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보조 노동자, 파견법이 만든 무권리의 합법화

사용자와 파견자의 책임전가…“파견법 폐지 않으면, 개선 불가”

‘파견법’으로 인해 사무직 파견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합법으로 둔갑하거나 은폐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무직 파견노동자들은 시간 외 근무를 하지만 수당을 받지 못하거나, 저임금, 사업장 안 차별에 놓여 있었다. 그럼에도 사용업체와 파견업체 사이의 불확실한 구조 속에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철폐연대), 4.9통일평화재단은 지난 25일 ‘사무직 파견노동 실태조사 결과’ 발표회를 열었다. 이들은 “불법파견에 맞선 투쟁이 꾸준히 전개된 것과 달리, 정작 파견법에 의해 파견이 이뤄지는 소위 ‘합법 파견’ 노동자들의 투쟁은 거의 조직되지 못했다”며 합법 파견 노동자의 권리 실태를 사회적으로 조망하는 것이 조사의 취지라고 밝혔다. ‘합법 파견’ 노동을 실태조사하고, 이를 통해 파견법이 노동자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것은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다.

설문조사는 파견 노동자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사무지원 종사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지난해 하반기 기준 한국 파견 노동자 수는 9만 7천 명이고, 이 중 3분의 1가량인 3만 명이 사무지원 종사자다. 설문조사는 지난 7월 21일부터 약 40일간 온라인 설문조사와 면접조사로 진행됐으며, 210명이 응답했다.

우선 응답자 210명 중 171명(81.4%)이 여성이었다. 그러나 응답자 중 여성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한다고 해서 사무직 파견노동자의 대부분이 여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발표자인 엄진령 철폐연대 상임집행위원은 “일반적으로 파견노동에 종사하는 비율이 여성이 조금 더 높고, 사무종사자 가운데 여성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이 조사와 같이 큰 격차를 보이진 않는다”며 그러나 “비교 가능한 다른 연구가 없어, 이 조사는 응답자 성별 현황으로 사무보조업무 파견의 성별 비율이나, 주로 여성이 종사하고 있음을 단정해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응답자 연령은 20대가 절반을 넘는 57.6%를 차지했고, 이어 30대 36.2%, 40대 이상 6.2% 순이었다. 민간기업 종사자가 139명(66.2%)으로 가장 많았으며,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도 여전히 공공기관 파견노동자는 11.4%가 존재했다.

사용업체와 파견업체의 책임 전가로 발생한 ‘무료 노동’

설문조사 결과 사무직 파견노동자들은 보통 주 40시간 근무에 시간 외 근무도 하고 있었다. 주 40시간을 초과해 근무한다는 답변이 50.5%(106명)로 2명 중 1명은 시간 외 근무를 하고 있었다. 주 40시간을 근무한다는 답변은 41.4%(87명)였다.

문제는 시간 외 노동에 대한 수당이 정확히 지급되지 않는 데 있다. 한 면접자는 “시간 외 근무를 계속하고 있다. 업무시간이 끝나도 메일, 메신저로 근무 지시가 온다. 그런데 계약서 자체에 시간 외 근무가 없고, 그러므로 시간 외 수당을 지급할 수 있는 체계가 없어 지급할 수 없다고 한다. 사용업체로는 문의가 안 돼서 파견업체 쪽으로 알아보는 중이다. 정직원이나 계약직이라도 직접고용이었으면 안 일어났을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시간 외 수당 미지급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엄진령 상임집행위원은 “시간 외 노동에 대한 업무지시는 사용업체, 수당 지급은 파견업체에서 하는데 그 사이에서 수당이 제대로 지급되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이런 구조 때문에 수당을 받지 못하거나, 무료노동을 수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최진수 ‘노동인권실현을위한노무사모임’ 노무사는 “시간 외 근로에 대해서는 애초 계약 범위 외의 것이기 때문에 해당 노동력을 직접 받은 사용사업주가 시간 외 근로 수당에 대한 직접 지급 책임을 부담하도록 입법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며 나아가 “파견근로계약 범위를 넘어서는 시간 외 노동이 발생하는 경우, 이를 곧바로 ‘불법파견’으로 보는 기준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사무직 파견노동자들의 평균 계약 기간은 16.8개월이다. 6개월 이하의 단기 계약은 23명(11.0%), 계약기간을 정하지 않았다는 응답도 1명 존재했다. 이 밖에도 다양한 기간으로 계약기간을 설정하거나 2년을 초과해 계약하는 경우도 있다. 엄 상임집행위원은 이 응답 결과에 대해 업무 대체 등을 위해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봤다. 또한 파견계약 중 그만두는 사람이 생길 경우 잔여기간을 계약기간으로 설정하는 경우도 확인됐다고 전했다.

