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의 해고, 공무원노조에 대한 '국가폭력'을 말한다

[인터뷰] 라일하 공무원노조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 위원장

2004년 11월 노동기본권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공무원 444명이 배재징계를 당했다. 그리고 136명의 해직 공무원들은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17년이 지난 현재, 정년이 지나거나 사망한 조합원을 제외하면 98명이 남았다. 이들은 해직자 복직을 요구하며 수차례의 단식과 농성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이명박 정권 당시 국정원 문건이 공개되며, 라일하 당시 공무원노조 1기 사무처장 등의 해직에 국정원이 관여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최근까지 단식을 진행하며 해직자 복직을 요구해 왔던 라일하 공무원노조 희생자원상회복투쟁위원회(회복투) 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근 이명박 정권 당시 국정원이 라일하 위원장 등의 해직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당시에도 이 같은 의혹이 있었나.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문건이 공개되면서 알게 됐다. 2009년에 전국공무원노조·민주공무원노조·법원공무원노조가 ‘통합공무원노조’로 통합해 민주노총에 가입했다. 당시 정부는 민주노총 가입 조합원 투표가 부결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리는 전국 순회를 돌며 한 달 가까이 조합원들을 설득해 나갔다. 그리고 투표 결과 3분 2 이상의 찬성으로 민주노총 가입이 의결됐다. 이명박이 그때 머리를 쥐어 짠 거다. 그때부터 공무원노조를 본격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해 11월 말에 진행된 통합공무원노조 1기 선거에 양성윤 전 위원장과 내가 각각 위원장과 사무처장으로 당선됐다. 임기가 시작되고 열흘도 되지 않아 본격적인 노조 탄압이 진행됐다. 2009년 공무원노조가 시국선언 관련해 신문광고를 냈는데 신문광고에 게재된 지부장들을 해임시켜버렸다. 시국선언 관련해 노조 사무실에 압수수색도 들어왔다. 이후 규약이 미흡한 점을 들어 노동청이 ‘노조 아님’ 통보를 하면서 노조 설립 신고를 세 번이나 반려했다.

당시 나는 안양시지부에서 전임도 하고 있었다. 안양시 행정 공무원들이 몇 번이나 나를 찾아와 휴직 신청을 해달라고 부탁을 하더라. 휴직 신청을 하지 않자 복귀 명령이 떨어졌다. 민주노총에 가입하기 전에는 설립신고가 돼 있어 노조에서 전임을 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노조 아님 통보를 받고, 복귀명령이 떨어지면서 결국 무단결근을 이유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징계위에서는 3개월 정직 처분이 내려졌다. 그러나 행안부가 안양시에 재심을 요구했고 경기도는 해임을 의결했다.

당시 해임에 정부 등 외부세력이 관여했다는 의심이 있었나.

내가 3개월 정직 처분을 받자, 행안부는 재심을 요청하는 보도자료 까지 냈다. 당시 노조는 행안부와 관계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경기도 소청심사위원회는 나의 해임 결정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전혀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이번에 공개된 검찰 문건을 보고 이해가 됐다. 범정부 차원에서 진행된 징계기 때문에 경기도도 다른 여지가 없었던 거다. 복귀 명령이 떨어진 뒤, 안양시는 행안부, 경찰, 검찰이 나와 관련해 하루에 한 번씩 확인하는 등 상급 기관의 압박이 있다고 전했다. 팀장이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내가 일하던 구청은 행안부, 경찰, 검찰을 비롯해 시에서까지 압박을 받았다고 들었다. 양성윤 위원장에 대한 해임 결정도 지나친 것이었다. 양 위원장 해임 사건은 당시에도 국정원의 압박이 컸다고 알려졌었다.

행안부의 재심 요청, 같은 날 국정원은 행안부에 재심 요청...“중징계 독려까지”

검찰의 ‘국정원 노조파괴 공작 의혹’ 수사 참고자료에는 라일하 위원장의 실명이 거론돼 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2010년 2월 10일 안양시는 라일하 당시 공무원노조 1기 사무처장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처분을 내렸다. 그러자 행안부는 6일 뒤 경기도에 재심을 요청했다. 징계 수위가 너무 낮다는 이유였다. 행안부가 경기도에 재심을 요청한 날은, 국정원이 행안부에 징계 재심을 독려한 날이기도 하다. 아울러 당시 국정원은 경기도에도 중징계를 독려했으며, 경기도는 4월 1일 재심에서 라일하 씨에 대한 해임을 의결했다.

