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의 생명은 소중하다”…딴저테이 씨가 남긴 것

[질문들] 사망 2주기…미얀마 노동자 딴저테이를 떠나보내며

오는 9월 8일이면 딴저테이가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된다. 나는 2년 전 영정 사진으로 처음 만난 그를 보며 한국에서의 이주노동을 결심한 마음과 고단했을 노동, 그 시간을 버틸 힘이 되었던 미래에 대한 희망, 그리고 단속에서 탈출해야 했던 두려움을 상상했다. 우리가 만난 적은 없지만 나는 그에게 미안했고, 그를 잃은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미안했다. 그 마음이 딴저테이를 그대로 떠나보낼 수 없게 했다. 그의 죽음을 잊히게 할 수 없었다. 미얀마 공동체와 여러 단체들이 모여 딴저테이씨 사망사건 대책위를 꾸렸다. 대책위는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활동하면서 책임자를 처벌하고 단속 추방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한국 정부는 그의 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이 단속으로 멈추어서는 안 된다고 그를 대신해 외쳤다. 그렇게 그의 죽음과 함께 보낸 지난 2년 동안 그는 우리와 이어진 존재로 있었다.

[출처: 살인단속 규탄 및 미얀마 노동자 딴저테이씨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불법’이 된 존재

미얀마의 작고 가난한 마을에서 살던 딴저테이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2013년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와 플라스틱 원료 생산 공장에 취직했다. 일하면서 맡는 냄새에 머리가 아프고 공장장이 괴롭혔지만 사장 허락 없이는 직장을 옮길 수 없었다. 그는 고향에 조그만 양식장을 만들 생각으로 꼬박 4년 10개월을 견뎠다. 사실 그저 강물에 물고기를 가둬 기르는 허름한 양식장이지만 빠듯하더라도 다시 가족과 함께 살 수 있으리라 소망했다. 현재의 고단한 노동은 미래에 대한 기대로 버틸 수 있었다. 그에게 미래의 계획이 추가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비자만료 이후 1년만 한국에서 일을 더 해야겠다는 결정을 했다. 그는 체류기간을 넘긴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불법’이 되었다.

불법인 존재, 불법인 삶 그것은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열심히 노동하고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가족을 그리워하는 삶과 존재가 ‘불법’이 되어 언제든 추방될 수 있다. 언젠가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내게 자신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오늘 출근하지만 집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고, 친구들과 작별 인사도 나눌 새 없이 추방되는 것이 슬프다고. 딴저테이 역시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는 삶이 불법이 되어 희망과 불안, 기대와 두려움이 팽팽하게 서로를 당기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딴저테이에게 단속은 추방이 아니라 죽음으로 이어졌다. 그는 4년 10개월의 시간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새집도, 아버지의 고된 노동을 덜어줄 양식장도,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는 5년 만에 만난 아들과 영영 이별을 했다. 그의 꿈은 현실에 닿지 못하고 스러졌다.

딴저테이의 세상 맞은편에 미등록 이주민을 불법으로 만드는 대한민국 법무부와 출입국 외국인청이 있다. 그들은 딴저테이의 삶과 절박함을 상상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딴저테이의 죽음마저 그의 탓으로 돌린다. “단속 과정에서 욕설을 한 사실이 없”고, “단속 사실을 고지”했으며, “신원을 확인하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단속한 사실도 없다”는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결과가 이들의 거짓말을 확인해주었지만 거짓말에 대한 사과도, 그의 죽음에 대한 사과도 없었다. 단속에 순순히 응했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그들은 단속이 없었으면 그가 여전히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불법적인 존재로 규정할 수 있는 제도와 그 제도의 실행자들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다. 불법이 된 사람의 삶의 상상하지 않는다.

‘숫자’가 된 존재

출입국 외국인청에 찾아가 당시 단속 영상을 보았다. 단속하던 식당 밖에서 찍은 영상 속에서 소리만 들린다. 우당탕탕 무엇인가 쓰러지는 집기의 소리, 고함치는 사람의 소리로 단속하는 상황을 상상한다. 단속 담당 공무원은 5분 안에 단속이 이뤄지지 않으면 사고가 난다며 단속 시간이 길지 않음을 나에게 강조한다. 나는 ‘5분’이라는 말에 얼마나 강압적이고 물리적이어야 그렇게 빠르게 제압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공무원은 내게 하소연을 한다. 이주노동자들이 안 잡히려고 단속 공무원을 때려 다치기도 한다며 너무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고.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럼 단속하는 사람에게도, 단속당하는 사람에게도 위험한 이 일은 왜 계속하고 있나요? 단속이 모두에게 위험한 일이면 단속 공무원들이 먼저 내부에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에게 아무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직권 조사 결정문을 보았다. 그동안 법무부가 주장한 ‘적법한’ 단속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속을 시작한 지 3분 만에 딴저테이가 추락을 했고, 이 사실은 단속반원 전체에 공유되었지만 단속은 중단되지 않았다. 딴저테이가 추락한 사진만 찍었을 뿐 구호를 위한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 회사는 통역과 딴저테이의 심리적 안정을 위하여 단속반에게 미얀마 친구를 풀어줄 것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어떻게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사고를 두고 단속을 계속할 수 있지?’라는 의문은 이어진 다른 진술에서 답을 찾았다. 단속반은 매일 단속을 하고 있으며, “단속 할당량은 없지만 월 목표치는 있다”고 말했다. 나는 할당량과 목표치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둘 중 무엇이든 단속하는 대상이 사람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매달 달성해야 할 불법의 숫자를 채우기 위해 매일 목표치를 향해 단속하는 이들에게는 사람이 아니라 ‘불법’과 ‘숫자’만 보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법무부는 사건에 대하여 따로 조사나 감사를 진행하지는 않았다. 공무수행 중에 사람이 죽었지만 조사도, 징계도 없었다. 딴저테이 사망 이후 법무부는 국민의 일자리를 지키겠다며 건설업에 불법 취업하는 외국인들을 집중 단속을 할 것이며, 한 번만 단속이 돼도 강제 출국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출처: 살인단속 규탄 및 미얀마 노동자 딴저테이씨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딴저테이가 남긴 것

딴저테이의 죽음과 함께 했던 2년 동안 내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딴저테이 가족에게 사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과는 없었고 계속되는 단속과 그 과정에서 다치는 이주민들만 있었다. 법무부는 사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과는 단속이 필연적으로 인명사고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단속추방 정책의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존재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국가의 공무원은 미등록 이주민의 삶을 살펴보지 않는다. 사람을 ‘숫자’로 환원하는 국가의 공권력은 미등록 이주민을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는다. 인간으로서의 존중도, 불법이 되는 삶에 대한 이해도 없는 대한민국에서는 미등록 이주민의 삶은 언제나 위태롭다. 딴저테이는 자신의 죽음이 모든 이주노동자의 삶과 이어져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과 이어진 우리의 세계를 돌아보게 했다.

딴저테이를 대신해 외쳤던 요구를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 그에게, 그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만 안고 딴저테이 씨 사망사건 대책위는 해산한다. 대책위는 정리하지만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사라지지 않았다. 대책위는 그동안의 활동을 통해 하나의 사건으로 단속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확인했다. 개별적인 사건을 넘어 단속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제도적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딴저테이의 죽음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다. 사진 속의 딴저테이는 사랑하는 이들의 곁에 머무를 수는 없지만, 수많은 이주노동자와 공존할 가능성을 만들어 갈 시간 속에 함께 있을 것이다.

[출처: 살인단속 규탄 및 미얀마 노동자 딴저테이씨 사망사건 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