‘저임금’, ‘사업장 내 차별’에도 모이기 어려운 노동자들의 목소리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노동자도 적지 않다. 주 40시간 이상을 근무하지만,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노동자들은 193명 중 14명(7.9%)이었다. 파견 및 도급, 용역의 경계 구별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그 안에서 고용형태가 순환되며 저임금 문제가 더욱 굳어지기도 했다. 최재혁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비정규센터 조직부장은 “한 금융그룹 비정규직 노동자는 파견 2년, 계약 2년으로 일하고, 다른 계열사에 파견 2년, 계약 2년으로 전환됐고 이후 또 다른 계열사에 파견 2년, 계약 2년 등 총 8년 동안 임금 인상 없이 같은 금융그룹 비정규직으로 노동한 사례도 있다”고 꼬집었다.

불안정 고용형태에 놓여 있으면서 겪는 차별적 경험도 상당했다. 사무직 파견노동자들은 △귀찮은 일 떠맡기기(76.2%) △업무능력 무시(70.5%) △성과 불인정(61.4%) △공식 소통망 배제(57.1%) 등의 경험을 해야 했다.

생리휴가 휴가, 산전후휴가의 경우에도 사용이 어렵다는 응답이 많았다. 여성 응답자 중 생리휴가를 자유롭게 사용 가능하다는 답변이 37명(21.7%), 산전후휴가의 경우 43명(25.1%)이었다.

파견업체인지 모른 채 입사한 경우도 7.1%로 일부 있었다. 면접을 사용업체에서만 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한 면접자는 “파견회사 사람이 와서 계약서를 작성하더라고요. 그때 알았죠. 면접을 OO에서 봤으니까 당연히 직접고용이라고 생각을 했던 거죠”라고 전했다.

사무직 파견노동자들은 대기업에서는 부서별·지점별 각각 1~2명, 중소기업 혹은 5인 미만 사업장에 소수가 존재하는 방식으로 분산돼 근무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고용형태가 유사한 집단과의 결집이 어려운 실정이다.

“파견법 개선으로는 노동조건 개선 어려워”

발표회 참가자들은 파견법의 제도개선으로는 파견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엄진령 집행위원은 “사업에 필요한 부분을 인위적으로 구분할 때 해당 업무 연계를 위해 사용업체는 해당 부문의 운영에 개입하게 되고, 그 개입의 성격에 무관하게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모호한 경계의 간접고용을 만들어 내는 것의 바탕에 파견법이 있다”고 말하며 파견법 폐지를 주장했다.

또한 “파견법은 여전히 ‘원청이 지시가 있으면 불법파견’이라는 구도와 대치되는 합법의 영역을 공고하게 해, 고용상 책임은 없지만, 직접적인 업무지시가 가능한 형태를 취한다”고 덧붙였다.

최진수 노무사 역시 “파견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대해 실질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자는 사용사업주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사용사업주는 파견노동자의 노동조건에 관한 모든 문제를 파견사업주에게 떠밀고 있다. 반대로 파견사업주는 사용사업주의 결정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서 무력한 답만을 내는 상황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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