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간 탄가루를 마셨고, 폐암에 걸렸습니다”

[특별기획: 검은 땅을 먹고 살았다] 까막동네 주민 김봉수(71) 씨

[출처: 워커스 취재팀]

도계역에서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 방향으로 걷다 보면 마을과 마을을 가르는 영동선 기찻길이 나온다. 기찻길 너머에는 작고 허름한 구옥들이 낮은 언덕을 따라 촘촘하게 들어차있다. 도계 주민들은 기찻길 너머의 작은 마을을 ‘까막동네’라고 불렀다. 마을 뒤 도계광업소 저탄장에서 날아온 탄가루로 마을이 새까맣다고 붙여진 이름이었다.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전두1리 11, 12, 13반 70여 가구가 모여 사는 까막동네. 이곳의 주민 다수는 퇴직 광부다. 그래서 진폐나 규폐 같은 호흡기 질환을 직업병으로 얻었다. 마을에선 매일 기침 소리가 끊이질 않지만, 주민들은 광업소에서 날아오는 탄가루와 먼지, 연기 같은 것을 마시며 살아간다. 석탄 산업의 황금기와 쇠퇴기를 함께 했음에도, 그들은 한 번도 삶의 황금기를 누려보지 못했다. 이곳 막장의 남성 광부와 선탄부의 여성 광부들은, 여전히 까만 땅을 먹으며 산다.


[특별기획1] 까막동네: 쇠락한 탄광촌 마을 사람들

1) “35년간 탄가루를 마셨고, 폐암에 걸렸습니다”
2) 탄가루가 내려앉은 퇴직 광부들의 마을, 까막동네
3) 여성 광부①: 가난해서 데모도 못 했다
4) 여성 광부②: 선탄 작업 도중 산재사고…다리를 잃어도 삶은 계속 된다
5) 여성 광부③: 광부는 두 하늘, 여성 광부는 세 하늘을 덮고 살았다
6) 탄광 노동자 죽음과 산재로 쌓아올린 석탄 산업
7) 탈석탄 전환 사회’, 폐광촌 주민 목소리는 없다

  까막동네 주민 김봉수 씨 [출처: 워커스 취재팀]

이 동네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만 삽니다. 그러니 정부나 회사에서 신경 쓰질 않죠. 바람 부는 날이면 광업소에 쌓여있던 탄가루와 먼지가 마을로 퍼집니다. 안 그래도 새까만 동네가 더 새까매져요. 광업소에서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연기를 피웁니다. 전깃줄이나 쓰레기 같은 것을 태우는지 매캐한 냄새가 나요. 탄가루와 먼지, 그리고 연기를 들이마시면 숨이 턱 막힙니다. 너무 고약한 일이지 않습니까. 옛날에 곰 잡는다고 굴속에 불을 피우고 그랬다는데, 요새는 곰도 그렇게 안 잡습니다. 우리가 짐승도 아니고, 개, 돼지한테도 이렇게는 안 해요.

마을 바로 뒤에 광업소가 있으니, 마을 사람들은 집안 문이나 창문을 열어놓지 못해요. 문을 닫아 놓는데도, 방 안까지 탄가루와 먼지가 들어와 아무리 닦고 쓸어도 금세 시커메집니다. 광업소 앞 마을 길에 탄가루가 쌓여도 누구 하나 물 뿌리는 사람이 없어요.

제가 지난 6월에 폐암 수술을 해서 이런 먼지나 탄가루를 마시면 안 돼요. 따지기도 하고 화도 내 봤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이 동네는 대부분 일흔, 여든이 넘는 노인들만 삽니다. 이제 더 이상 오고 갈 데 없는 노인들. 뭉쳐서 싸우기도 힘든 사람들이죠. 옛날에 한 번 데모를 한 적도 있는데, 원체 노인들이다 보니 힘을 못 쓰고 그냥 흐지부지됐어요. 그리고 나선 그냥 방치돼 있는 거죠. 한때는 이 동네도 150가구가 넘게 북적거리며 살았는데, 석탄 합리화 정책 이후에는 사람들이 많이 떠나서 지금은 70가구 남짓 됩니다. 매일 탄가루 들이마시는 동네에 누가 살고 싶겠어요. 어디로든 떠날 수 없는, 그럴 돈이 없는 사람들만 남은 거지요.

