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고용노동자, 실질적 사용자 원청과 교섭 또 막혀

중노위 “간접고용노동자와 원청 사용자는 조정 대상 아냐”

실질적 사용자인 원청과 교섭하고자 했던 간접고용노동자들이 또 한 번 행정의 벽에 부딪혔다. 간접고용노동자들은 원청과의 교섭을 위해 중앙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했으나 중노위는 조정 대상이 아니라고 신청을 각하했다. 12개의 비정규 사업장을 모아 공동 조정 신청을 진행한 민주노총은 중노위가 간접고용노동자의 교섭권과 원청 사용자성을 부정한 결정을 내렸다며 강력히 규탄했다.


민주노총은 3일 오전 서울시 중구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중노위 결정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민주노총은 “형식적 근로계약 관계가 아니라 사용자의 실질적 지배력을 기준으로 사용자성을 판단해야 한다고 요구했으나 중노위는 ‘직접적인 계약관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 인정’되고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의 성립 여부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구시대적 잣대를 들이댔다”라며 “중노위가 대법원 판례 기준도 따라가지 못한 것은 사실상 원청 사용자 책임 부여에 의지가 없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이미 대법원 등은 원청이 근로조건 등에 실질적 지배력을 행사하면 그 부분에 한해서는 노조법상 사용자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2010년 현대중공업은 대법원판결을 통해 사내하청업체를 폐업하는 방법으로 사내하청노조활동에 지배·개입해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는 판결을 받았다. 이 판결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실질적 사용자가 현대중공업 원청임을 확인한 판결이었다.

탁선호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대법원의 판례대로라면 부분적으로라도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했어야 했는데 중노위는 인정할 의사도, 기준도 없어서 어떤 부분도 인정하지 않았다”라며 “실질적 지배력설의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거나, 알고도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의 입증을 요구하며 인정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노위의 입장과 기준이 없는데 노조에서 이를 설득하는 건 불가능하다”라며 “간접고용 노동자의 현실, 형해화된 노동 3권을 고민한 흔적도 없고, 기존 판례를 제시하면서도 우리는 사용자임을 확인할 수 없다고 하는 무책임한 결정을 내렸다”라고 비판했다.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 판단 여부에 대해 중노위가 “노조 주장에 대한 입증이 부족하다”고 한 것을 두고도 민주노총은 이미 자료가 충분했다고 반박했다. 민주노총은 “조정을 신청한 금속노조 9개 사업장 중 현대차와 한국지엠 2개 사업장 사내하청 노동자는 대법원에서 불법파견을 판정받았고, 5개 사업장 또한 법원에서 불법파견을 인정받았다”라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의 경우 2010년 대법원이 ‘지배력설’에 따라 노조법상 사용자를 인정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공공운수노조 2개 사업장의 경우 자회사로 운영되고 있는데 노조는 자료와 조정 회의에서 모회사의 실질적 지배력(임금수준, 체계 등 설계)에 대해 입증했고, 제출한 자료만 100페이지가 넘는다고 했다.

이번 공동 조정 신청 사업장 중 하나였던 공공운수노조 한국마사회지부의 김선종 지부장은 “100% 원청의 출자로 자회사가 만들어졌고, 이사회 임원 구성이 원청 출신으로 이루어진 점, 모든 사업이 원청 사용자의 실질적 지배력 안에서 진행된 점 등을 모두 자료로 제출했고, 조정위원이 회사의 반박 자료가 부족하다는 말도 했으나 이런 판단이 나온 것은 심각한 오류”라며 “이번 조정위 권고안은 원청에 책임을 부과하고 있는 정부의 수많은 지침보다 못하다”고 지적했다.

중노위의 권고안 역시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중노위는 공공운수노조 결정서에서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모회사-자회사 공동운영 방안과 산업안전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자회사 노조 참여 보장 노력’을, 금속노조 결정서에서는 ‘도급사업주의 배려와 협력 요구,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원청이 하도급 사용자들과 공동노력할 것’ 등을 권고했다. 민주노총은 “12개 사업장 중 이 권고에 따라 ‘공동노력’을 기울일 사용자는 한 명도 없다”라며 “모든 책임을 지기 싫어 간접고용을 확산한 사업주에게 이러한 권고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앞서 민주노총 12개 간접고용 사업장(현대위아, 포스코, 현대제철, 기아차, 현대차, 한국지엠, 아사히,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등 금속노조 9개 사업장, 한국마사회, 지역난방공사 등 공공운수노조 2개 간접고용 사업장, 전국 지자체 생활폐기물 민간위탁 조합원으로 구성된 민주연합노조 등 민주일반연맹 1개 사업장)은 4월 중순부터 ▲상시지속 업무 정규직 전환 ▲위험의 외주화 금지: 원하청 공동 산업안전보건위원회 구성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 등을 요구해왔다. 원청 사용자는 답하지 않거나 교섭 의무가 없다고 했고, 이에 민주노총은 5월 20일 공동으로 쟁의 조정을 신청했다. 10일의 조정 기간 후 6월 1일 중노위는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에 조정 대상이 아니라는 결정문을 송부했다.

금속노조는 지난해에도 비정규 사업장 9개를 모아 원청의 사용자성을 강조하며 중노위에 조정신청을 낸 바 있다. 당시에도 중노위는 조정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한편 민주노총은 21대 국회 핵심과제로 노조법 2조 개정을 요구하며 중노위 등 정부 행정기관이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도록 조직적 투쟁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오늘 기자회견에서 양동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이익은 원청이 누리고, 산재사고 책임 등의 위험은 하청에 전가하는 야만적인 행태에 온 사회가 분노하고 있다. 이번 중노위의 결정은 기본권 없는 반노동 사회로 가겠다는 선언이다”라며 “민주노총은 노조법 2조와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위해 거리로 나가는 투쟁을 전개하고, 우리의 권리를 쟁취하겠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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