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1위’ 기사에 빠진 것은

[1단 기사로 본 세상] 코로나 극복은 사람이 했다

[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9월 29일 오후 2시 3분, 경남 사천시 선구동 신축 중인 아파트 외벽에 50대 페인트공 A씨가 매달렸다. 추석 연휴인데도 시행사와 시공사, 하청업체 누구도 밀린 임금을 주지 않아서다. A씨는 자신이 칠한 하얀 아파트 외벽에 붉은 색으로 “사기꾼 시공, 시행사는 더욱 사기꾼, 노임 주라”라고 썼다.

경찰과 소방당국이 현장에 나와 A씨를 설득한 끝에 2시간 만에 농성을 풀고 내려왔다. 내려와 재물손괴 혐의로 조사받은 A씨는 “농성하면서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줄을 끊을 생각으로 올랐다”고 했다. A씨가 맡은 도장팀은 장비 사용료와 자재대, 임금 등 5천만 원 정도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급하게 건축주와 시공업체가 몇 차례 간담회를 갖고 정산에 합의했고, A씨도 현장에서 다시 일하기로 했다. 이 소식은 경남 사천에 있는 작은 언론사가 보도하면서 알려졌다. 이 언론은 합의 소식도 전했다. 기자 수백 명이 일하는 큰 언론사는 다 어디 가 있었는지?

  ‘뉴스사천’에 실린 페인트공 고공농성 기사 관련사진 [출처: <뉴스사천> 화면 캡쳐]

해당 아파트는 지하 1층 지상 18층, 58세대로 현재 공정률 60%를 넘겼다. 경남 사천은 1991년 인구 12만 명을 넘었지만 이후 계속 감소해 지금은 11만 명에 불과하다. A씨가 올랐던 선구동은 인구 5천 명 남짓한 작은 바닷가 동네다. 이런 곳에 18층짜리 아파트가 굳이 필요한지 의문이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는 지난 17일 매일경제신문은 1면에 뜬금없이 ‘삼성전자 1위’라는 제목의 1단 기사를 실었다. 삼성전자가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최고 고용주 1위에 올라섰다는 얘기였다. 매경은 이날 11면에도 관련 내용을 머리기사로 이어서 보도했다. 11면 기사는 ‘네이버, 아모레 등 한국기업 12곳 최고고용주 톱100 진입’이란 제목이었다.

  매경 10월 17일 1면

  매경 10월 17일 11면

지난해 같은 통계에서 삼성전자가 106위를 기록하는 등 100위 안에 한국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올해는 삼성전자가 1위, LG가 5위, 네이버가 37위, 아모레퍼시픽 42위 등 한국 기업이 12개나 100위 안에 들었다. 매경은 코로나19 대응 역량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결과라고 분석했다.

매경은 삼성전자가 코로나19가 확산되자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탄력적 근무제를 도입하는 등 다양한 대응책을 발 빠르게 실시했다고 보도했다. 5위를 차지한 LG도 재택근무와 유연출퇴근제 확대 등을 높이 샀다.

그렇다고 삼성전자가 코로나19를 비껴 간 건 아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2~3월에만 4차례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구미1사업장에 확진자가 나와 2월 22~24일 공장 가동을 멈췄고, 2월 28일에도 구미1사업장 직원이 확장 판정을 받았다. 2월 29일에도 구미2사업장 생산직이 확진돼 이틀간 공장을 멈췄다. 3월2 일에도 스마트폰을 만드는 구미사업장에서 4번째 확진자가 나왔다. 3월 12일엔 삼성전자 콜센터에서 6명의 확진자가 나오기도 했다. 3월 29일엔 1월부터 두 달간 유럽 출장을 다녀온 무선사업부 직원이 확진됐다. 8월 21일과 25일에도 기흥캠퍼스 LED 기술동에서 확진자가 각각 1명씩 나왔다.

이런 잇단 확진에도 삼성전자가 대규모 집단감염 사태로 빠지지 않은 건 삼성전자 노동자가 가혹할 정도의 예방수칙을 감내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뷔페와 감성주점, 유흥주점 등 고위험시설 12종과 극장, 목욕탕 등 다중이용시설 12종의 방문 자제를 지시했고, 직원들은 이를 지켰다. 삼성전자 노동자는 사무실 안에서도 마스크 착용하고 주말 나들이도 안 했다.

언론이 기업과 그 기업이 거둔 성과나 제품에만 주목할수록 그런 성과를 만든 사람의 가치는 사라진다. 추석 연휴 전날 아파트 외벽에 올라 ‘점’처럼 보였던 페인트공은 기계가 아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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