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장난치다 추락한 아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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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주민 한 사람당 1개월 30만엔” “안주면 정부를 무너뜨릴 거야!!” [출처: 레이버넷 일본]

아베 정부의 지지율이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국가가 위기상황에 처하면 정부 지지율은 상승한다. 만약 배가 폭풍우를 만나 조난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해보자. 그때 선장을 믿을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난파할 가능성만 커질 것이다. 그래서 어떤 무능한 선장이라도 우선 믿고 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대책 실패로 시작된 아베의 위기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다르다. 세계적으로도 드문 현상이다. 지난 4월 15일부터 사흘간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베 정부 지지율은 37%, ‘지지하지 않는다’는 45%였다. 그동안 아베 정부의 지지율은 40~50%대를 유지해 왔다. 처음으로 40% 이하로 떨어진 셈이었다. 민심은 더 이상 아베에게 국정을 맡길 수 없다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지지율 급감의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 대책의 실패일 것이다. 만약 한국처럼 초기부터 충분한 PCR(유전자증폭) 검사 체제를 구축하고, 의심환자를 격리했더라면 환자의 수가 줄었을 것이다. 아울러 휴업을 명령받은 노동자를 적절히 지원했다면, 코로나19 대책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그다지 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게다가 아베 정부의 위기는 코로나19 대책 실패 때문만이 아니다. 코로나19 대책 실패가 도화선이 돼, 아베 정부가 지금껏 추진해온 여러 정책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코로나19 감염이 최고조에 달했던 3월 30일, 그동안 아베 정부가 추진해온 ‘일하는 방식 개혁’ 중 하나인 ‘고용보험법등개정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일하는 방식 개혁’이란 개인이 처한 상황에 맞춰 다양한 방식으로 일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아베 정부가 추진한 이 정책은 사실 ‘일본판 노동유연화’의 다른 이름이었다. 일본 참의원은 2018년 6월 ‘일하는 방식 개혁법’을 제정했고 관계 법률을 만들었다. 최근 통과된 ‘고용보험법등개정법안’은 고령자에 대한 노동유연화를 상정한다. 내용인 즉, 정년퇴직한 65~70세 고령자에게는 고용 관계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개인사업자와 같은 특수고용직으로 일하도록 하는 셈이다. 물론 이들 대부분은 사회 보험 등의 보호 장치가 없는 질 낮은 일자리들이다.

충분한 퇴직금과 연금을 받고 유유자적하게 노후를 살 수 있다면 굳이 질 낮은 일자리를 얻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현재 대다수의 노동자는 저축도 없고, 충분한 퇴직금이나 연금도 받을 수 없다. 사회를 위해 한평생 열심히 일만 해온 일본 노동자들은, 노인이 돼도 어떠한 보호 없이 힘든 일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물론 이 법안이 오직 정년 후에도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였다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해당 법안이 연금수급연령 인상과 관련돼 있다는 점이다. 현재 일본은 60~70세가 되면 연금수급자격을 갖는다. 이 법안은 이것을 60~75세로 끌어 올리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고령자들이 오래 일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로 만들어 놓는 것이다. 가뜩이나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침체로 해고나 계약해지가 발생하고 있는데, 코로나19에 취약한 노인들에게 ‘더 일하라’라고 하는 것이 마땅할까? 오히려 현재 필요한 것은 ‘일하는 방식 개혁’이나 ‘연금개혁’이 아닌,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침체를 회복하고, 약자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정책이다.

코로나19 생계 지원 문제

아베 정부의 코로나19 대책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된 노동자들이 급증하고, 이들에 대한 정부 지원이 충분치 않았던 것도 지지율 급락의 원인이었다.

우선 정부 비판 여론은 3월 2일 ‘학교 휴교령’이 발표되면서 확대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휴교령이 감염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지만, 충분한 검토도 없이 ‘외국에서도 휴교하고 있다’라는 애매한 이유로 돌연 휴교를 결정해 학부모들이 패닉에 빠졌다. 특히 낮에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는 집은 휴교 기간에 일을 쉬어야 하지만, 생계 문제로 쉴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정부는 노동자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 일을 쉴 경우 1일 최고 8330엔(약 96,200원, 개인사업주는 4,100엔)의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큰 문제가 발생했다. 정부가 발표한 지원금 지급 대상에 ‘풍속업(유흥업소)’ 노동자들이 배제된 것이다. 일본에서도 유흥업소에서 종사자 중에는 싱글마더가 많고, 그들 대다수는 빈곤계층이다. 지원금을 못 받으면 어떻게 살아갈지 아득한 현실이다. 게다가 유흥업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숨기는 경우가 많아, 고용형태를 개인사업자로 등록한 사람이 많다. 이럴 경우 휴업보상 등 각종 공적지원을 받는 것조차 어렵다. 즉 지원대상에서 제외되면 생존 자체에 위협을 받는 것이다. 풍속업 부지급 결정에 대해 성매매노동자지원단체가 강력하게 항의하고 여론을 움직이면서, 다행히도 풍속업 노동자들도 지원금 지급대상에 포함됐다. (그러나 수급 과정에서 신분 노출을 우려해 지원금 수급 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고 한다.)

  “모든 주민 한 사람당 1개월 30만엔”

일본에선 지난 5월 9일 비정규직과 청년들을 중심으로 ‘자유와 생존의 메이데이 2020’ 집회시위가 진행됐다. 현장에는 약 150명이 모여 정부의 코로나19 대책에 항의했다. [출처: 레이버넷 일본]

비상사태선언 이후 회사나 상가가 휴업에 들어가면서 해고와 계약해지가 늘었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도 턱없이 부족했다. 정부가 기업에게 휴업지원금이나 고용유지지원금 등을 지급한다고는 하지만 절차가 까다로워서 받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사업주들이 지원금을 신청하는 대신 아예 폐업하거나 부당해고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결국 정부의 휴업 요청이나 ‘영업자제’ 조치는 계약해지와 임금 삭감을 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해로 귀결되고 있다.

