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청 유감…공원은 정치적이면 안 된다고?

[질문들] 김용균추모 문행행동 불허…공공장소는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지난해 13년간의 정리해고 투쟁을 마무리한 콜텍 기타노동자들에게는 오랜 투쟁의 시간만큼 수많은 문화예술인의 연대가 있었다. 특히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의 노동 현실과 부당한 해고에 맞선 투쟁을 알게 된 음악인들이 지난 13년 동안 공연장에서, 기타 공장에서, 거리에서 연주하고 노래했다. 이들의 연주와 노래가 만드는 시간은 기타노동자들에게는 위로였고,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는 기타노동자들과의 연대로 이끄는 손짓이었다. 음악은 우리에게 ‘노동 없이 음악이 없다’고 함께 기타노동자들과 삶의 노래를 부르자고 제안했다.

음악이 해고노동자들을 세상과 이어줬고 불의에 맞서는 목소리를 키워주었다. 그래서였을까? 음악이, 우리가 함께 부르는 노래가 기타노동자들을 공장으로 돌아가게 하고 우리 사회를 조금 더 정의에 가깝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 2011년 종로구청은 기타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문화제를 불허했다.

기타노동자와 연대하는 이들이 인사동 입구에 있는 남인사마당에서 투쟁을 알리고 지지를 요청하기 위한 문화제를 준비했다. 이곳은 야외공연장으로 많은 사람이 오가는 거리에 있어 누구든 여유만 있다면 주변에 앉아 공연을 감상하기 좋은 곳이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악기 상점이 모여 있는 낙원상가가 있어 음악을 사랑하고 기타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이다. 기타노동자들에게, 연대하는 음악인들에게 이만큼 좋은 장소는 없다. 그런데 종로구청은 이 문화제가 순수예술이 아니라며 사용을 불허했다. 남인사마당은 순수예술을 위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대체 순수예술이 뭐란 말인가? 종로구청 공무원들은 예술 감별사인가, 평론가인가? 그 말은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공간은 없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이 거부는 기타노동자들과 문화예술인들에게 모욕적인 태도였다. 그리고 표현에 대한 검열이었다. 우리는 종로구청과 몇 번 실랑이를 하다가 근처 인도에 집회 신고를 하고 문화제를 진행했다. 좋은 공연장을 옆에 두고 상인들의 항의를 받으며 인도에 앉아서 문화제를 진행했지만, 허가를 받지 않고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당당한 마음을 갖게 했다. 그러나 종로구청에 제대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고 넘어간 것은 못내 마음에 걸렸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검열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참을 잊고 있었던 지난 일이 다시 떠오른 것은 여전히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은 종로구청으로부터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의 2주기 추모를 위한 문화행사 장소를 사용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김용균을 추모하는 것은 ‘정치적’이기 때문이란다. 9년 전의 일과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아마 종로구청은 계속 그런 식으로 장소 사용을 허가해왔을 것이다.

종로구청에 마로니에 공원 사용신청을 하면 공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사용승인을 받아야 공원을 이용할 수 있다. 종로구청은 심의위원들이 그동안 순수예술에만 대관을 해왔는데 추모문화제가 정치적이기 때문에 불허했다고 통보했다. 심의위원회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주최 측은 종로구청에 검열과 다름없는 심의에 대해 항의를 하고 종로구청의 사과를 요구했다. 종로구청은 심의위의 결정은 번복할 수 없으며, 이것은 심의위의 결정이므로 종로구청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히며 재심의를 하겠다고 했다.

심의를 다시 하겠다니? 이미 이런 방식의 심의를 거쳐 공공장소 사용을 허가하는 것이 문제임이 드러났는데 또 같은 심의위원들에게 심의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종로구청은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여전히 알지 못하거나 심의위원들에게 책임을 미루겠다는 것이다. 문화예술이 ‘정치적’이면 ‘순수’하지 않다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인가? 누구에게 표현의 내용을 확인하기도 전에 평가하고 허가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인가? 마로니에 공원은 대체 무엇을 위한 공간인가? 9년 전 솟아올랐던 질문과 모욕이 다시 재생되었다.

정치적으로 죽음을 기억하기

심의위원들의 ‘정치적’이라고 보았던 김용균 추모제는 정치적인 것이 맞다. 문제는 ‘정치적’이라서 공원에 입장할 수 없다는 그 ‘정치적인 판단’이다. 정치적인 것은 왜 공원에 입장할 수 없나?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은 정치적인 것의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시민이 정치에 참여하고 정치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권리다. 시민의 정치적인 참여가 불가능하면 그 사회는 민주적이라고 할 수 없다. 정치적인 행동을 가로막는 것이야말로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반민주적인 행위다. 그렇기 때문에 종로구청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이다.

