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강경파’가 노사정 대화 발목 잡았다고?

‘정파 갈등’ 집중보도…“합의 내용이 문제…정파 막론 다수가 반대”

민주노총 ‘강경파’가 노사정 대화를 발목 잡았다는 언론 보도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소위 ‘강경파’라고 불리는 현장파부터 ‘온건파’로 분류되는 국민파까지 노사정 잠정합의안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정파 논리를 떠나 민주노조 운동진영 대다수가 잠정합의안 내용을 비판하며 합의를 거부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이를 ‘정파 갈등’으로 보도하는 상황. 그래서 현장에선 이번에도 언론이 사실과 다른 프레임으로 민주노총을 고립시키려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경향 “민주노총 고질적 정파 갈등에 발목”
한겨레 “강경파의 비판…‘막다른 길’ 선택한 민주노총”



경향신문은 3일 “민주노총의 고질적인 정파 갈등이 이번 사태(노사정 협약식 무산)를 초래했다는 비판과 함께 직접투표로 선출된 대표자가 중요사안에 대한 결정권한이 없는 의사결정구조가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그 배경으로 “민주노총 내 각 정파의 조직적 이해관계가 이번 사태를 불러온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한겨레도 같은 날 민주노총이 ‘막다른 길’을 선택했다며, ‘강경파의 비판 지점’을 정리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한국일보도 “노사정 대타협 좌초…이면엔 민주노총 정파 갈등”이라는 기사에서 “PD계열 정파를 중심으로 한 일부 산별노조와 지역본부가 협약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지금 민주노총 내에서 이뤄지고 있는 노사정 합의 반대 흐름을 정파 논리로 보는 것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낡은 프레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파와 중앙파, 국민파 대다수가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들고 온 잠정합의안에 반대하고 있어서다.

우선 잠정합의안에는 ▲경영 위기 기업의 근로시간 단축, 휴업, 휴직 등 조치에 노조가 적극 협력 ▲특수고용노동자는 특성을 고려해 전국민 고용보험에 적용 ▲기업의 휴업수당 감액승인 절차 간소화 등 노동자에게 불리한 내용이 대거 담겼다. 민주노총이 애초 요구한 해고 금지는 없었다. 비정규직, 고용보험 미가입자에 대한 대책도 빠졌다. 특고 고용보험 적용은 ‘특성 고려’로 빠져나갈 구멍이 만들어졌다. 반면, 기업 관련 내용은 ‘고용유지에 노력한다’는 추상적 문구에 그쳤다.

이 같은 잠정합의안에 국민파로 분류되는 최대 정파 ‘민주노동자전국회의’(전국회의)는 “민주노총 주요 요구가 관철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곳곳에 독소조항이 있는 합의안은 폐기해야 한다”고 지난 2일 밝혔다. 앞서 현장파 활동가들은 지난 1일부터 노사정 대표자 협약식을 막기 위해 민주노총에서 시위를 벌였다. 중집위원 34명도 잠정합의안을 폐기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는 민주노총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와 공공운수노조 대표자 이름도 올랐다. 성명에 동참한 조직은 민주노총 전체 조합원의 70%를 차지한다.

그런데도 특정 정파가 사회적 대화를 좌초했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져 이에 대한 비판이 적잖다. 민주노총 중집위원인 A씨는 <참세상>과의 통화에서 “현재 민주노총에서 이뤄지는 논의는 진영 논리가 아니다. 정파 갈등은 사실과 다른 보수언론의 프레임”이라며 “잠정합의안엔 전체 노동자가 피해 보는 명백한 독소조항이 포함됐다. 기업 관련은 ‘고용유지에 노력’한다는 선언에 그쳤다. 이런 점 때문에 중집 다수가 반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중집위원 B씨는 민주노총 정파 갈등 보도가 ‘낡은 프레임’이자, ‘보수언론의 플레이’라고 했다. B씨는 “언론이 더는 낡은 프레임으로 민주노총을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다른 중집위원 C씨는 “언론이 구시대적인 발상으로 기사를 쓰고 있다”며 “언론들은 고전적인 방식으로 정파 논리를 내세우고 다시 ‘민주노총, 이대로 가면 안 된다’, ‘새로운 노동운동이 필요하다’는 프레임을 또 내세울 것이다. 정파를 떠나 다수가 합의안에 반대하고 있다. 민주노총에 아직 현장성과 민주노조 운동이 살아있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협약식 일정도 몰랐다…사실상 깜깜이 교섭
민주노조 운동에 있을 수 없는 일”


중집이 합의안 폐기를 주장하는 이유는 전체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 때문이기도 하지만, 김명환 집행부가 비민주적, 비공개 교섭을 진행했다는 측면 때문이기도 하다. 복수의 민주노총 관계자에 따르면 김명환 집행부는 6월 26일~28일 이어진 실무협의에서 ‘갭이 크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다’는 수준으로 중집에 보고했다. 그러다 집행부가 6월 29일~30일 중집에 돌연 잠정합의안을 내놨다. 7월 1일 오전 협약식을 약속하고서다.

7월 1일 오전 협약식이 중집과 현장 노동자들의 반발로 무산되자,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어제(6월 30일) 합의에 이르렀고, 오늘 서면 합의를 하기로 했다”고 브리핑한 바 있다. 노사정이 합의하기로 했다는 발언이 노동부 장관을 통해 공식적으로 나온 것이다. 노동부 대변인실도 “실무협의를 계속 진행했고, 그 결과로 30일 노사정 합의안이 나온 것”이라며 “그래서 협약식 자리를 만들었고, ‘합의에 이르렀다’는 장관 브리핑도 나온 것”이라고 답했다. 민주노총 집행부가 중집 동의 없이 사전에 약속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A씨는 “집행부가 깜깜이 교섭을 진행했다”며 “중집은 협약식이 열리는 사실도 몰랐다. 당일 협약식이 있냐고 물어보니까 위원장은 그제야 그렇다고 답했다. 집행부는 실무협의 진전 상황을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고, 잠정합의안에 대한 평가 기간을 주지 않았다. 노동자가 동의하기 어려운 합의안을 들고 통과될 거라는 식으로 대응한 건 민주노총 역사를 볼 때 우격다짐”이라고 말했다.

전국회의도 “잠정합의안 논의과정에서 (집행부는) 노조 민주주의를 파괴했다”며 “중집 논의에서 다수 중집 성원이 합의안 문제를 지적하고 철회를 요구했지만, 집행부는 중집 다수결에 따르지 않은 채 자신의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6월 29일부터 4일 연속 중집 소집을 강행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민주노총은 위원장이 소집한 임시대의원대회를 오는 20일 열고 노사정대표자 합의안을 처리하겠다고 3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