대학생들도 가혹한 여건에 놓여 있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등록금이나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휴업으로 일자리를 잃으면서 학업을 이어가기 어려워진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결국 정부는 생계가 어려운 학생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유독 외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만 매우 까다로운 성적 조건을 붙이며 논의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 일본을 찾은 외국인 유학생들은 일정 범위 내에서 아르바이트가 허용되지만, 코로나19로 일자리가 없어지면서 이들은 등록금은 고사하고 생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도 비행기가 없고, 있어도 비행기 표가 너무 비싸 살 수가 없다. 외국인 유학생만 특별한 조건을 붙이는 것은 명백한 외국인 차별이지만, 아베 정부는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코로나19 시기 노동자들의 피해를 열거하면 끝이 없지만, 명확한 것은 사회적 약자들은 공적지원을 받기 어렵고, 피해만 커지고 있다는 현실이다. 게다가 아베 정부 이후 양극화가 심화된 상황에서, 코로나19로 피해를 입는 사회적 약자들이 더 늘어나고 있으며, 그들이 정부정책에 강한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아베노마스쿠’와 검찰청법 개정안

아베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한 이유는 소위 ‘아베노마스쿠’ 때문이기도 하다.

마스크 부족을 해소한다며 아베 정부가 자신 있게 내세운 ‘전 가구에 면마스크 2개 보급’ 정책은 지독한 욕설의 대상이 돼버렸다. 보급이 시작되자마자 “이물질이 섞여 있다”, “곰팡이가 나고 있다”, “빨면 줄어든다”는 등의 민원이 넘쳤다. 정부는 일단 보급을 중단하고 품질검사 후에 다시 보급하기로 했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결국 ‘아베노마스쿠’가 전 세대에 전달되기 전에 품질 좋은 일반 마스크가 대량 공급되면서 ‘아베노마스쿠’는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게다가 ‘아베노마스크’ 발주 과정에서의 불투명한 계약 조건이 밝혀지며, 정부는 또다시 강한 비판에 직면했다.

이에 더해 ‘특정 정액급부금’을 둘러싼 혼란도 아베 정부의 신뢰를 떨어트렸다. 애초 정부는 코로나19 확대에 따른 경제적 지원책으로 수입이 줄어든 가구에 30만 엔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 30만 엔 지급 조치를 철회하고, 소득 제한 없이 전 가구에 10만 엔을 지급하는 것으로 정책을 바꿨다. 정부가 결정 방침을 철회하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로써 아베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 대한 불신은 더욱 높아졌다.

뿐만 아니라 10만 엔 지급 과정에서도 대혼란이 발생했다. 애초 정부가 ‘마이넘버카드(일종의 전자신분증)’를 사용하면 ‘특정정액급부금’을 온라인으로 신청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마이넘버카드’ 발행 신청이 급증하면서 중앙서버 처리용량이 초과해 사실상 신규카드 발행이 불가했다. 또 이미 ‘마이넘버카드’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도 온라인 신청 후에 신청 양식이나 서류 등에서 문제가 잇따르고 사무 처리에 혼란이 가중되면서 결국 온라인 신청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한편으론 아베 정부의 지지율 하락은 단순히 ‘코로나19 대처를 잘 하지 못해서’만은 아니었다. 코로나19 혼란을 틈타 법안을 개악한 것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검찰청법개정안’이다.

앞에서 언급한 ‘일하는 방식 개혁’ 일부에는 공무원 정년 연장이 있다. 공무원 정년 연장에는 반대 목소리가 없었지만, 문제는 ‘검찰관도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검찰관이 정년 연장 대상에 포함된 것이었다. 사실상 정부가 마음대로 검찰관의 정년을 연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정부의 말을 잘 듣는 검찰관은 정년을 연장하고, 그렇지 않은 검찰관은 연장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는 명백하다. 정부·여당의 인사를 기소할 것 같은 검찰관은 나가라는 말이다.

자연스럽게 이 법안에 대한 반대여론이 커졌다.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이전과 같이 국회 앞에서 대규모 시위를 할 수가 없어, 사람들은 주로 트위터를 통해 ‘#검찰청법_개정안에_항의합니다’라는 해시태그를 붙인 온라인 데모를 이어갔다. 트위터 데모에 인기 연예인들도 대거 참여하면서 평소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조차 이 문제에 주목했다. 이를 보면서 자신감을 얻은 야당 정치인들은 결국 국회에서 법안 처리를 막았다.

한편 이 사건에는 후일담이 있다. ‘검찰청법개정안’으로 정년 연장이 예상됐던 구로카와 히로무 검사장이 위법한 ‘마작도박’을 하고 있었던 것이 최근 잡지에 포착된 것이었다. 히로무 검사장은 스스로 옷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사학비리, ‘벚꽃을 보는 모임’ 등 여러 의혹에서 아베를 구한 사람은 구로카와 히로무 검사장이었다. 이제 아베의 중요한 방패막이 하나가 무용지물로 전락한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정부 지지율도 구로카와 히로무 검사장 사직 전에 시행된 조사결과인데, 마이니치신문과 사회조사연구센터가 5월 23일 실시한 전국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베내각 지지율은 27%, 지지하지 않는 비율은 64%로 최악의 성적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