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학 PD 사망 진상조사 결과 “프리랜서 지위 이용 해고”

청주방송 프리랜서 등 비정규직 비중 53.8%…저임금 호소

CJB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사망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진조위)는 청주방송이 프리랜서 지위를 이용해 고인을 쉽게 해고했고, 이후 소송 과정에서 부당행위를 저지르며 고인이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진조위는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진상조사 결과를 밝히며 사측의 사과, 책임자 처벌,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이 담긴 요구안 이행을 촉구했다.

[출처: 김한주 기자]

진조위는 사측이 프리랜서라는 고인의 지위를 이용해 쉽게 해고한 것이라고 밝혔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인은 2018년 4월 청주방송 측에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요구했는데, 사측 기획제작국장은 고인에게 연출을 그만두라고 통보했다. 같은 날 기획제작국장은 편성제작국 팀장을 호출해 연출을 대신할 ‘외주업체’를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고인이 프리랜서 지위가 아닌 ‘청주방송 노동자’ 지위였다면 사측의 해고는 사실상 불가했던 셈이다. 진조위는 고인이 CP(책임프로듀서)나 국장 등 상급자에게 보고한 점, 상급자 결재와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 점 등을 봤을 때 고인은 프리랜서가 아닌 근로기준법상 청주방송 노동자성이 인정된다고 강조했다.

진조위는 해고 이후 소송 과정에서 사측의 위법·부당행위도 있었다고 밝혔다. 대책위에 따르면 고인은 해고 이후 동료 세 명의 진술서를 청주지방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는데, 사측은 진술 번복을 종용했고, 이에 따라 사측 입장을 대변하는 ‘사실관계확인서’를 작성해 청주지법에 제출했다. 사측 관계자가 진술서를 쓴 노동자에게 ‘계약직인데 잘 생각하라’, ‘회사가 패소해도 진술서 작성한 사람만 피해 볼 것’이라는 등 압박한 과정을 진조위는 확인했다.

진조위는 “고인의 사망은 청주방송의 일방적 해고와 소송 방해 행위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로 발생한 스트레스로 우울감, 좌절감, 무기력이 유발됐으며 이런 감정들이 고인을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으로 내몰게 됐다고 판단한다”며 “이런 심리적 행동 변화는 해고, 소송 등 일련의 사건들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고인은 올해 1월 1심 패소 판결을 받자 억울함을 호소하며 지난 2월 4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청주방송, 비정규직 양산에 저임금 문제 심각”

조사 결과, 청주방송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환경도 열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3월 30일 기준 청주방송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노동자 비중은 53.8%에 달한다. 정규직은 78명, 비정규직은 42명이다. 비정규직 연령대는 30대가 15명으로 가장 많았고, 20대도 13명으로 젊은 연령층이 82.3%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청주방송 비정규직 노동자 중 30%가 서면 형태 계약서를 작성했지만,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노동자는 없었다. 프리랜서 계약을 한 응답자가 47.1%로 가장 많았다. 보수 지급 방식에선 프리랜서로 계약한 16명은 모두 회당으로 지급됐고, 나머지 파견과 도급은 월급 형태로 지급됐다. 보수액은 월 250만 원이라 답한 응답자가 17.6%로 가장 많았고, 그 이상은 16.7%에 불과했다. 2020년 기준 월 최저임금을 밑도는 응답자도 17.6%에 달했다.

노동시간의 경우 주당 평균 노동시간 법정 기준인 40~52시간에 해당하는 응답자가 58.8%를 차지했다. 하지만 기획제작국의 경우 주당 노동시간은 주 70시간에 달하며, 월평균 밤샘회수도 3~4회에 이르렀다. 응답자 54.3%는 인력 부족이 초과 노동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밝혔다.

또 청주방송 프리랜서는 4대 보험도 없었다. 연차휴가나 시간 외 수당, 퇴직금, 교통비, 식대 등 복리후생도 보장받지 못했다. 진조위는 “고인의 고용 형태였던 프리랜서는 외형적으로 ‘자유소득자’로 고용됐으나, 실질적 업무 내용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하는 경우가 다수였고, 도급 형식에도 실질은 불법파견에 해당하는 경우도 확인됐다. 프리랜서는 주관식 설문에서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 저임금을 받는 어려움을 호소했다”고 전했다.

“청주방송 공식 사과, 비정규직 고용구조 개선 필요”

진조위는 ▲고 이재학 PD 사망에 대한 청주방송의 공식적인 사과 및 재발 방지 입장 표명 ▲고인에 대한 명예회복과 예우 ▲비정규직 고용구조 및 노동조건 개선 ▲조직문화 및 시스템 개선 ▲방송사 비정규직 법·제도 개선 등 내용을 담은 이행요구안을 발표했다.

진조위는 “이행요구안은 조사 결과에 따라 위법적 요소를 제거하고, 이행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을 제시한 것”이라며 “공동체 회복과 상생을 위한 방안이자 일회성이 아닌 제도화의 방향으로 기능할 수 있는 원칙을 담아 작성했다. 나아가 이행요구안엔 일상적 고용 불안정과 일터 괴롭힘, 성희롱 등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린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존중하고 배려하는 일터 선언문 채택과 공동체 회복 마련’, ‘노조 추천 전문 단체에 의뢰해 심리 치유 지원’ 항목을 삽입했다”고 밝혔다.

고인의 동생인 이대로 씨는 기자회견에서 “형이 억울함으로 생을 마감한 지 140일 지났다”며 “형은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고자 비정규직을 대표해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부당해고 당했다. 그것도 모자라 청주방송 임직원들의 위증과 협박으로 고통 속에 살았다. 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으로 죽음의 진실과 비정규직의 열악한 환경이 밝혀졌다. 청주방송은 진상조사 결과를 인정하고 이행요구안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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