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성폭력 사건 “조원태 회장이 직접 나서야”

부당 인사조치, 2차 가해…세 차례 진정, 전수 조사 요구에도 해결되지 않아

대한항공 성폭력 사건 및 피해자에 대한 부당 인사 조치와 2차 가해 등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어, 이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노조는 피해자가 성폭력·성희롱 전수 실태조사를 요구했으나, 회사 측 변호인이 권한이 없다고 답변했다면서 사건 해결에 조원태 회장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공운수노조 및 대한항공직원연대지부는 30일 오전 한진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 회복은 대한항공과 조원태 회장이 피해조합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며, 피해조합원의 요구에 따라 대한항공 내 성폭력·성희롱 전수 실태조사를 반드시 실시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노조는 피해자 의견서를 포함한 노조 입장서를 회사 측에 전달했다.

노조에 따르면 피해자 A씨는 2017년 직장 내 성폭력(강간미수)을 비롯해 성희롱, 괴롭힘과 이로 인한 부당한 인사 조치, 2차 가해를 겪어왔다. 이에 A씨는 진정을 넣었으나 회사는 강간미수 사건에 관해 내부규정과 달리, 징계 없이 가해자를 사직 처리했다. 더구나 세 번의 진정에도 불구하고 직장 내 성희롱 및 괴롭힘, 인사 이동에 관련해서는 조치가 없다가 A씨가 대한항공 조원태 회장에게 직접 진정을 넣자, 회사로부터 연락이 왔고 피해자는 관련자들을 모두 조사해달라고 또 다시 요청했다. 그러나 3개월 이후 받은 답변은 “조사를 진행해보니 성희롱·괴롭힘의 가해자로 지목한 직원들 대부분이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그래서 회사로서는 어떠한 조치도 할 수 없다”, “인사 이동은 통상적인 인사 이동이라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현재 가해자인 상급자는 회사를 그만둔 상태이며, 대한항공은 피해자에게 매각 대상인 사업장으로 출근을 명령했으나, A씨의 반발로 이뤄지진 않은 상태다. 또한 A씨는 회사의 부적절한 조치로 강간미수 사건과 관련해 대한항공 및 가해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조정 중에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상 사업주 조치 의무 위반 등으로 지난 9월 고용노동부 중부지방고용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하기도 했다.

A씨는 대독을 통해 “대한항공은 내 사건에 관해 여성가족부 매뉴얼대로 ‘징계 또는 적절한 조치’를 했다고 한다. 그 ‘적절한 조치’로 인해 부하직원을 강간하려 한 상사는 아무런 징계 없이 조용히 사직했고, 피해자인 저는 이 자리에서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적절한 조치였나”고 비판했다.

이어 “조원태 회장은 대한항공의 대표자로서 윤리 경영의 책임이 있다. 대한항공과 같은 거대 기업이 오랜 시간과 많은 금전을 요구하는 법적 소송을, 대한항공 조직 내 상사로부터 피해를 받은 직원 개인과 소송을 계속해 다투는 것이 윤리적 처사인지를 회장이 살펴봐 달라”고 전했다. 앞서 피해자 측은 ‘조직 내 성희롱 실태를 조사하고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조건으로 회사에 제기한 소송을 취하하겠다고 했으나, 사측 대리인으로부터 ‘우리에게 결정 권한이 없다’는 말만을 들어야 했다. 이에 노조와 조합원 A씨가 회장에게 사건 해결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편선화 지부 여성부장은 “피해자가 강간 미수 이후 신고를 곧바로 하지 못한 이유는 이전에 다른 상사로부터 성희롱 피해를 입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목격자가 회사에 신고했다. 그러나 피해자는 타부서로 인사 이동되고, 저성과자 프로그램을 듣는 등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 결국 건강 악화로 2년 휴직을 했다. 이 경험 때문에 강간 미수 사건 직후 신고하지 못했다. 신고조차 하지 못하던 피해자에게 가해자는 끊임없이 사적인 연락을 했고, 이를 거부하는 피해자에게 업무 테스트에서 탈락을 시키고 타부서로 인사 이동을 시키는 불이익을 줬다”고 비판하며 회사의 계속된 무대응을 비판했다.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국장은 “여성이 겪는 직장 내 성희롱은 사소하게 여겨지고 심지어 이를 업무능력으로 여길 때도 있다. 젊은 여자가 일하면 주변의 성적 시선과 괴롭힘이 동반될 수 있고, 이를 이겨내고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인식은 오랜 시간 동안 여성노동자를 괴롭혔다. 그리고 이 인식을 길들이고자 하는 성차별적 기업 문화가 존재”한다며 “A씨가 이 문화에 싸워왔으나, 여전히 성희롱을 ‘여성 노동의 리스크’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여성 노동은 마치 고 김용균 노동자가 사망한 곳에 위험 요인을 제거하지 않고 여전히 노동자들을 일하게 하는 것과 같다. 어쩔 수 없는 노동환경으로 규정하면서 대한항공은 이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직 내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우리 사회 태도는 너무나 천편일률적이다. 발생 사실을 불인정하거나 성폭력이 아니라 하거나, 피해자 탓이라고 돌리는 2차 가해를 조직한다. 르노삼성, 한샘 성희롱 사건, 지방자치단체장 성폭력 사건에서 볼 수 있듯 각기 다른 성폭력, 성희롱 피해에서도 똑같은 양태로 대응되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금이라도 피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조는 피해자 A씨의 요구인 ‘대한항공 내 성폭력, 따돌림, 괴롭힘 관련 전수 실태조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노조는 입장문에서 피해자 요구의 이유에 대해 “자신이 겪은 일이 특수한 일이 아니라, 대한항공 내에서 지금도 어디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라며 “대한항공의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조직문화 때문에 피해 노동자들이 회사에 신고할 엄두조차 못 내는 것이 대한항공의 뼈아픈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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