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의 자리를 전복하기

[레인보우]


나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 에이즈에 걸린 대통령과 동성애자 부통령을 원한다.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 독성 물질을 내뿜는 쓰레기 더미로 가득한 곳에서 성장해 백혈병에 걸릴 수밖에 없었던 그런 사람을 원한다. 열여섯 살에 낙태를 경험했던 대통령을 원한다. 두 명 중 덜 악랄한 자가 아닌 다른 대통령 후보를 원한다. 인생의 마지막 사랑을 에이즈로 잃어버린 사람, 아직도 누우면 매일 눈앞에서 그 모습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알면서 그를 품에 안고 있는 그런 대통령을 원한다. 에어컨이 없는 대통령을 원한다. 병원에서, 교통국에서, 복지부 사무실에서 줄 서 본 경험이 있는 사람, 실직자, 명예퇴직자가 되고, 성희롱을 당해본 경험이나 동성애자로서 학대를 당하고 추방당한 경험이 있는 대통령을 원한다. 무덤에서 밤을 지새우고 자기 집 잔디밭에서 십자가가 불태워지는 걸 보고 강간에서 살아남은 그런 사람을 원한다. 사랑을 하고 상처를 입어본 사람, 섹스를 존중하는 사람, 실수를 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얻은 사람을 원한다. 나는 흑인 여성이 대통령이 되기를 원한다. 충치가 있고 태도가 안 좋은 사람, 그 역겨운 병원 밥을 먹어본 사람, 다른 성(性)의 복장을 하고 마약을 해보고 치료도 받아본 사람을 원한다. 시민 불복종을 실천해 본 사람을 원한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꽤 널리 알려진 조이 레너드의 ‘나는 대통령을 원한다’라는 글의 일부다. 이 글은 1992년 미국 대선 기간에 배포됐고 각국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 알려졌다. 지난 7월과 8월 중 한 달여 사이에 한국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며 이 글이 다시 생각났다. 충남도지사와 부산시장에 이어 서울시장의 성폭력 사건이 제기됐고, 류호정 의원은 원피스를 입고 국회에 등원했다는 이유로 비난을 들어야 했다. 법원은 막대한 양의 성착취 영상을 제작, 유포했던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불허했는데, 서울교통공사의 광고 게시 거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까지 하며 수개월 만에 신촌역에 게시될 수 있었던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는 문구의 광고판은 게시 3일 만에 갈기갈기 찢겨진 채 발견됐다.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정작 수치를 모르고, 그저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갈 뿐인 사람들에게는 수치와 모욕을 가하는 사회의 적나라한 장면들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조이 레너드의 글은 “왜 대통령은 항상 창녀가 아니라 창녀를 사는 남자여야 하는지, 항상 노동자가 아니라 간부여야 하는지, 항상 도둑질을 하면서도 결코 처벌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배우게 됐는지 궁금하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정말 궁금하다. 그런데 지금 드러나는 일들을 보니 그 답을 알 것도 같다.

잘못 놓인 수치심의 자리

성폭력 피해 사실을 신고하면 여전히 피해자는 수사기관과 재판부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강간, 성추행, 성희롱, 가정폭력, 불법촬영을 불문하고 ‘수치심’은 피해자의 감정으로서 입증돼야 한다. 법원은 레깅스를 입은 다리를 몰래 촬영한 사진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만한 것이 아니라거나, 60대 여성은 ‘사회 경험이 풍부하여’ 성적 수치심이 크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유로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한다. 수치심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몫으로 인식되는 사회에서 가해자는 면죄부를 받고 오히려 피해자가 자신의 순수함과 무결함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지난 7월에는 주뉴질랜드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한 외교관이 동성의 뉴질랜드 직원을 여러 차례 성추행했는데도 한국 외교부에서 제대로 징계조차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사건 이후 3년이 지나서야 뉴질랜드 총리가 한국 대통령에게 직접 언급할 지경이 됐지만, 정부는 여전히 외교 관례 타령이나 하는 수준이다. 심지어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사건을 두고 ‘뉴질랜드는 동성애에 개방적인 곳’이라고 언급하며 해당 외교관의 가해 행위를 ‘같은 남자끼리 툭툭 친 정도’라고 표현해 동성애와 성폭력에 대한 무지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뉴질랜드는 동성애에 개방적인 나라’이며 ‘피해자는 여성이 아닌 남성’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송영길 의원의 발언은 성폭력을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라도 성적 욕망과 권리를 폭력의 문제와 구분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성적 자기결정권과 폭력을 구분하지 못하고 폭력이 아니라 욕망을 수치로 여기는 사회는 폭력에 대한 명분을 키우는 사회다. 잘못 놓인 수치심의 자리를 찾아주어야 한다. 수치심의 자리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있어야 하며, 상대의 성별이나 행위, 옷차림, 특정한 욕망 같은 것이 아니라 동의와 존중이 무시된 관계에 놓여야 한다.

