돌아간 후 회의를 통해 검사 결과에 따른 이후 활동 방향을 논의했다. 음성이 나오겠지만 만에 하나 사태에 대비해야 했다. 우선 양성일 경우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이스라엘에 협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다닌 많은 지역이 군사정부의 통치 아래 있다. 즉 팔레스타인 쪽 관할이 아니다. 때문에 팔레스타인 출입 기록이 있는 필자만 활동가임을 밝히고, 다른 활동가들은 필자를 따라 놀러온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짰다.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그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웠다. 연대 운동에 손상을 입힐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이 필자로 인해 코로나 검사를 명분으로 이스라엘 군사정부의 심문을 받는 상황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음성이 나올 경우에도 활동을 계획대로 진행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소셜 미디어 상의 광풍을 목격한 뒤 전처럼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도시 일정을 최소화하고 요르단 계곡 활동기간을 늘리기로 했다. 출국 시 성지순례객이라는 것이 오히려 강화된 검문검색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여행자 시나리오도 마련했다. 음성이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출국 전 머물 예루살렘 숙소도 예약했다.

그런데 그날 밤 12시 경, 어떤 이가 찾아와 숙소 바깥에서 자동차 경적을 울렸다. 연락 받은 적도 없고 정체도 알 수 없어서 긴장한 채 문을 열지 않았다. 돌아가나 했더니 5분 뒤 또 경적을 울리기에 이번엔 문을 열었다. 멀리서 우리 얼굴을 확인한 사람이 차에서 내리더니 꼼꼼하게 보호복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검사를 위해 온 다른 의사였다. 의사는 아까와 비슷한 문진을 하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열두 살 난 딸이 방탄소년단 팬인데, 이 밤에 한국인들 코로나 테스트하러 간다고 했더니 그 중에 한 명만이라도 집에 데려오면 안 되냐고 졸랐단다. 덕분에 긴장이 풀렸다. 검사 후엔 딸을 위한 단체 셀카도 찍었다. 그리고 그 역시 코로나가 아니라는 것을 100% 확신한다고, 검사 결과를 내일 문자로 알려준다고 했다. 여권 사진을 또 찍길래 같은 질문을 했다. 검사 결과는 세계보건기구에 보고되고, 이스라엘도 세계보건기구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순 있지만 자신들이 직접 건네진 않는다고 답했다.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이건 사실이 아니었던 것 같다.

  코로나 검사를 받는 필자 [출처: 뎡야핑]

다음날 아침에 음성이라는 검사결과를 전달받았다. 하지만 코로나로 진이 빠진 상태라 일정을 취소하고 농사를 도우며 이후 일정을 조정하기로 했다. 라시드 역시 우리에 대해 묻는 전화를 수십 통 받느라 지친 상태였다(우리와 관련된 모든 활동가가 같은 고초를 겪었다). 그런데 전날 밤 예약한 동예루살렘의 호스텔에서 예약이 취소됐다는 메일이 왔다. 홈페이지 오류로 이미 예약된 방이 잘못 뜬 거라고, 예약이 안 됐으니 확인해 달라는 세 통의 메일에는 다급함이 묻어났다. 홈페이지에는 내가 예약한 날짜의 방이 사라져 있었다. 다른 활동가가 다른 방을 예약해 봤다. 같은 내용의 메일을 받았고, 그 방도 예약 페이지에서 사라졌다. 이스라엘 쪽 숙소를 예약해 봤다. 역시 취소당했다. 이 때 모든 한국인이 숙박업소에서 거부당했다고 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22일, 입국 14일 이내의 한국인을 각 호텔에 자가격리시켰다. 숙박이 끝나 호텔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버스에 갇혀 주차장에서 오도가도 못 하는 일도 있었다. 성지순례 가이드를 하는 지인도 호텔에 격리됐다. 혼란 속에서 이스라엘 정부는 한국인 200명을 아쉬켈론 군기지에 격리시키겠다고 발표했다가, 베들레헴 인근 하르길로 군기지로 격리장소를 바꿨다. 이 계획은 군기지 인근 불법 유대인 정착촌 주민들의 극렬한 반대로 취소됐다. 그날 밤 이스라엘 정부는 다음날인 24일 한국인들을 보낼 전세기 2대를 마련하겠다고 계획을 바꿨다. 결국 많은 한국인들이 23일 공항에서 하룻밤을 새고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탔다. 추방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 국적기가 한국 땅을 밟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23일 밤, 자가격리당했던 지인이 우리도 이 비행기를 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연락을 해왔다. 우리는 입국한 지 3주가 넘은지라 대상자도 아니었고, 이후 몇 가지 중요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거절했다. 특히 현대중공업의 굴삭기에 집을 파괴당한 피해자 가족과의 인터뷰가 예정돼 있었다.

그리고 24일, 이스라엘은 곧바로 한국을 입국 제한국으로 지정했다. 아침에 지인이 또 연락을 해왔다. 다시 안 가겠다고 말했다. 여느 때와 같이 라시드와 하루 일정을 체크하는데 그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이스라엘협력사무소(DCO)에서 전화가 왔다고. 이스라엘 군이 우리를 잡으러 올 수 있다고. 이스라엘협력사무소란 이스라엘 군사정부의 팔레스타인 쪽 연락책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안보 공조’라는 명분하에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가의 정보를 이스라엘에 넘기곤 한다. 우리 정보라고 안 넘길 리 없었다. 갑자기 우리의 존재 자체가 민폐가 됐다. 우리를 잡으러 이스라엘 군대가 마을에 들어오는 게 마을에 결코 좋을 수가 없다.

‘존재가 곧 저항’이라는 표어처럼, 국제활동가의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기 때문에 여기 있었던 건데, 힘이 되기는커녕 화를 초래할 수 있는 존재가 됐다. 어느 곳에 있다가 붙잡혀도 마찬가지다. 군대가 우리를 붙잡을 명분이 없다고 항변할 곳도 없다. 24일 이후 남은 한국인을 군기지에 격리할 수도 있다는 뉴스도 나왔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남은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우리는 팔레스타인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교통수단도 마땅치 않은 곳이라 인근의 불법 유대인 정착촌 앞에서 이스라엘 버스를 잡아탔다. 승차거부가 걱정됐지만 예루살렘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멀리서 유대인이 “코로나”라고 외쳤다. 그게 내가 들은, 우릴 향한 마지막 “코로나!”였다.

공항에는 두 번째 비행기를 타려고 대기 중인 한국인들이 마스크를 쓰고 한 공간에 모여 있었다. 이 중 확진자가 있다면 반드시 다른 확진자가 우르르 발생할 법한 상황이었다. 이스라엘은 체온만 잰 뒤 사람들을 비행기에 태워서 한국에 보내버렸다. 최소한의 역학 조사도, 악명 높은 짐 검사도 없었다. 3월 총선을 앞둔 네타냐후 정권이 코로나에 잘 대응하고 있다고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쇼였다. 14일이 지난 후 팔레스타인에도 이스라엘에도 한국인 성지순례객 접촉자 중 확진자는 나오지 않았다. 막상 이스라엘에 코로나가 전파된 건 이태리 등 다른 나라에서 옮아 귀국한 자국민들로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