문화예술인들이 김용균을 기억하며 일하는 사람들이 더는 노동 현장에서 다치거나 죽지 않기 위한 사회를 염원하는 추모문화제를 준비했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시를 읊고 노래극을 하고 춤을 추며 김용균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잇고자 했다. 김용균 추모제는 애도와 위로의 시간이자 지금의 노동 현실을 돌아보자는 표현이고 소통이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자는 선동이며 연대의 요청이다.

올해 1월 경향신문은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며 평균 하루 3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목숨을 잃는다는 기사를 냈다. 얼마 전 서울신문은 1면 전체를 올해 상반기 산재로 사망한 42명의 야간노동자 부고로 채웠다. 우연하거나 어쩔 수 없는 죽음이라 할 수 없는 이 죽음들을 확인하면서 우리 삶 곳곳에 스며있는 노동자들의 노동과 삶을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다. 이런 기억과 기록이 아니라면 알지도 못했을 이들의 노동의 떠올리며 우리 사회의 현재 노동을 돌아보게 된다. 이들이 삶을 지킬 수 있었던, 여전히 삶을 이어갈 수 있었던 그 시간을 잃은 것에 대한 책임을 느낀다. 죽음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으로 우리 사회의 부정의를 바로 잡을 수 있는 행동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정치적이라면 우리는 더 많이, 더 적극적으로 정치적이어야 한다.

김용균의 노동과 죽음이 이미 정치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기억하려 한다. 여전히 위험을 곁에 둔 김용균들의 노동을 증언하면서 노동자의 생명을 이윤축적과 바꾼 기업에 책임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에게 책임을 물으려 한다. 이런 정치적인 행동이 사람을 지키고 삶과 노동을 존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공공장소에 대한 권리

마로니에 공원은 종로구청의 소유물이 아니다. 이곳은 시민을 위한 열린 공간이고 종로구청은 행정기관으로서 공공장소를 유지하는 책무가 있을 뿐이다. 종로구청의 책무는 공공공간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이용되면서 시민들이 서로 교류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누군가 이 공공공간을 독점하거나 폭력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통제할 수 있지만, 부당하고 자의적인 규제를 할 수 있도록 권한을 준 것이 아니다. 공공공간을 평화롭게 사용하려 한다면 그것은 허가의 대상이 되어서도 안 된다. 행정기관이 해야 할 일은 평화롭게 공공공간을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공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행정기관으로서 할 수 있는 조치와 지원을 하는 것이다. 오히려 종로구청이 김용균추모 문화행동을 위한 사용신청을 불허함으로써 공공공간을 구청이 독점하고 사유화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공공장소의 입장을 통제하는 것은 종로구청만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촛불집회의 기억이 있는 광화문광장은 최소 7일 전에 시장에게 사용허가신청서를 제출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시장은 광장조성목적을 고려해 허가를 거부할 수 있다. 시민들의 반대를 이유로 사용을 불허하는 경우도 많다. 2013년 마포구청은 홍대 앞 나무무대에서 진행할 성소수자 단체들의 ‘커밍아웃 문화제’에 대해 주민들의 반대민원을 이유로 불허했고, 제주시도 같은 이유로 2017년 제주 신산근린공원에서 예정된 제주퀴어문화축제의 부스설치 허가를 취소했다. 가장 최악은 2019년 새로 조성된 인천시청 앞 인천애뜰 광장의 잔디마당을 조례로 집회를 전면금지한 것이다. 이 조례는 현재 헌법소원심판이 청구되어있다.

거리, 공원, 광장과 같은 공공장소는 정부가 시민의 여가를 위해 시혜적으로 또는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 공간이 아니다. 이곳은 시민의 공간이자 열린 공간으로 시민들이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우리는 공공장소에서 동료시민들과 함께 교류하고 경험하며 행동한다. 이런 행동이 공공공간의 공공성을 실현하고 민주주의를 확장한다. 공공공간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은 공공성을 구현하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아야 한다. 행정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을 시민들의 결정이라는 핑계 뒤에 숨지 말고 인정하라. 공공장소일수록 갈등하고 불화하면서 서로 설득하고, 논쟁하고 공감하면서 연대를 만들고 정치를 실천하는 곳이어야 한다. 종로구청을 비롯해 공공장소 사용을 통제하는 모든 지자체의 허가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이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의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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