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아류 내각과 통합야당의 등장

[INTERNATIONAL2] “아베는 아프지만, 운동은 회복되고 있다”

  9월 19일 일본 의회 앞에서 “전쟁법 강행 5년, 전쟁법 폐지, 생명을 지켜라, 아베 개헌 발의 저지할 것이다, 아베 내각 퇴진”을 주제로 시위가 열렸다. 이 집회에는 3500명이 참가했다. [출처: 레이버넷 일본]

8월 28일 아베 신조 총리가 신병을 이유로 사임의사를 밝혔다. 언론은 이를 ‘의외의 사임’이라고 보도했지만 그렇지 않은 면도 있었다.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코로나19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사람의 이동이 제한되면서 지난해 소비세 인상으로 침체했던 일본 경제는 더욱 큰 타격을 입었다. 거액의 국가 예산이 들어간 올림픽도 연기됐다. 여기에 ‘아베노 마스크’로 상징되는 코로나19 방역대책이 잇따라 실패하면서 “아무리 아베 총리라도 이래서는 가망이 없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아베 총리는 지병 악화 때문에 사임한다고 했지만 단순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어쨌든 총리 임기는 내년에 만료되지만 코로나19가 단기간에 종식될 가망은 없어 아베 정권이 임기 내에 뭔가 새로운 정치적 성과를 얻을 가능성이 전무했다. 정권을 내던지고 싶어졌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의아한 것은 아베 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이후 그동안 부진했던 정권 지지율이 급상승한 것이다. 9월 8일 마이니치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8월 22일 34%였던 지지율은 50%로 16%p 증가했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비율은 42%로 이전의 59%에서 17% 줄었다. 총리가 퇴진을 표명한 후에 지지율이 상승하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라고 한다. 일본 운동사회에서는 농담으로 “‘아베 사임’이라는 결단에 절대적인 지지가 모아졌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주로 TV나 신문, 인터넷 등에서 정치에 관한 정보를 얻을 평범한 일본 국민의 거의 절반이 아베 정권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셈이다. 아베의 사학 비리나 불법 혐의가 짙은 검찰 인사와 코로나19 방역 실패를 비판하는 사람 중에서도 “그래도 아베 총리가 잘했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아베 정권 지지자들이 평가하는 주요 항목은 외교와 경제다. 아베는 총리 재임 기간에 세계를 누비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일본 총리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정상을 상대로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어떤 성과를 거두는 모습을 TV에서 본 일본 국민 중에는 일본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그 ‘성과’는 외무성 관료들이 만든 철저한 미국 추종 시나리오에 의해 얻어진 것이지만 그런 배경은 TV에 나오지 않는다.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사건에 대해서도 아베는 시종 대북 강경 자세를 견지하며 ‘의연한’ 대응을 계속했다. “반드시 되돌아오게 하겠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아베의 모습은 TV 화면에선 멋져 보였을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아베는 납치 문제 해결에 실패했지만, 그것은 아베 지지자들에게는 북한이 나빴기 때문이다.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아베의 경제정책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차원의 금융완화’였다. 엔화 약세를 유도함으로써 엔고 압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국내 통화 공급량이 늘어나 아베 취임 전의 극심한 디플레이션에서 어느 정도 탈출할 수 있었으며, 고용도 돌아왔다. 다만 본래 이 같은 금융완화 정책은 취약한 경제를 살리기 위한 이른바 ‘링거주사’로 사용돼야 하는 것인데, 아베는 재임 기간 7년 반 동안 금융완화 일변도의 통화정책을 펴면서 경제 왜곡을 극대화하고 있다. 하지만 TV를 주로 보는 아베 지지자들에게 이 같은 일본 경제의 왜곡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 밖에도 헌법과 국방정책 등 국가에 관한 이슈부터 고용과 여성정책 등 민생 문제에 이르기까지 아베는 온갖 수사와 궤변을 동원해 언론을 통해 홍보하고 독소조항으로 가득 찬 법안을 통과시켰다.