[출처: 워커스 취재팀]

저도 그렇고, 여기 마을에 사는 사람들 다수가 옛날에 탄광에서 일했던 사람들입니다. 젊어서도 탄가루 마시며 일을 하고, 늙어서도 탄가루를 들이마시며 사는 거죠. 다들 탄광 다니면서 30년, 50년을 여기서 산 사람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이 동네에 들어온 지 벌써 35년째네요. 예전에는 도계라고 하면 개도 만 원짜리 물고 다니는 동네라고 했습니다. 대한석탄공사에 다닌다고 하면 딸 가진 부모들이 묻지도 않고 시집을 보냈던 시절도 있었고요. 그런데 이제는 많이 변했습니다. 광부들이 죽고, 병들고, 다치다 보니 더 이상 광산에 들어가려는 사람이 없어요.

제 부친은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일찍이 돌아가셨어요. 돈을 벌어야 하니 열여덟에 탄광에 들어가 30년 넘게 일을 했습니다. 광산에서 일한다고 모두 다 풍요로운 건 아니었습니다. 석탄공사 정규직은 그나마 처우가 괜찮았지요. 그런데 저는 공사 정규직이 아니었습니다. 옛날에는 광산에 취업하려는 사람이 많아 정규직으로 들어가기가 힘들었거든요. 석탄공사로서도 보너스나 퇴직금 누진제를 적용할 필요가 없는 하청노동자를 많이 쓰고 싶었겠지요. 인건비 절감을 위해 그만한 게 없으니까요. 저는 경동광업소에서 일을 했지만, 평화기업사라는 하청업체에 소속돼 일을 했어요. 하청 노동자들이 광산에 들어가 탄을 파서 하청업체에 넘겨주면, 하청업체가 그걸로 우리 임금을 줬어요.

하청노동자 중에서도 저는 돈을 잘 못 버는 축에 속했습니다. 일하기가 너무 싫었으니까요. 광산에 들어가는 것이 정말 너무나도 무서웠습니다. 원체 사고가 자주 났고, 실제로 일하다가 몇 번 죽다 살아난 적도 있어요. 저는 항 내 굴속에 들어가서 동발(탄광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갱도에 설치하는 지주목) 철수 및 보수작업을 했습니다. 한 번은 일하다가 동발이 무너지는 사고를 겪었어요. 그대로 머리를 덮쳤으니,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요. 머리를 다친 뒤, 변호사를 구해 3년간 법정 싸움을 벌였지만,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크고 작은 사고를 겪었습니다. 석탄을 실은 수레에 손이 끼어서 손가락이 박살 나고, 무릎을 다쳐 고생하고, 이래저래 골병이 들었지요. 그 몸을 하고서 만근을 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하루 8시간 3교대, 주 6일 출근이 만근이었습니다. 야간작업을 하려면 밤 11시에 출근해 옷을 갈아입고 12시에 항 내에 들어갑니다. 쇠를 가지고 들어가 동발을 만들고, 탄을 캐 수레에 실어 아침 7시에 나옵니다. 잠도 못 자고 항 내에 들어가 일을 하면 말도 못 하게 겁이 났습니다. 무너지면 다 죽을 거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어요. 그러다 보니 만근을 채우지 못했고, 임금은 언제나 모자랐지요.

결국 광부 일을 그만뒀습니다. 광산에서 나와 보니 할 수 있는 일이 없더군요. 이런저런 일자리를 전전했습니다. 환갑을 앞두고는 건설 현장에서도 일했습니다. 나이도 나이이고, 몸도 원체 성치 않다 보니 일하기가 힘들더군요. 결국 드릴로 구멍 뚫다가 2m 높이에서 추락해 허리를 다쳤어요. 말도 못 하게 고생을 했지요. 지난해 공단에서 장애 7급을 받았습니다. 먹고 사는 게 시급해서, 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했어요.

광산에서 탄가루를 마시며 그리 오래 일을 했으니, 당연히 호흡기도 좋지 않았겠지요. 광부들에게 진폐증이나 난청은 흔한 질병입니다. 저도 난청이 있고, 호흡기도 좋지 않았습니다. 최근 폐가 좋지 않아 동네 병원에서 1년 정도 치료를 받았어요. 병원에서 진폐증이 있는 것 같다고, 혹시 급수를 받았느냐고 해서 못 받았다고 했습니다. 진즉에 검사해서 진폐증 급수를 받아놔야 했는데, 그걸 못했던 것이 두고두고 한이 됩니다. 어느 날 병원에 갔더니, CT를 찍어보자더군요. 검사를 했더니 폐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며, 큰 병원으로 가보래요. 원주병원으로 가 조직검사를 했고, 검사 결과 폐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6월, 폐암 수술을 받았고요.

