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미국과 한국이 서로 다른가?

[1단 기사로 본 세상] 조선일보 퀴어축제 보도와 미 대법원 성소수자 판결보도

[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지난주 조선일보 국제면에 실린 머리기사에 유독 눈길이 갔다. “보수 성향 美대법원 ‘성소수자란 이유로 해고는 위법’”(6월17일자 16면 톱)이란 제목의 기사였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진보 4, 보수 5명으로 보수 대법관이 많은데도 ‘성소수자라도 고용을 차별하면 안 된다’며 성소수자 손을 들어줬다. 미 대법원은 성별을 이유로 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 7조가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에게도 적용된다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로 민권법 7조의 보호 대상이 성소수자에까지 확장됐다.

에이미 오스트레일리아 스티븐슨은 6년 동안 남성으로 일하다 성전환 뒤 여성으로 작업장에 복귀하려다가 해고됐다. 특히 이번 판결에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 대법관이 예상을 깨고 차별금지 쪽으로 판결을 주도했다. 고서치 대법관은 이 사건의 주심이었다. 뉴욕타임스도 “성소수자 문제에 반세기 만에 예상치 못한 이정표를 세웠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국제면 머리기사로 이 기사를 실으면서 고서치 대법관 얼굴 사진과 성소수자가 연방 대법원 앞에서 무지개 깃발을 펄럭이는 사진까지 곁들였다. 조선일보 기사 어디에도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이번 판결을 우려하거나 비판하는 내용은 없었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조차도 “강력한 판결”이라며 “우리는 이 판결에 따라 살 것”이라고 전했다.

조선일보 기사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퀴어 축제를 다룬 조선일보의 수많은 악의적 왜곡보도가 떠올랐다. 특히 해당 기사를 보도한 지 2년여 만인 지난해 6월 22일자 8면에 실었던 ‘정정 및 반론보도문’이 생각나 웃펐다.

  조선일보 2019년 6월 22일 8면

  조선일보 2020년 6월 17일 16면 머리기사.

여기서 지난해 6월 22일자 8면에 간단하게 단신으로 실린 ‘정정 및 반론보도문’과 2017년 8월에 실린 최초 기사를 비교해보자.

조선일보는 2017년 8월 25일자 12면에 “수업시간 ‘퀴어축제’ 보여준 여교사… 그 초등교선 ‘야, 너 게이냐’ 유행”이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서울 송파구 장지동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6학년을 대상으로 성소수자 축제 관련 사진과 영상을 틀어주고 ‘동성애자의 인권도 존중하고 이들을 차별해선 안 된다’고 가르쳤다”고 보도했다. 이렇게 상식적인 교육 현장이 왜 대문짝만하게 비판 받을 보도거리가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①조선일보는 이 교사가 학생들에게 영상을 보여준 뒤 학교에선 ‘야, 너 게이냐?’라는 말이 유행했다고 보도했다. ②조선일보는 이 교사가 메갈리아 회원이고, 또 ‘한남충’이라는 표현도 썼다고 보도했다. ③조선일보는 해당 교사가 자신을 향한 비판이 불거지자 자신의 SNS 계정에서 남성 혐오 관련 트윗 1000여 건을 삭제했다고도 했다. ④조선일보는 이 교사가 남학생들에게 “말 안 듣고 별난 것들은 죄다 남자”라고 질책했다고 보도했다. ⑤조선일보는 학부모 220여 명이 해당 교사의 수업 중단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를 보도한지 2년여 만인 2019년 6월 22일에서야 ‘정정 및 반론보도문’을 실었다. 여기서 조선일보는 ①, ②, ③은 확인하지 않은 채 보도했다고 인정했다. ④는 그런 사실 자체가 없었다고 했다. ⑤수업 중단을 요구한 학부모가 220여 명에 달했다는 보도 역시 일부만 그랬다고 바로 잡았다. 이 정도면 기사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조선일보는 2017년 8월 25일자 보도에 이어 다음날에도 10면 머리기사로 “혁신학교 수업 재량권 줬더니… 편향된 성평등 교육”이란 제목의 기사를 이어갔다. ‘편향된 성평등 교육’이라니, 뭐가 편향됐다는 건가. 성소수자 문제를 덮어놓고 가르치지 않는 게 평등교육인가, 아니면 성소수자는 나쁜 거라고 가르치는 게 평등교육인가. 정작 편향된 건 조선일보 아닌가?

조선일보는 같은 날 26면엔 “교사면 뭐든 다 해도 되나?”라는 제목의 논설위원 칼럼도 실었다. 세상에 어떤 교사가 뭐든 다 해도 된다고 생각하겠는가?

여기서 ‘혁신학교’를 들먹인 것도 웃긴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초등학교 교사 한 명을 비판하려고 이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다. 민주당 정부와 진보교육감이 추진하는 ‘혁신학교’ 정책이 조선일보의 타깃이다.

해당 교사는 성소수자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고 학생들에게 함께 토론하자고 제안한 것인데 조선일보는 이를 성소수자 지지로 비틀었다. 나아가 ‘혁신학교’ 정책을 정조준했다. 조선일보는 2017년 9월 1일과 9월 6일에도 이 교사와 관련한 기사를 실었다.

그간 퀴어 축제를 보도해온 조선일보 신문 지면을 몇 년 만 봐도 성소수자 지지는커녕 저절로 혐오에 찌들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는 해마다 퀴어 축제를 흠집 내고 혐오를 부추기는 보도를 이어왔다. 조선일보 2017년 7월 17일자 12면에 실린 퀴어 축제 관련 기사는 ‘주말 서울광장 등장한 반라 여성·성인용품’이란 제목을 달았다.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2017년 8월 25일 12면, 2017년 8월 26일 26면, 10면 기사.

조선일보가 그동안 한국의 퀴어 축제를 보도해온 시선대로라면 이번에 나온 미 연방대법원의 성소수자 지지 판결에 거품을 물고 비판해야 한다. 미국 것이라면 무조건 좋다고 달려드는 몹쓸 버릇을 버렸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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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읽은이

    성소수자에 대한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취업제한'이 위법이라는 판결입니다.
    성소수자는 사실상 잘못된 표현부터 바로 잡아아합니다. '성변태'라고 그 사실대로 적시해야합니다. 허구의 표현을 써 주는 것부터 특혜입니다.
    성소수자들의 개인적 성취향은 누구도 간섭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회속으로 '변태적 성취향'을 밝히는 순간부터, 그들의 순수한 인권은 제한 받아야하는 것이 옳습니다.
    개인적인 부분에서는 충분한 권리를 주어야하지만, 사회적인 부분에서는 철저한 억제를 해야한 하는 것이 '성변태'의 확산을 막고 청소년들에게 해로운 성관념을 무분별하게 습득하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성소수자들을 제한하는 것이 '탄압'이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정상적인 인류에게 모욕적인 반 표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