불행히도, 분명 문제가 있는 정책이라도 일본의 야당과 사회운동은 아베 정권에 대해 효과적인 조처를 하지 못했다. 정부가 장악한 언론도 그 문제점을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다. 그 배경에는 일본 사회의 오래된 사고방식과 정치 풍토, 또는 정치에 관한 여러 제도가 있지만, 이를 일본 사회운동이 아베 정치에 대항하지 못한 변명으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새 내각과 통합야당의 등장

사임한 아베를 대신해 아베 정권에서 관방장관(한국의 비서실장에 해당)의 지위에 있었던 스가 요시히데가 매우 이해할 수 없는 선출 과정을 거쳐 자민당 총재가 되면서 새롭게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됐다.

스가 총리의 정치가 어떤 것이 될지는 현 단계에서는 분명치 않지만 기본적으로는 아베 정치를 계승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베와는 정치 기법과 이념이 약간 다르더라도 일본 정치 지형에는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줄곧 아베 정치를 비판해 온 야권은 정권 탈환을 목표로 기반을 쌓고 있다. 특히 9월 출범한 입헌민주당은 민주 정권 수립을 목표로 오랜 시간에 걸쳐 각 지역 사회 운동 단체와 논의를 계속해 왔다. 이 같은 논의는 아베가 사퇴하지 않았다면 올가을부터 겨울에 걸쳐 치러질 것이라고 예상됐던 중의원 해산을 앞두고 자민당에 맞설 세력을 규합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여기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연합)의 지원을 받는 구 민주당계 정당에서 2016년 도쿄 도지사 선거 내분으로 분열된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이다. 입헌민주당은 주로 공무원과 공공기관 노조 및 시민단체의 지원을 받아 비교적 리버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민주당은 민간기업의 지원을 받는 우파적 성격이 강하다. 더욱이 이 움직임에는 사민당, 공산당 등 작은 정당도 동참해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과 싸울 수 있는 강하고 큰 야당 세력을 형성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리고 9월 15일 구 입헌민주당과 구 국민민주당 일부가 참여하는 150명 규모의 제1야당이 출범했다. 그러나 조직적인 사정이나 이념적인 문제로 구 국민 민주당의 일부나 합류를 놓고 논의를 계속해왔던 사민당도 참여하지 않아 결국 하나의 큰 야당을 형성하는 데는 실패했다. 연합과 시민단체의 조정 노력에도 입헌민주당과 국민민주당 전체가 합당에 실패한 것은 정권 탈환이라는 큰 목표를 실현하는 데 일말의 불안 요소가 될 것이지만, 각 정당은 향후 도 선거에서 협력을 계속하기로 합의했다.

이처럼 야당이 재편에 나선 데는 첫째, 현재의 선거제도에서 자민당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을 만한 정당의 규모가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둘째, 자민당 정치에 비판적인 시민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운동…반핵, 반전부터 트위터 시위까지

두말할 나위 없이 정치가 원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회단체가 많은 시민을 모아 각종 집회와 시위를 조직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작은 그룹의 자발적인 집회도 늘고 수만 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집회·시위도 자주 벌어지게 됐다.

80년대 이후 일본에서 ‘정치’라는 말은 대부분 ‘원내 정치’와 같은 의미로 사용됐다. “집회나 시위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말도 공공연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말이 틀렸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1950∼70년대 일본에선 대규모 시위와 거리 투쟁이 실패한 뒤 대중행동의 동력이 시들해졌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다시 고조되기 시작했다. 특히 2015년 전쟁법 반대 시위는 상징적이다.