현재 해직자들의 90%가 2004~2005년에 해직됐다. 당시 대규모 해직자가 발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기존의 공무원직장협의회법으로는 조합원의 사회적 권익을 지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특히 노동기본권 보장을 받긴 어려운 구조에 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때 공무원노조특별법이 추진됐다. 그러나 노조의 요구와 의견이 배제된 채 진행됐다. 특별법은 공무원의 행동권을 보장하지 않았고 교섭권은 제한적이었으며 단결권은 6급 이하로 한정했다. 공무원 노동3권과 관련해 교섭을 진행했으나 관철되지 않아 결국 ‘공무원노조특별법 반대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로 인해 전국 공무원의 444명이 배재징계 처분됐다. 사법 절차를 밟아 주동자로 몰리지 않았던 사람은 복귀했고 136명이 남았다. 136명 중 90%는 당시에 해고됐고, 나머지 해고자는 2010년 이명박 정부 때 해고됐다.

긴 해고 기간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해고자들은 정권에 대한 분노가 크다. 17년 동안 복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적개심도 심하다. 해고자들을 대상으로 정신감정을 한 적이 있는데 70~80%가 공황장애나 우울증을 갖고 있었다. 정신질환들로 시작해 여타 질환들을 함께 겪는 분들도 있다. 현재 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분은 18명 정도 된다.

며칠 전 임복균 전 공무원노조 정책실장이 암으로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했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해고자도 있으며 지난해 11월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해고자도 있다. 해고로 인해 사회적 관계망이 끊기고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에서 오랫동안 회복이 안 되고 있다. 사회적 분위기도 문제다. 아직 사회가 노조를 불온시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투쟁하느라 애쓴다”는 말보다 “바보같이 산다”는 등의 비아냥거리는 말을 더 많이 한다.

현재 해고자들의 일상은 어떠한가.

예전에는 모두가 주체적으로 투쟁했다. 현재는 직분이 없는 대다수 해고자는 주체적으로 활동하기 어렵다. 해고자들은 자신이 조직에 누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거점이 없는 것도 문제인데 노조 사무실에 방문해 차 한 잔 마셔도 눈치가 보인다. 공무원노조뿐 아니라, 과거 민주노조 운동을 했던 지부장, 위원장 출신의 사람들이 지역사회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경험이 많고 의제를 고민했던 분들이기 때문에 지역사회에서의 역할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복직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을 했는데 20대 국회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해직공무원 복직법 제정이 계속 미루어지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공무원 해고자의 90%는 문재인 대통령이 민정수석일 때 발생했다. 그렇다면 미안함을 느끼고 자신들이 주체가 돼서 해결해야 한다. 우리가 요구했던 것은 백번 양보해서 홍익표 의원이 대표 발의한 복직법을 통과시키라는 것이었다. 미래통합당만 법안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미래통합당이 제대로 정부입법을 하라고까지 말한다. 이는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까닭이다. 인사혁신처와 행안부에 가서 입법안 관련해서 의견서라도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으나 진행되지 않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지난해 11월 28일 열린 법안심사 소위에서 인사혁신처장이 “공무원노조가 순기능도 있고 너무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문제기 때문에 공무원 해고자들을 꼭 복직시켜야 한다”고 공직적인 자리에서 처음 말하게 된 것이다.

향후 어떤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나.

21대 국회는 공무원노조에 대한 해고조치가 국가폭력에 의한 불법적 해고이며 부당한 징계라는 것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으로 공무원노조 대량 해고 문제가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이라는 점이 알려져야 하는데, 국가가 증거들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정원은 공무원노조를 포함해 민주노조를 파괴하려 했다. 국정원이 관련 부처를 압박하고 부처는 하수인으로 존재했다. 정권의 하수인이 아닌 국민의 공무원이 돼야 한다. 공무원들이 민중 행정을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 가장 큰 공직사회 개혁이다. 공무원노조 활동의 뿌리는 ‘국민을 위한 공공행정’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헌법적 가치인 민중 행정을 기본에 두지 않고 공무원들이 정권의 하수인이 돼버린 것이 그동안의 공무원 조직이었다. 공무원노조의 탄생은 그 부분을 바로잡기 위한 운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