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고발 이후 : A단체와의 8년간의 투쟁

[꿘 여성의 생존기]


얼마 전 오랫동안 이어져 온 싸움이 하나의 분기점을 맞이했다. 8년 전 필자가 A단체에서 겪었던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했을 때, 나와 지지자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했던 A단체에 대해 민주노총이 전면 연대중단 결정을 내린 것이다.

민주노총이 연대 중단을 결정하기 전에, A단체가 성폭력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고 남성 중심적인 조직문화를 성찰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와 성폭력 대책위가 지난 8년 동안 A단체에 무수히 2차 가해 중단과 사과 및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음에도, A단체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은 채 조직적 2차 가해를 반복했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단체가 운동 사회에서 퇴출되고 도태되는 것으로 이 싸움이 마무리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여전히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최근 A단체는 민주노총의 결정을 두고 ‘운동권 갑질’이라고 반발했다. 급기야 A단체는 자신들의 성폭력 2차 가해를 알리고 중단할 것을 요구해온 피해자 조력자에게 ‘업무방해’ 혐의로 5000만 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걸었다. A단체는 지난 8년간 쉬지 않고 해온 무수한 2차 가해를 다시금 반복하고 있다.

필자의 경우(사실 많은 피해자가 그렇듯이) 성폭력 사건 자체보다 이를 공론화한 이후에 겪었던 일들이 더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한 것은 가해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도, 피해 보상을 받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다른 피해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나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건을 공론화했다.

그러나 SNS에 공론화 하는 글을 쓰자마자 A단체 회원들의 욕설과 폭언 등의 댓글들이 도배됐다. 또한, A단체 회원이던 가해자를 앞세워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거의 2년 동안 진행된 재판은 그 자체로 2차 가해였다. 재판에서 가해자 측은 내가 고통을 호소한 SNS 글을 정신이 불안정하다는 증거로 제출했고, 나를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으로 몰기 위해 거짓말까지 동원했다. 그 재판은 결국 관료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법부의 손에 의해, 5:5로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로 끝났다. 그러자 가해자들은 마치 자신들이 재판에서 이긴 것처럼 판결문 중 자신들에게 유리한 부분만을 악의적으로 편집해 블로그와 SNS, 각종 언론에 퍼뜨리고 다녔다.

재판이 끝난 후에도, A단체는 나와 성폭력 대책위를 입막음하지 못하자 자신들의 단체 기관지에 내가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이고 거짓말쟁이이며, 내가 당한 일은 성폭력도 아니라는 내용의 글들을 썼다. 아예 이런 글들을 전담하는 TF팀까지 구성됐을 정도였다. A단체의 조직적 2차 가해는 단지 기관지나 온라인에서만 행해진 것이 아니었다.

A단체 회원들은 대책위 활동가들을 찾아가 여럿이서 한 명을 에워싸고 겁박했다. 또한, 주요 투쟁사업장마다 찾아다니며 자신들의 기관지에 올렸던 2차 가해 글들을 제본해서 배포했다. 심지어 A단체 성폭력 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필자가 경험한 다른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가 무고한 사람이며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글을 쓰고 그것을 책으로 출판해 판매까지 했다. 그 성폭력 사건은 심지어 가해자가 소속된 단체인 민주노총에서 진상조사는 물론이고, 가해자에 대한 징계 조치까지 전부 완료된 사건이었다.

이 와중에, A단체는 또 다른 피해자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2016년 피해자 중심주의를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J씨는 필자에 대한 지지를 표하며, 자신도 과거 활동하던 운동단체에서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어 더 공감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J씨는 과거 A단체 회원이었으나 탈퇴한 상황이었다. 당시 J씨는 토론회 발언에서 자신의 과거 소속이나 피해 발생 단체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A단체는 갑자기 해당 발언을 문제 삼으며 J씨가 원하지도 않는 사건 조사를 하겠다고 주장했다. J씨가 이를 거부하자, 급기야 그의 과거 상담 기록을 공개하며 비난하기 시작했다. A단체는 필자에게 그랬듯, J씨에 대해서도 ‘신뢰할 수 없는 여성이며, A단체에 대한 악감정으로 A단체를 비방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쓰며 조직적 2차 가해를 했다.

나는 이런 상황들을 겪으면서도 A단체에 대한 문제 제기를 멈출 수 없었다. 아니, 이런 상황들을 겪었기 때문에 문제 제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2017년에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차제연)에 A단체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고, J씨 측도 이에 동참했다. 차제연에 함께 하던 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A단체는 차제연에서 나왔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이후에도 나와 J씨를 비방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2018~2019년에는 이를 목도한 노동계에서도 A단체에 대한 문제의식이 더욱 커졌고,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를 시작으로 A단체와 연대 중단을 결정하는 곳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현재, 민주노총 전체단위가 A단체와 연대 중단을 한 상태다.

민주노총이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많은 사람의 연대가 있었다. 차제연의 여러 단체가 A단체의 2차 가해를 비판하는 입장을 냈고, 민주노총 여성위를 비롯한 민주노총 내의 많은 활동가 역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연대했다. 그러나 한편에서 꼭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A단체가 그전까지 2차 가해를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다. 그것은 2012년부터 지금까지 오랫동안 많은 운동단체가 이 사건들에 무관심하거나,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서였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A단체는 2014년경 ‘우리의 활동에는 아무 지장이 없음으로 저들을 무시해도 된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다행히 많은 이들의 투쟁으로 이제 그들의 주장은 틀린 것이 됐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최근 A단체가 업무방해로 소송을 걸었다는 활동가는 나와 J씨를 가장 열심히 지지하고 연대했던 조력자이자, J씨의 대리인이었다. A단체는 피해자의 조력자를 고소함으로써 피해자들을 고립시키고 성폭력 문제를 제기하는 피해자들의 입을 막으려 하고 있다. 이는 가해자들의 상습적인 수법이자 A단체가 8년 동안 계속해온 짓이다. A단체는 자신들의 성폭력 2차 가해에 대한 문제 제기를 없애고 축소하기 위해 앞으로도 이와 같은 짓을 반복할 것이고, 관련한 싸움 역시 계속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치지 않고 피해자들과 지지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이 글에 담지 못한 피해와 투쟁들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다양하다. 다만 다른 이야기들보다, 성폭력은 피해자만의 싸움이 아닌 사회 모두의 싸움이 돼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래야만 무언가가 바뀌고 피해자가 생존할 수 있게 된다. 더 이상 나와 J씨가 혼자라고 느끼지 않도록 운동 사회가 A단체와의 싸움에 관심을 가지고 지지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