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2번째 노벨평화상 후보

[1단 기사로 본 세상] 전두환도 1988년 평화상 후보

[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노벨상은 스웨덴 한림원이 정하지만 유독 평화상만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결정한다.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그렇게 됐다. 노벨위원회 위원들은 학자도 있지만 정치인이 중심이다. 그만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수상자가 결정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노벨평화상은 받을 만한 사람과 받아선 결코 안 되는 사람이 받는 두 유형으로 나뉜다.

국제노동기구(1969년)와 국제사면위원회(1977년), 테레사 수녀(1979년), 국제연합 난민고등판무관실(1981년), 만델라(1993년), 국경없는 의사회(1999년)처럼 받을 만한 사람이나 단체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만은 아니다. 상당수 평화상은 주류 국가들의 정치적 판단에 좌우됐다.

[출처: 동아일보 2020년 9월26일 29면]

노벨위원회는 베트남전 종전을 이끈 공로라며 1973년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에게 평화상을 줬다. 전쟁광 키신저에겐 어울리지 않았다. 키신저와 함께 수상자로 지명됐으나, 수상을 거부한 레득토 베트남 수상의 말이 더 설득력 있다. “내 조국엔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고, 나는 전시 지도자이지 평화의 사도가 아니다.”

1978년엔 군부 출신의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도 평화상을 받았다. 1906년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러일전쟁을 잘 중재했다며 평화상을 받았지만, 덕분에 한반도엔 일본 식민지로 가는 지름길이 열렸다. 이승만 대통령이 추앙했던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도 민족자결주의를 내건 공로로 1919년 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윌슨이 말한 ‘민족 자결’은 1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식민지에만 해당됐다. 승전국인 영국과 일본의 식민지였던 인도와 한국의 ‘민족 자결’은 없었다.

2002년 지미 카터와 2009년 버락 오바마까지 4명의 미국 전현직 대통령이 평화상을 받았다. 집권 1년도 안 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자 세계가 어이없어 했다. 게이르 룬데스타드 전 노벨위원회 사무총장은 뒷날 오바마 선정을 후회한다고 했다. 그는 AP통신에 “심지어 오바마의 지지자도 평화상 수상은 실수였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상금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2018년에 이어 이번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상 후보로 추천됐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2013년에 이어 이번에도 평화상 후보에 올랐다.(동아일보 2020년 9월26일 29면) 푸틴은 지난 8월20일 정적인 나발리 전 러시아진보당 대표를 냉전시절 옛 소련국가보안위원회(KGB)가 즐겨 쓴 독극물 ‘노비초크’로 암살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친정부 작가들이 노벨상위원회에 그를 후보로 추천했지만 추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이를 두고 BBC는 “히틀러도 1939년, 스탈린도 1945년, 1948년에 두 차례나 평화상 후보로 추천됐다”고 꼬집었다.

2000년 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대통령을 놓고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원이 2010년 3월 우파 시민단체를 활용해 수상 취소 공작을 벌인 사실이 2017년 폭로됐다. 원세훈 국정원장 시절에 일어난 일이다.

전두환도 1988년 노벨평화상 후보

광주학살 원흉 전두환도 대통령 퇴임 직후 1988년에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전두환을 추천한 사람들은 영국과 서독 의원이었다. 이들은 전두환이 1983년 9월 소련의 KAL기 격추와 1983년 10월 아웅산 폭탄 테러, 1987년 11월 KAL기 폭파 추락사건 등 한반도 안보위기에 군사력 대응을 자제해 세계 평화에 공헌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출처: 경향신문 1988년 3월4일 1면]

87년 연말 대선 직전에 터진 KAL기 추락사건의 최대 수혜자가 전두환과 노태우 등 군부세력인데 안보위기는 무슨 안보위기인가. 대통령 선거 투표를 이틀 앞둔 1987년 12월15일 김포공항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던 김현희는 그날 밤과 투표 전날 아침신문 1면을 장식하면서 노태우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1990년 4월 민간인 수백 명을 죽인 김현희를 사면했다. 대법원이 사형 선고를 내린지 보름 뒤였다. 김현희를 대선 전에 국내로 송환하려고 국정원(당시 안기부)이 벌인 추악한 공작은 이미 세상에 알려졌다.

일본 극우신문 산케이를 인용 보도한 전두환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을 알리는 경향신문 기사는 1988년 3월4일 1면에 실렸다. 그해 4월26일 치러진 총선을 한 달 보름 앞두고 선거 열기가 달아오르던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