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가족이 죽었어도 이렇게 면죄부를 줬겠습니까?

[연속기고②] 태규의 죽음, 기업의 책임을 규명해야 합니다

‘김용균법’이라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올해부터 시행됐지만, 법과 제도는 여전히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주지 못합니다. 매년 2천 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하다 죽는 현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노동자 죽음에는 기업주에 대한 미약한 처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임에도, 20대 국회에서 발의됐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제대로 논의 한 번 거치지 못했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안전을 더 이상 국회에만 맡겨둘 수 없습니다. 피해 가족들과 시민사회가 모여 만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발족을 앞두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한 이유를 산재 피해 유가족과 동료가 나서서 이야기하려 합니다.

<순서>

1) 힘들다고 말할 때 견디어 보자고 해서 미안해
- 강석경(CJ 진천 고교 현장실습생 고 김동준 어머니)

2) 당신 가족이 죽었어도 이렇게 면죄부를 줬겠습니까?
- 김도현(청년건설노동자 고 김태규 누나)


3)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게 함께 목소리를 내주십시오.
- 김미숙(태안화력 비정규직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어머니)

4) 구의역 참사 4주기, 다시는 제2의 김군이 없기를 바라며...
- 임선재(구의역 김군의 동료, PSD 지회장)

5) 한빛이가 떠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오늘도 계속되는 방송노동자들의 죽음
- 이용관(tvn 고 이한빛 PD 아버지)


제 동생 태규는 2019년 4월 10일 수원 건설 현장에서 추락사 했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일했지만 일용직 노동자라는 이유로 안전화, 안전모, 안전벨트 같은 안전장비도 지급받지 못했습니다. 태규를 살릴 수 있었을 안전대, 추락방지망 같은 안전장치도 없었습니다. 승인받지 않은 채 불법으로 운행된 화물용 승강기에 태워진 태규는 그렇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출처: 반올림]

시공사 현장 차장은 팔에 깁스를 한 채 5층 엘리베이터에서 신호수도 없이 지게차를 운행하기도 했습니다. 안전교육을 했다고 했지만 이 역시 거짓이었습니다. 첫날 태규와 함께 일했던 태규 형이 증인입니다.

회사는 태규 죽음에 대해 사과하기는커녕 근로계약서를 위조하는 등 회사 잘못을 감추기 급급했습니다. 얼마 전, 고용노동부 조사가 있었습니다. 근로계약서 위조는 근로기준법 위반이 분명한데 검찰이 불기소한 것이 이해가 안 된다며 근로감독관이 되레 저한테 되묻기까지 했습니다.

정신없이 장례를 치른 후, 태규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알기 위해 현장에 갔습니다. 2019년 4월 14일 일요일이었습니다. 사고 지점인 5층에 엘리베이터가 있었는데, 태규의 것으로 추정되는 피범벅인 안전모가 쓰레기와 함께 버려져있었습니다. 피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4월 15일 월요일, 다시 현장에 방문했습니다. 전면 작업 중지 명령이 내려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5층에 있었던 엘리베이터가 1층으로 내려와 있었습니다. 현장에 있는 시공사 은하 종합건설 이사, 현장차장에게 “엘리베이터가 왜 1층에 내려져있나?”고 물었습니다. “1층에 있는 게 보기가 좋아서 내렸다”라는 어이없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시공사 이사는 본인이 지시한 것이라 했습니다. 그는 “경찰이 내려도 된다고 해서 내렸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 아래에 있는 심장 제세동기로 태규를 살리고자 심폐소생술을 했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심장 제세동기는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현장을 훼손했지만, 시공사 이사는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용노동부는 사실상 사측의 증거 은폐를 용인하기까지 했습니다.

[출처: 반올림]

발주처이자 건축주인 ACN 관계자는 안하무인 막말을 퍼붓습니다. “우리가 피해자다. 재수 없게 여기서 죽어 다 된 밥에 돈 들게 만든다”, “엘리베이터에서 떨어졌으니 엘리베이터 업체에 연락하라”라며 인면수심 태도로 저를 조롱하고 밀치기까지 했습니다. 공사현장에 문지기를 배치하고 사유지라면서 들어가려면 공문을 보내라고 합니다. 안 그러면 신고한답니다.

이런 ACN이 경기도지사에 의해 유망 기업으로 인증까지 받았습니다.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빚어낸 죽음임이 분명한데 태규를 죽게 만든 회사가 상을 받는 세상이니 더욱 억울한 마음이 듭니다.

7개월이 지났을 무렵, 사고 당시 CCTV 영상을 봤습니다. 태규가 떨어졌을 때 80미터를 내달려 뛰어가 응급조치를 했다던 시공사 이사는, 화면 속에서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꽂은 채 동네 마실 가듯 어슬렁거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짐승이 죽어도 이럴 수는 없습니다. 태규의 죽음이 이들에게 어떻게 취급됐고, 또 어떻게 취급될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실제로 이후로도 사측의 태도는 CCTV 화면 속 시공사 이사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저희 유가족은 보름 동안 밤새워 조사했던 자료를 경찰에 제출하며 강력히 재수사를 요구했습니다. 경찰은 시공사 대표 등 6명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실무자들의 책임만 묻고, 시공사 대표 등 실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무혐의 불기소 처리하며 태규와 저희 유가족을 두 번 죽였습니다. 경찰의 부실했던 초동수사보다 못한 검찰의 처분이었습니다.

지난 5월 15일, 1심 2차 공판이 있었습니다. 검찰은 업무상 과실치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승강기안전관리법 위반 등으로 기소한 시공사 현장소장과 현장 차장에게는 각각 징역 1년과 징역 10월을 구형했습니다. 승강기 제조업자에게는 벌금 300만 원, 은하 종합건설에는 벌금 1000만 원을 구형했습니다. 업무상 과실치사의 양형규정에 비해서도 낮았습니다. 재판부는 감정적 부분과 당 재판부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라며 이런 상황을 감안해서 기사를 써 달라고 기자들에게 요구하기까지 했습니다.

[출처: 반올림]

법 자체의 처벌규정이 미약한데, 양형규정을 통해 처벌수위를 한 번 더 낮추고, 검찰과 법원이 또 한 번 법을 무력화하는 상황입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이래서 노동자들이 반복해서 죽는 것입니다. 노동자가 죽어도 실형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고, 이런 상황을 바꿀 힘이 있는 발주처와 사장들은 기소도 되지 않고, 기업은 벌금 몇 푼 내고 끝나니 왜 기업이 돈과 노력을 들여 위험을 없애고 안전한 사업장을 만들겠습니까?

검찰과 재판부에게 묻고 싶습니다. 본인들 가족이 죽었어도 이렇게 면죄부를 주었을 겁니까? 왜 죽은 태규는 있는데 죽게 만든 회사는 죄가 없습니까? 이렇게 면책된 기업들이 무엇이 무서워서 안전 관리에 신경을 쓰겠습니까? 이 나라 정부는 도대체 누구의 편입니까?

노동자 잘못으로만 몰아가는 관행부터 꼭 바꿔야 합니다. 노동자가 왜 죽는지 기업의 책임을 규명해야 합니다. 그런데, 진상규명은 고사하고 책임자 처벌 역시 눈앞이 캄캄합니다. 꿈에서라도 태규를 볼 면목이 없습니다. 매일같이 노동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해 책임을 엄중히 물어 처벌해야 합니다. 그래야 바뀔 수 있습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으로 더는 노동자들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노동자가 죽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을 바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