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임금동결이 전태일정신이라니?

[기고] 비정규직이 바라는 것은 정규직의 시혜와 떡고물이 아니다

요즘 전태일 열사의 풀빵 정신(?)을 앞세워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동결 혹은 임금인상을 자제하자는 노동운동 일부 활동가들의 선동이 도를 넘고 있다. 그 이전부터 사회연대 운운하며 노동자 양보론을 꾸준히 설파해서 새삼스럽지는 않지만 결국 이들의 주장이 자본가계급의 논리와 결과적으로 맞닿아 있다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반갑기까지 하다.

‘공격적 방어’ 혹은 ‘떠밀려 양보하기 전에 선제적 통 큰 양보’라는 그럴듯한 외피를 쓴 채 자본가계급의 주장을 노골적으로 하고 있어 글쓴이를 모른 채 읽으면 이게 정부의 주장인지 경총 등 자본가 단체의 주장인지 헷갈릴 정도다. 노동운동한다는 사람들이 정권과 자본가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대신 해주니 이들은 얼마나 속으로 쾌재를 부를까 싶다.

[출처: 김한주 기자]

이들이 주장하는 핵심적인 근거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 간의 임금격차 해소 또는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특고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위기극복 방안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을 동결(또는 자제)하고 그 양보한 임금 인상분만큼 정부와 자본 측에 ‘사회연대’기금 출연을 받아내서 이걸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지원하자는 거다. 여기서 의례 언급되는 것은 전태일 열사가 자신의 차비를 아껴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줬다는 일화다. 하지만 이 주장은 크게 네 가지 점에서 문제다.

첫째, 노동자들 간의 양극화와 비정규직 양산, 차별의 주범은 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 온갖 종류의 비정규직 일자리를 만들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양산한 정권과 자본가 계급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임금 책임론, 정규직 주머니를 털어서 비정규직을 지원하자는 주장은 결국 지배계급에게 돌아가야 할 책임을 노동자들 간의 대립으로 돌리는 것으로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만 강화할 뿐이다.

공격적 방어나 코로나위기 극복방안으로 별로 가진 것도 없는 노동자들의 주머니를 털 생각하기 전에, 왜 노동자계급의 잉여노동을 착취해서 쌓아놓고 있는 1천조에 가까운 재벌의 사내유보금(전부 또는 일부)을 내놓으라는 주장은 하지 않는가? 이 돈들은 결국 재벌과 자본가계급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노동력의 대가를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 차곡차곡 창고에 쌓아놓은 돈 아닌가. 그 돈의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라고, 가진 놈들이 먼저 내놓으라는 ‘공격적 방어’ 주장은 왜 못하는가.

둘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동결과 이들의 희생에 바탕을 둔 떡고물과 시혜가 아니다.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불편해할뿐더러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당당한 주체로 세워야 한다는 주체화전략에도 모순되는 주장이다. 노동자들의 진정한 연대정신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싸우는 것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자신의 투쟁으로 받아안고 함께 싸우는 것이다.

비정규직 당사자인 아사히비정규직 차헌호 지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절실한 것은 (정규직의) 양보가 아니다. 계급적 단결이다. 자본에 맞선 단결과 투쟁이다. 비정규직은 현장에서 매일매일 떨어져 죽고, 끼여서 죽고, 과로로 쓰러져서 죽어 나간다. 죽지 않고 일할 권리와 노조 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지금도 현장에서, 거리에서 싸운다.”

셋째, 코로나19 위기극복 방안에 대한 잘못된 처방이다.

지금 문재인 정권은 코로나19 위기극복 추경예산으로 당장 큰 피해가 없는 재벌 대기업까지 포함해 자본가들에게 100조 원을 주기로 한 반면, 노동자들에게는 20조 원을 편성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의 해고를 금지하고 고용유지를 위한 예산, 실직자 실업급여 지원을 위한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노동자, 민중들을 살리고 복지를 확충하는 긴급예산을 더 편성하도록 투쟁해야 한다. 더구나 민주노총이 요구하고 있는 총고용 유지를 전제로 한 기업금융지원 요구와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 등 당장 해고 공포에 직면한 노동자, 이미 실직해서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장과 특고노동자들을 위한 직접적 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자본주의 장기경제침체 위에 겹쳐진 코로나19 경제위기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동결이 아니라 전체 인민의 생존권보장과 복지를 위한 국가의 역할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래서 국가가 책임지고 일자리를 보장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입각해서 정규직, 비정규직간의 임금차별 구조를 근본적으로 혁파하는, 나아가 이 모든 문제들의 근원인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운동으로 나가야 한다.

