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1통 30초”…살인적인 집배원 노동강도, 인권위 진정

기계적 인력 산출 시스템…노조 “집배원은 기계가 아니다”

“일반편지 2.1초, 택배 한 통 30초, 고객의 민원전화 한 통 30초….” 우정본부가 5년 전부터 도입한 프로그램이 업무시간을 계산하는 단위다. 집배 노동자들은 이 인력 산출 시스템이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강요하고 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접수했다.


공공운수노조 집배노조가 8일 오전 국가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위는 우정본부의 반인권적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며 “집배현장과 동떨어진 집배업무강도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지난 2012년 우정사업본부(우정본부)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연구용역을 통해 약 13억 원을 들여 집배원 업무량을 산출하는 ‘집배 부하량 산출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후 이 시스템은 2016년 ‘우정사업본부 협업관서 소요 인력 산출기준 세칙’에 적용됐고 집배인력 평준화 업무 등에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노조는 이 시스템이 현장과 맞지 않아 매년 20명에 가까운 집배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등 살인적인 노동강도를 강요한다고 지적해 왔다. 노조에 따르면, 현 시스템은 일반편지 2.1초, 택배 한 통 30초, 고객의 민원전화 한 통 30초로 계산하는 등 업무 강도를 무리하게 계산해 집배원을 기계로 전제한다는 비판이 시스템 개발 초기부터 나왔었다. 결국 지난 7일 교섭대표노조인 전국우정노조와 우정본부는 노사협의회를 열고 인력산출 시스템을 다시 논의하기로 했지만, 이 시스템이 언제 바뀔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기자회견에서 최대현 집배노조 시흥우체국지부 지부장은 “현장 노동자들은 부하량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매일 뛰어다니는 조합원들만 봐도 초, 분 단위로 나오는 부하량 시스템은 현장에 맞지 않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집배 동지들은 병가 등의 결원이 발생할 시 ‘겸배’로 고통스럽게 근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겸배’는 결원이 발생할 경우 동료들이 해당 물량을 떠안는 것을 뜻한다.

최승묵 전국집배노조 위원장 역시 “우정본부는 쉬는 시간조차 없는 장시간 중노동으로 집배 노동자를 몰아세웠다. 지난 7일 우정 노사가 모인 자리에서 우정본부가 집배 부하량 산출 시스템을 폐기하겠다고 했지만, 다른 방도가 나올 때까지는 유지하겠다고 한다. 얼마나 더 죽어야지 정신을 차리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배 노동자들만 노동강도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2018년 감사원의 경우 집배 부하량 산출 시스템에 ‘여유시간’과 ‘휴식시간’을 반영하지 않은 점, 여유율도 연구기관에서 제안한 5% 대신 3%만 적용한 점 등을 지적했다. 여유율은 생리적 현상, 작업피로 등 집배업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과 그 비율을 뜻한다.

지난 2018년 노·사·전 합의 기구인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은 시스템 자체의 결함을 제기하며 시스템이 ‘소요 인력 산출에 부적절’하고 ‘산출방법을 전체 재검토’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조성애 기획추진단 노동자 측 위원(공공운수노조 노동안전 실장)은 “기획추진단을 만들어 3년 동안 7가지 권고를 했다. 집배 노동자가 더 이상 죽지 않기 인력을 충원하라고 했다. 토요일 근무도 폐지하라고 했다. 2만 명의 집배원에 안전보건 관리자가 1명밖에 배치되지 않는 문제를 지적하며 인력을 늘리라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난 7일 노사가 시스템을 폐기하겠다고는 하는데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노조는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필요인력을 산출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허소연 공공운수노조 교육선전국장은 “같은 구역이라도 사람마다 업무에 걸리는 시간은 다르다. 평균 나이, 숙련도를 합쳤을 때 가장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시간”이라며 “주 40시간 일하는 노동자가 1년이 되면 1,900시간 정도 일하는 거다. 집배원 평균 1년 2,400시간 이상 일하기 때문에 500시간만큼의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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