아베 정권은 헌법 개정의 사전 정지작업으로 일본 자위대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전쟁법안(정식으로는 평화안전법제)을 제출했다. 이 법안은 위헌 혐의도 강하고 다시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 법안이라며 이 법안에 반대하는 많은 일본 시민이 목소리를 높이며 연일 국회 앞을 가득 메웠다. 당시 제1야당이던 민주당은 당내에 안보법제를 찬성하는 세력이 있어 처음에는 국회 앞 시위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자 결국 민주당의 유력 의원들이 시위에 참여해 명확하게 법안에 반대한다는 뜻을 표명하게 됐다. 이는 이후 민주당의 분열과 야권 재편 과정에서 현재의 입헌민주당이 주도권을 잡은 계기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주당에서 분리해 나와 창당한 입헌민주당 정치인들은 민주당 내에서 전쟁법에 강력히 반대했던 세력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전쟁법은 통과되고 말았지만 강한 반대 여론과 위헌적이라는 지적에 아베는 헌법과의 정합성을 만들며 무리한 설명을 거듭하면서 보수층에까지 ‘이 정도의 헌법 해석이 가능하다면 굳이 헌법을 개정할 이유가 없다’는 분위기가 확산했다. 결국 아베가 자신의 사명이라고 밝혔던 헌법 개정을 실현하지 못하고 사임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 전쟁법 반대 시위의 의의는 결코 과소평가돼서는 안 된다.

또 다른 상징적인 시위가 올해 1월 발생한 트위터 시위다. 아베는 자신이 관여했다고 의심을 받아온 사학 비리 등을 모면하고 검찰을 정권의 관리 하에 두기 위해 검찰청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이 검찰청법 개정안은 검찰의 중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어 역시 국민적 비판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바로 그 무렵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터라 전쟁법 반대 시위 같은 대규모 시위는 불가능했다. 그러면서 시위 대신 자연발생적으로 시작된 것이 트위터 시위였다.

‘#검찰청법 개정안에 항의합니다’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많은 트위터 이용자가 대량의 트윗을 올렸고, 그동안 정치적 의사 표명에 소극적이던 유명 연예인과 문화인도 가세해 8~11일 나흘간 900만 트윗을 기록했다. 이후에도 대량의 트윗이 계속돼 아베 정권은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검찰총장의 불법 도박이 발각돼 검찰청법 개정안은 철회됐지만 트위터 시위가 없었다면 애당초 불법 도박 보도도 묻혀 버렸을지 모른다.

한국 사회운동가라면 일본에서 일어난 국회 앞 대규모 시위나 트위터 시위 같은 행동은 다반사로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일본 사회에서는 적어도 1980년대 이후 이러한 대중행동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 결과 일본에 아베 정치 같은 위험한 정치 상황이 초래된 것을 고려하면 아베와 그 후계자에 의한 반동적 정치를 저지하는 수단으로 일본 시민들이 대중행동에 나선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현재 일본 대중행동의 발단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있다는 점, 최근의 야당 재편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즉 ‘원전 반대’는 아베 정치로 상징되는 자민당 정권에 반대하는 민심을 나타내는 중요한 키워드였다. 이에 따라 이번 야권재편에서는 신당의 기본정책에 ‘원전 제로 정책(원전 반대)’가 포함됐다. 이것이 원전 관련 기업 노조가 조직된 전력총련이나 전기연합 등 산별노조를 지지 기반으로 한 국민민주당이 신당에 합류하지 못한 주요 이유이기도 했다.

아베가 상징하는 일본의 자민당 정치에 대항하는 세력이 물론 굳건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천황제를 지지하는 사람도 천황제 해체를 외치는 사람도 있다. 전쟁법에는 반대해도 자위대는 인정하겠다는 사람도 있다. 또한 격렬한 직접 행동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적 주의·주장도 다양하다.

일본의 사회운동 역량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자민당 정치에 부정적인 시민은 결코 소수가 아니다. 그리고 이들은 ‘탈원전’, ‘반전’ 같은 키워드로 연결돼 언제든 대중행동으로 정권을 압박할 준비가 돼 있다.

문제는 새로 출발한 입헌민주당과 야당의 공동투쟁체제가 어디까지 진지하게 이런 민의를 받들어 선거를 치르고 옛 민주당 정권의 실패를 딛고 원내정치를 펼쳐 나갈 수 있을지다. 또 일본의 사회운동이 얼마나 명확하게 변혁을 재촉할 수 있을지도 중요한 문제이다.

전쟁법 반대 시위 5년. 아베가 사임한 지금, 일본에서는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행동이 다시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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