수치심의 자리를 전복시키기 위하여

지난 7월, 2014년부터 올해까지 기록했던 자신의 삶과 관계, 성행위의 경험과 감정을 모아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이라는 산문집을 발간한 유성원 씨는 “‘문란한 게이’라고 타인의 삶을 재단해버리는 손쉬운 판단 앞에서 이 사람에게 일어난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충분히 말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에게 이 경험들은 “우리 시대와 사회, 공간의 한계가 소수자 개인에게 어떤 얼룩과 자국으로 남아 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수치심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회는 다양한 관계와 행위의 경험, 이를 둘러싼 삶의 조건들이 놓인 맥락을 재단하고 삭제한다. 수치심의 자리를 전복시키기 위하여, 이제는 그 삭제된 경험들을 곳곳에서 더 많이 드러낼 수 있기를, 그리하여 사회가 잘못 위치시킨 수치심의 얼룩에 가려졌던 삶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드러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때 폭력의 가해자가 느껴야 할 수치심의 자리도 보다 분명해질 것이다. 나는 그런 사회에서 풍부한 삶의 경험을 이해의 기반으로 지닌 레즈비언 대통령, 에이즈에 걸린 대통령, 난민, 노동자, 빈민으로 살아온 대통령을 만나게 될 날도 오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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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타지

    지팡이:틀니 니가 와야 하나보다!
    틀니: 이 쇠끼가 왜 나를 찾어!?
    지팡이:니 같이 좀 무식해가 모면 모 윷이면 윷이 확실하게 나와야 하는데. 맨날 빠꾸 토만 나오니 내가 돌것다.
    틀니:이 자시기. 놀던 멍석말이를 당하던간에 네들이 해봐. 여태까지 걸도 못 던지면서 나보고 오라고?
    지팡이;한번만 와줘라.
    틀니:너는 좌파 인물이 다 아무 일도 겪지 않고 성공했다고 생각하냐. 배운 노미니까 다 알 것 아냐. 자 봐라. 레닌, 스탈린 트로츠키 다 유형을 다녀오거나 감옥을 다녀온 후 성공했다. 너네들처럼 머리로 학문만 반질반질하게 딱다가 획가닥 획가닥 하면서 성공한 줄 아냐.
    지팡이;또 먼 말이야
    틀니:왜 뒤로 빼냐. 너희들은 아무 탈도 겪지 않고 부를 쌓고, 큰 출세도 하고, 혁명까지 전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잖어? 왜? 배웠으니까! 체면이 있으니까! 그러한 사실은 아나 모르겠다. 우파의 부정부패는 당연한 것이지만 좌파의 부정부패는 더 큰 죄악이라는 것을. 듣고 있냐? 왜? 안들리냐!!!!!!!?
    지팡이:아. 정말 너하고 말을 못하겠구만. 우리가 얼마나 잘못했다고 그래. 우파거나 좌파거나 인간사 보통으로 살아가고 무난하게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니가?
    틀니:그러니까 그렇게 안일하게 살다가 카다피가 죽고말았잖어. 정신차려라. 승자는 누가 되어도 해롭지 않고 이익은 누가 봐도 상관이 없어도 죄는 죗값이 따른다.
    지팡이:아 어려운 말 하시네. 통신 끊자 생각 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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