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양공주', 그리고 'n번방'까지…공주 100년사 무대 올라

연극 <공주(孔主)들2020>, 대한민국 ‘성매매 체제의 연속성’을 고발하다

[출처: 극단 신세계]

극단 신세계의 연극 <공주(孔主)들2020>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구멍의 주인에 대한 이야기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양공주’ ‘왜공주’ ‘관광기생’ 등 공주(公主)라 불린 이들의 이야기다.

연출과 구성을 맡은 김수정 극단 신세계 대표는 “미투 운동을 계기로 내가 지금껏 노출됐던 그 수많은 폭력의 기원을 찾아가 보니 나는 1900년대 초반에 서 있었다”라며 “<공주(孔主)들2020>을 통해 국가와 사회가 여성이란 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과거부터 지금까지 어떤 폭력을 행사해 왔는지 이야기하고자 했다”라고 밝혔다.

<공주(孔主)들2020>은 공식적 기록이 아닌 비공식적 기록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여성들의 증언을 발췌, 참고해 재구성됐다. 미얀마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한 문옥주 씨, 일본군 ‘위안부’에서 미군 ‘위안부’로 살아오며 아들을 베트남에 파병 보낸 사실을 증언한 김순악 씨, 미군 ‘위안부’에서 여성 운동가로 살아온 김연자 씨 등의 증언이 연극의 토대가 됐다.

100년에 걸친 한국의 성매매 역사는 주인공 ‘김공주’를 통해 재연된다. 그 역사는 일본군 ‘위안부’부터 한국 ‘위안부’-미군 ‘위안부’-기생관광-집결지-현대의 성매매-텔레그램 N번방으로 이어진다. 성매매 역사는 착취의 역사와도 겹친다.

김공주는 1931년생이다. 만주사변이 일어난 1931년, 만주에 일본군영 공창가와 위안소가 설치됐다. 김공주의 아버지는 딸들을 ‘살림 밑천’이라며 팔았고, 그 돈으로 아들을 길렀다. 김공주는 인신매매 업자에게 속아 1944년 미얀마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시작한다. 1942년, 일본군이 영국령인 미얀마를 침공했을 때 강제 동원된 ‘위안부’들은 모두 조선인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실이 바탕이 됐다.

이후 김공주는 부산으로 돌아와 ‘색시’ 생활을 시작하는데, 임신해 다시 고향인 경북 칠곡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아들을 낳은 직후 빨갱이로 몰려 한국군 ‘위안부’로 끌려간다. 1951년 한국전쟁 당시 육군본부는 한국군 위안소를 운영했다. 군에서 여자는 ‘5종 보급품’으로 불렸다. 당시 군인들에게 제공되는 보급품이 제1종부터 제4종까지 있었는데 거기서 따온 별칭이었다.

김공주는 미군 위안부가 되었다가, 양공주가 되었다가, 포주가 되어 동두천에서 사업을 시작한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아들이 트라우마가 심해져 용산 집결지로 이사한 후 다시 포주 생활을 시작한다. 사업은 신통치 않고, 가까운 사람들이 돈 문제에 시달린다. 강남 호스트바 마담 제안을 받고 이후 미아리 집창촌에서 마담으로 일한다. 그는 성실하게 일하지만 경찰 단속과 텍사스촌 재개발은 안정적인 삶을 방해한다.

2000년 군산 대명동 유흥업소에 감금됐던 성매매 여성 5명이 화재로 사망했다. 2002년 군산 개복동 유흥업소에서도 화재로 성매매 여성 14명이 사망했다. 2009년 장자연 리스트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유력 인사들은 무혐의 처리됐다. 2015년 정부는 일방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합의해 버렸다. 이런 뉴스들을 접한 김공주는 자신의 삶도 뉴스 속 여성들과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김공주가 보기에 여성에겐 선택지가 없었고, 누구도 여성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김공주는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와 입장을 표출했지만, 무시당했다.

김공주는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이 도입되기 전, “우린 죄인도, 피해자도 아니”라고 울부짖지만, 누군가에겐 그저 피해자였고, 성을 판매해 성매매 시장을 지탱하는 부역자였다. 노년에 와서는 ‘위안부’ 피해자로 주목받지만 그의 말은 자꾸 증발한다. 피해 증언을 반복하던 김공주는 지쳐가고, 대중의 관심은 오로지 김공주를 피해자로 박제화하는 데 있는 듯하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 김공주는 홀로 앉아있고, ‘평화의 소녀상’이 되어 옮겨지는 연출은 ‘위안부’ 문제에서 우리가 어떤 점을 되새겨야 할 지 반성하게 한다.

극단 신세계는 “<공주(孔主)들2020>은 피해 당사자들을 대상화시키는, 사회가 받아들이기 편한 피해자 수난 서사 소비 방식을 배제하고자 노력했다”라며 “우리 사회가 ’어쩔 수 없이 피해 당시에 머물러 있기’를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위안부’ ‘성매매’ 문제를 바라보는 돋보이는 시각, 과감한 연출은 러닝타임 150분을 지루하지 않게 한다. 극단 신세계의 공동창작 작업 방식도 돋보인다. 배우, 스텝들이 함께 공부하고 고민한 결과를 극에 담았다. 이들은 동시대성을 반영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텍스트를 수정했다. 2018년, 2019년, 2020년의 연극이 각기 다른데 2018년엔 미투운동을, 2019년엔 버닝썬 사건을 포함했다. 올해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극에 포함해 보복성 불법촬영물과, 강간문화, 디지털 성폭력 문제를 다뤘다.

김수정 대표는 “대한민국 공주 100년사는 누군가에겐 너무나 상투적이고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88올림픽이나 2002월드컵이 기억이 아닌 역사라고 느끼는 지금 세대에게는 굉장히 새로운 이야기일 수 있다”라며 “<공주(孔主)들2020>이 지금까지 한국에서 살아온 공주들의, 앞으로 새로운 세계를 살게될 공주들의 목소리가 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한편 연극 <공주(孔主)들2020>은 극단 신세계의 올해 첫번째 공연 연극이다. 2018년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서 초연했으며 2019년 제40회 서울연극제 공식선정작으로 재연됐다. 서울연극제에서 김공주 역을 맡은 배우 양정윤 씨가 신인연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올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 중장기창작지원사업 [여성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6월 14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출처: 극단 신세계]

출연_ 강주희 고용선 권주영 김보경 김정화 김해미 김현규 남선희 민현기 양정윤 이강호
예매_인터파크,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공연문의_극단 신세계 070-8118-7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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