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고통에 함께 하기

[꿘 여성의 생존기] 성폭력과 정신질환에 대하여


최근에는 거의 사라졌지만, 내게는 7년 넘게 따라다니는 증상이 있었다. 그것은 과거 상처받았던 일들과 고통스러웠던 순간에 느낀 온갖 감정들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분노, 슬픔, 억울함, 서러움, 배신감 등의 감정들을 계속 곱씹다보면 현재의 일처럼 재생되곤 했다. 나는 오랫동안 이 증상을 떨쳐내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미워했다. 그러나 2년 전 이것이 성격의 문제가 아닌 우울증 증상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됐고, 꾸준한 치료로 지금은 거의 없어졌다.

정신질환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나약해서 생기는 병’이라거나, ‘원래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이 가지는 병’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르다. 나의 경우는 우울증을 갖게 된 명확한 계기가 있다. 내가 2012년 활동했던 단체에서 공론화한 성폭력 사건에 관한 얘기다.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하자, 동지라고 믿었던 사람들의 태도가 한순간에 달라졌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게 호의적이었던 사람들이 나의 SNS에 온갖 폭언과 협박을 늘어놓았다. 이제는 많이 희미해졌지만, 나는 그들이 했던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몇 년 동안 줄줄 외웠다. 혼자 길을 걷거나, 샤워를 할 때, 심지어 다른 사람들과 겉으로 웃으며 떠들 때조차 머릿속은 온통 그들의 말로 가득 찼다.

일상생활이 제대로 될 리 없었고 삶은 점점 고통스러워졌다. 그래서 나는 자주 SNS에 힘들다거나 죽고 싶다는 을 썼다. 그 당시에도 역효과가 생길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견딜 수가 없었다. 가해자와 가해자 옹호자는 나의 고통마저 공격의 수단으로 이용했다. 그들은 내가 자살시도를 반복하는 것이 정신이 이상하다는 증거이고, 때문에 내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심지어 그들은 내가 진단받은 적도 없는 병에 대해 추측하고 끼워 맞췄다. 그들에 의하면 나는 ‘경계선 인격장애’ 환자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닐 뿐더러, 그 자체로 부당한 얘기다. 무엇보다 내가 중증 우울증을 가지게 된 계기는 나의 성폭력 문제제기를 계속 묵살하고, 가해자 옹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했던 그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본인들 때문에 생긴 상처를, 약점인 것처럼 다시 후벼 팠다.

당시만 해도 나는 고통에 매몰돼 내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억울하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이 일들이 나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다른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도 이런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성폭력 피해를 공론화하는 순간 수많은 2차 피해에 직면한다. 사건해결 과정에서 심각한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다른 이들보다 정신질환에 취약한 것은 당연하다. 많은 사람이 피해자가 고통스러워하지 않으면 피해자라는 것을 의심할 정도로 ‘무기력한 피해자 상’에 집착하면서도, 정신질환 증상을 보이는 피해자에 대해선 용납하지 못하는 모순된 태도를 드러낸다. 남들이 보기에 별로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는 피해자들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의심받는 것처럼,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피해자 역시 의심받는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피해자가 죽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워도 절대 중증 정신질환을 가져서는 안되며, 이성적이고 일관된 말을 해야 한다는 잘못된 피해자상에 사로잡혀 있다. 오랜 시간동안 폭력과 생존의 위협에 노출돼 있던 사람이 온전히 이성적이고 안정적이라면, 그 사람은 초인에 가깝지 않을까?

하지만 한국 사회를 비롯해 심지어 반성폭력 운동 내에서도 여전히 이런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현재 반성폭력 운동 내에서도 피해자 의사가 어디까지 존중돼야 하는지를 둘러싼 많은 이견이 있다. 그럼에도 성폭력 사건 해결 운동들은 피해자가 문제제기하고 싸울 의지를 밝힘으로써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많은 이들은 피해자가 강한 정신력과 평정심, 리더십을 발휘해 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하길 바라고 있다.

피해자 지지자는 피해자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인정하고 안타까워하지만, 그럼에도 고통을 딛고 ‘의지’를 발휘해 사건 해결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그러나 ‘의지’와 ‘노력’은 모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의지와 노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자원을 비롯한 여러 조건이 필요하다. 그리고 정신질환은 이러한 노력과 의지를 발휘할 수 없는 조건을 형성한다. 피해자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고통을 딛고 의연하고 강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피해자의 고통이 온전히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피해자들은 ‘죽고 싶다.’, ‘포기하고 싶다.’,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말을 하는 순간 자신을 지지하고 응원하던 사람들이 실망해 돌아설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피해자가 고통을 과장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피해자는 자신의 존재가 폐가 되고 짐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늘 고통을 억누르고, 한계에 도달했을 때에야 고통을 호소한다. 자신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면 자신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게 될까봐 자기 겸열을 하고, 감정을 축소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주 힘들다’는 사실 자체를 상상조차 하지 못하기에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이 예민하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최근에는 성폭력 사건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피해자 치유와 일상 회복이라는 인식이 많이 퍼졌다. 하지만 피해자가 치유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주변인들이 피해자의 고통을 존중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피해자 본인과 주변인의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극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피해자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언젠간 나아질 것임을 믿고 기다리는 태도가 필요하다. 아울러 이 사회 모두 피해자가 얼마나 지난하고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타인의 고통을 마주하는 것은 큰 용기와 힘이 필요하지만, 성폭력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 싸웠던 용기를 기억한다면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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