넷째, ‘정권과 자본가들의 백지어음을 믿고 노동자들이여 현찰을 내라’는 것은 노동자와 적대관계에 있는 자본가계급에 대한 신뢰를 강요하고 정권과 자본의 선의에 기대 비정규직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보자는 전형적인 계급타협론적 주장이다. 그리고 실현가능성도 높지 않은 본인의 희망사항으로 전체 노동자계급의 생존권을 자본에게 바치자는 순진한 주장일 뿐이다.

우선 이들 주장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노동자들이 임금동결을 했는데 이것으로 비축된 49조 원을 자본가들이 기금으로 출연한다? 여기에 더해 자본가들이 추가로 49조 원을 출연하고 정부에서 49조 원을 출연해 147조 원의 사회연대기금을 조성한다고? 이윤착취가 일생의 목표인 자본가들이 갑자기 자선사업가로 변신해서 두 배로 손해 볼 짓을 한다고? 자본가들이 임금동결을 주장하는 것은 코로나19로 기업들이 어려우니 지출을 하지 않고 노동자, 민중들이야 고통을 받든지 말든지 자기들은 한 푼도 손해 보지 않겠다는 것인데 자본가 입장에서 두 배로 많이 돈을 지출해야 한다면 임금을 동결하는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올해 50주기를 맞는 전태일 열사 정신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볼 일이다.

모두가 잘 알다시피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는 열악한 작업환경과 노동부와 청와대에 낸 진정서로도 해결되지 않는 절망적인 현실을 타파하고자, 그리고 노동기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염원하며 분신했다. 그리고 닭장보다도 더 열악한 환경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시다 동생들에 대한 연민으로 본인의 차비까지 털어 풀빵을 사주는 희생정신을 보여줬다. 그러나 전태일 열사 역시 완전한 인간도, 투쟁과 학습으로 단련된 활동가가도 아니었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재단사들을 중심으로 친목모임을 만들고 단체행동을 준비했지만 시다들(지금으로 표현하자면 비정규직 영세노동자들)과 수평적으로 연대하며 그들을 잘못된 노동현실을 바꿔내는 투쟁주체로 조직하는 것으로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배워할 것은 전태일 열사의 헌신적 투쟁정신이지 풀빵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풀빵 연대’ ‘풀빵 정신’이라는 용어는 적절치 않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전태일 열사가 넘지 못했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투쟁(재단사와 시다의 연대투쟁)으로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노동자들이 정규직, 비정규직 차별 없이 평등하고 인간답게 노동할 수 있는 노동해방, 인간해방 세상을 만드는 일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차헌호 지회장의 말을 한 번 더 인용한다.

“임금을 양보하자며 전태일의 풀빵정신을 끌어들이는 것은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올해 전태일 열사 50주기다. 전태일 열사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투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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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종철

    많은 사람들이 임금을 이야기 할때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서도 임금체계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제가 알기론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직무급제로 알고있는데, 직무급제 이야기하면 자본가가 주장하는 임금체계라고 하니, 뭐가뭔지원. 임금연대론이나 양보론 등등이 아니라 임금체계를 논의하자고 해야되는데....이야기는 하지 않으니....임금체계 이야기하자고하면 산별교섭이 되어야 가능하지 그전에는 불가능하기에 결국자본에게 이용당한다고 한다면, 언제 해야되는지...제가 임금체계를 주장하는 것은 조직되지 않은 절대다수의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이 이야기하는 임금체계가 옳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노?!라는 반응을 얻어내어서 조직화로 연결되어야 이놈의 자본주의를 바꾸어 보든지, 아니면 고쳐 보든지, 진짜로 엎어보든지 할수있을 것인데....이도저도 아니면 소수의 권리를 누리는 사람들만 계속 그렇게 살아가는 세상이 되겠지...모든 노동자들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받는 세상을 위하여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