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코로나 긴급대응, ‘낙인과 유보된 권리’

21개 인권단체,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 제안

21개 인권단체가 코로나19 위기에서 사회적 약자·소수자들의 위험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들은 감염병 방역 및 대응 과정에서 침해되는 권리를 짚으며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코로나19인권대응네트워크(코로나인권대응)는 11일 오후 2시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코로나19와 인권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을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 토론회를 열었다. 이들은 “코로나19로 인해 비로소 가시화된 불평등을 넘어, 평등하게 함께 살기 위한 고민이 시작돼야 한다”며 “그 길에서 인간의 존엄과 권리에 대한 원칙은 이정표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인권대응은 영역별 21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불필요한 정보공개가 불러온 낙인과 혐오

지난달 7일 이태원 지역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확산됐다. 그러나 확진자가 방문한 ‘업소명' 등의 불필요한 정보까지 공개되며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낙인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코로나인권대응은 “일부 지자체들이 확진자가 다녀간 업소명을 공개해 재난문자를 발송함으로써 사회 전체적인 불안감을 조성했고, 개인정보 보호보다는 접촉 금지 명령, 처벌 등을 우선시하여 이태원 지역을 방문한 성소수자를 위축하게 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들은 “일부 언론은 최초로 알려진 확진자가 방문한 클럽에 대해 ‘게이 클럽’이라는 용어를 부각시키고 확진자의 주소, 직장 등을 공개했다. 이에 편승한 다른 언론들 역시 성소수자 업소에 대해 편견을 일으키는 자극적인 기사들을 보도했다”고 지적했다.

희우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는 감염병 확산 막기 위한 개인정보 공개는 최소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토론회에서 “감염병 현황 정보에 대한 일정한 공개는 감염병 대응을 위한 협력을 끌어내고, 각 주체의 대응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위해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권 침해가 없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예컨대 확진자가 ‘어느 국적의 사람인가’보다는 국적과 무관하게 ‘어떤 국가를 방문 후에 입국했는지’의 정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정부와 언론은 확진자의 관계나 신원에 대한 관심보다는 감염병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 자체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으며, 공개되는 개인정보가 최소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그는 현행되고 있는 ‘확진자별 동선 공개 방식’을 비판하며 확진자가 방문한 시간과 장소만을 데이터화해 공개한다면 개인 신상이 노출되지 않을 수 있다고 전했다.

지난 3월 16일 ‘유엔인권과기본적자유의증진 및보호에관한특별보고관’ 역시 성명을 통해 “비상시스템이 동작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긴급대응으로 차별이 발생해선 안 되며 인권 기반의 접근방식을 유지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코로나19 고용위기…“방역과 집회는 대립하지 않아”

코로나인권대응은 정부의 방역조치가 코로나19로 인해 일자리를 잃는 사람들의 목소리마저 봉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지난 2월 21일 가장 먼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이유로 집회 금지 조치를 시작했다. 이어 2월 27일 서울시의 집회 제한 확대 고시와 함께 종로구는 행정대집행을 통해 광화문세종대로의 농성장 7개 동과 집회 물품을 철거했다.

랑희 인권운동공간 ‘활’ 활동가는 토론회에서 “비정규직,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코로나19로 인한 생계위협과 해고 대책을 요구하기 위한 노동절 집회를 예정했다. 참가자들은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고 방진복을 입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진행하기로 했음에도 서울시와 경찰청은 집회를 금지했고 집회를 했다는 이유로 경찰 수사까지 진행됐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한국의 상황과 대조적으로 폴란드 바르샤바와 포즈난에서는 2m 간격으로 줄지어 현수막을 들고 ‘낙태 금지 반대’ 시위가 열리는 등 세계 곳곳에서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랑희 활동가는 “공중보건을 위한 조치와 집회의 권리가 공존하기 위한 노력, 코로나19 상황에서 집회의 권리를 어떻게 보장하고 촉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없다고 할 수 있다”며 “더욱이 이러한 권한을 남용할 가능성과 그로 인한 기본권 침해적인 규제에 대한 통제장치가 없어, 침해된 권리가 구제되고 회복될 가능성이 적다”고 꼬집었다.

코로나인권대응은 “노동자들은 코로나19 관련 보건정책 및 노동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기업과 정부에 의견을 내고 전달하기 위한 다양한 단체행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의 단체행동조차 방역 조치라며 통제한다면 정부와 기업의 대책에 당사자 입장이 반영되지 않아 실효적인 대책이 될 수 없기 때문”이라며 “단체행동은 파업권까지 포함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랑희 활동가는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집회의 자유에 대한 권리 제한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예외 없는 전면적인 집회 금지가 아니라 감염병 확산에 따른 단계적 조치나 덜 침해적인 방식인 규모에 따른 제한, 기한의 제한, 감염 위험성의 평가에 따른 장소 제한 등을 찾아내는 것이 기본권을 보장하는 정부의 의무일 것”이라고 전했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인권대응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국가의 책무를 강조했다. 이들은 “코로나19에 맞서는 적극적 대응과 함께 일상에서도 적절한 치료를 보장받고 접근할 수 있도록 의료제도를 정비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다만, 현재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행해지는 긴급조치들은 인권 원칙에 따라 시행돼야 하며, 비상시에 행해진 권한은 위기 상황으로 한정해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이를 위해 기본권을 제한할 시 제한의 요건을 명확히 하고, 그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이들은 ‘코로나19와 인권,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사회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방역 과정과 예방·지원정책은 △인간의 존엄성을 기반으로 한 인권존중 △차별금지와 특별한 보호(취약 집단, 개인 등) △사회적 소통과 참여 보장, 의사결정 등 3가지 원칙에 기반해 수립돼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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