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로도 모자랐나?

[1단 기사로 본 세상] 한남3구역 재개발에 ‘단군 이래 최대 재개발’ 극찬

[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지난 주말 한 재건축조합이 지자체의 ‘집합금지 명령’에도 총회를 강행했다. 3천 명 가까운 인원이 야외도 아닌 실내에 모였다.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 재개발조합 소속 2735명이 코엑스에 모여 시공사 선정을 위한 총회를 강행했다.

바로 전날 서울 종각역 인근 금호아시아나본사 앞에선 아시아나항공 비행기 청소와 수화물을 처리 업무를 하다가 코로나19 때문에 해고된 자회사 아시아나KO 노동자와 비정규직 400여 명이 야외에서 집회를 했다. 경찰은 30분 남짓 짧은 집회 동안 수차례 경고방송을 해댔다. 경찰은 코로나 감염병 관리법 위반이라며 즉시 해산하라고 앵무새처럼 떠들었다.

경찰 눈엔 있는 사람들 2735명이 실내에 모인 건 아무렇지도 않고, 야외에 모인 400명만 거슬리는 모양이다.

그래도 동아일보는 지난 22일 12면에 ‘한남3구역 조합 2735명, 집합금지 명령에도 총회 열어’라는 제목의 기사로 이들이 강남구의 집합금지 명령을 어겼다는 사실을 주지시켰다. 동아일보 기사는 “강남구는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총회를 개최한 조합뿐 아니라 총회에 참석한 개별 조합원 모두에게도 과태료 300만 원을 부과하겠다”고 한 사실도 전했다. 동아일보는 2단 짜리 짧은 기사였지만 재개발조합의 집합금지 명령 위반을 제목으로 알렸다.

세계일보도 같은 날 8면에 ‘집합금지 무색…한남3구역 재개발 총회 강행’이란 제목으로 “코로나19 지역감염 추세가 심각한 가운데 지방자치단체의 집합금지 명령에도 서울 용산구 한남3재정비촉진구역 주택재개발조합이 시공사 선정을 위한 대규모 총회를 강행했다”고 비판했다. 세계일보는 닿을락 말락 줄지어 입장하는 조합원들 사진까지 찍어 보도했다.

  동아일보 2020년 6월 22일 12면

  세계일보 2020년 6월22일 8면

나머지 신문들은 이 소식을 ‘단군 이래 최대 재개발’이라는 수사까지 동원해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지난 22일 1면에 ‘단군 이래 최대 재개발 한남3구역 시공 현대건설이 맡았다’는 제목을 달았고, 매일경제는 1면에 ‘7조 한남3 재개발 현대건설이 품었다’는 시적인 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매일경제는 이날 27면에도 ‘한남 역대급 재개발…5816가구 대단지로’라는 제목의 해설기사까지 실어 친절하게 부동산 투기를 부채질했다. 중앙일보도 이날 8면에 ‘한남3구역 현대건설이 따냈다, 사업비 7조 역대급 재개발’이란 제목으로 보도했다. 경향신문도 이날 21면에 ‘현대건설 한남 3구역 따냈다’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집값 1억 뛰는데 과태료 300만 원 무섭겠나

대부분의 언론이 사업비 7조 원의 단군 이래 최대 재개발을 강조했고 그걸 현대건설이 따냈다고 보도했다. 신문사 수익에서 부동산 광고는 효자다.

원래 강남은 명당이 아니다. 풍수지리의 배산임수는 뒤(북쪽)에는 산을, 앞(남쪽)에는 물이 있는 지형을 뜻한다. 강남은 거꾸로 된 배산임수다. 강남아파트에서 한강을 보려면 해를 등지고 북쪽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서 서울의 진짜 명당은 용산구 한남동과 동부이촌동쯤이다. 용산에선 해와 물을 동시에 바라 볼 수 있다.

청나라 군대가, 일제가, 미군이 수백 년 전부터 용산으로 몰렸다. 1882년 임오군란 때 흥선대원군을 납치한 청나라 군대가 주둔한 곳도 용산이었다.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 때 일본군이 주둔한 곳도 용산이다. 이후엔 미군이 용산에 터를 잡았다. 그래서 2018년 용산기지가 민간에 개방되자 여러 언론이 136년 만에 한국인 품으로 돌아온 ‘용산’이란 제목을 달았다.

  왼쪽 위에서부터 2020년 6월22일 매일경제 1면과 27면, 중앙일보 8면, 한국일보 1면.

  2020년 6월 22일 경향신문 21면(왼쪽)과 내일신문 14면.

용산을 둘러싼 가진 자들의 탐욕은 이후로도 계속됐다. 2009년 1월 용산 참사가 탐욕의 끝인 줄 알았다. ‘신라 금관’을 닮은 스카이라인을 만들어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겠다며 여러 언론에 조감도를 뿌려댔던 그 탐욕 말이다. 개발연대 세력의 주력군이었던 이명박 시장의 뒤를 이은 오세훈 시장 재임 시절이다. ‘신라 금관’을 닮은 스카이라인은 21세기 바벨탑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불타 죽은 지 석 달 뒤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뽐내며 재개발에 열을 올릴까.

용산 참사로부터 다시 11년이 지났다. 이 달에 신문에서 본 부동산 관련 몇몇 기사를 소개하면 대충 이렇다. “최근 재건축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한 달 새 일부 단지 호가가 2억~3억씩 급등한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는 안전진단 절차 강화 소식에 술렁이고 있다”거나 “일산의 아파트단지는 입소문을 타면서 두 달 만에 매매가가 1억 원 가까이 상승했다”는 내용도 있다.

  중앙일보 2009년 4월 16일 경제3면. 용산 국제업무지구의 마스트플랜 국제현상공모전에서 ‘신라 금관’ 모양의 스카이라인을 구성한 작품이 당선됐다고 소개한다.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3개월 뒤였다.

한 달 새 호가가 3억 원씩 뛰고, 두 달 만에 매매가가 1억 원 가까이 오르는 판에 구청의 과태료 300만 원이 무섭겠나? 5816가구 노른자위 땅으로 몰려드는 이들이 일반 국민과 무슨 상관인데 이토록 보도에 열을 올리는지 모르겠다.

또 다른 용산의 탐욕을 부추기는 세력은 바로 언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