[출처: 워커스 취재팀]

정말 딱 죽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내가 만약 죽기라도 하면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아니 내가 살아남는다고 해도 이제 뭘 먹고 살아야 하나. 1년에 한 번씩 검사를 받았어야 했는데, 진폐 급수라도 받았으면 내가 죽어도 가족들은 먹고살 수 있을 텐데. 숱한 후회와 자책이 밀려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광산서 일하고, 광산에 살며 얻은 병인데 그냥 이렇게 죽을 수는 없는 일이잖습니까. 폐암 치료 과정 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폐암 등의 수술을 하면 공단에서 진폐 급수를 잘 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진폐 합병증으로 폐암이 발생해도 진폐 보상연금을 지급받기 어려운 것이죠. 결국 고민 끝에 노무사를 찾아갔습니다. 공단에서 진폐 검사 신청조차 받지 않을지도 모르니까요. 만약 그렇게 되면 소송을 해야 하는데, 그저 막막하기만 합니다.

제 몸이 이렇게 망가지니, 아내가 돈을 벌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동네는 탄광밖에 없어서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 힘듭니다. 그 흔한 공장 하나 없어요. 아내는 역 앞 식당에서 10년간 일을 했어요. 그러다 손가락이 탈골돼 일을 그만뒀습니다. 수술도 받지 못한 채 통증을 참으며 살고 있어요. 아내가 여기서 참 고생이 많았지요. 이 동네 처음 이사 올 때, 아내가 셋째를 배고 있었어요. 그때 마을 주민들이 공용화장실을 짓는다고 해서, 아내가 만삭인 몸으로 가서 돕고 그랬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집마다 화장실이 없었을 때니까요. 지금도 우리 집 뒤편에 그 공용화장실이 남아 있어요. 주민 몇몇이 사용을 하고 있지요.

여기 주민들 사정은 다 비슷합니다. 광산에서 일한 사람이 다수고, 진폐증이나 난청 같은 병을 앓고 있어요. 요 밑에 사는 할머니도 예전에 저랑 같이 광업소에서 일했습니다. 항 내에서 싣고 나온 탄을 골라내는 작업을 했어요. 그때는 광산에서 남편을 잃거나, 돈을 벌어야 하는 여성들이 선탄부에서 일을 하곤 했거든요. 그 할머니도 지금 진폐증을 앓고 있습니다. 광산에서 일한 주민들 대다수가 진폐증을 앓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모두 진폐 급수를 받는 건 아니지요. 저처럼 검사 시기를 놓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검사를 받았어도 급수 인정에서 떨어진 사람도 있을 겁니다.

[출처: 워커스 취재팀]

그런 사람들이 매일 탄광에서 나오는 탄가루와 먼지를 마시며 살고 있으니 그 고통이 어떤지 아십니까? 매일 포크레인과 불도저가 왱왱거리면서 연기와 먼지를 내뿜어요. 아침저녁으로 방을 닦아도 매번 새까만 먼지가 묻어납니다. 광산 일을 하지 않은 주민들도 평생을 이렇게 살면 진폐증에 걸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정부는 관심도 없어요. 예전에 한 번 주민들 상대로 폐 질환 검진을 한 적이 있는데, 그걸로 끝입니다. 정기적으로 해주지도 않아요. 검진 결과도 그냥 다 괜찮답니다.

왜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곳 주민들은 갈 곳이 없어요. 늙고, 병들고, 가난해서 떠날 수가 없는 사람들인 겁니다. 까막동네 부지도 대다수가 개인 땅이 아닙니다. 석탄공사, 철도공사, 하천부지 땅이 섞여 있어요. 주민들은 그 땅에 그냥 작은 집 하나 올려서 사는 것이죠. 도계에서는 광업소 없어지면 발전이 없다고, 동네가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오갈 데 없는 우리가 죽는 것은 상관없다는 겁니까. 개발과 발전이 사람 목숨보다 소중합니까. 광업소를 살리려고 하면 우리도 살게 해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여기서 탄가루 마시며 사는 진폐 환자들에게 그 누구도 이주대책을 얘기한 적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신경 써 준 곳은 아무 데도 없습니다. 저희는 그냥 광업소가 빨리 떠났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숨 좀 쉬면서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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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세상 독자

    강원도 동생들 만나봤는데 그 동생들 부모님이 탄광일을 하셨더라고요. 다 14세에서 17세 가량이었는데 산골에서 서울로 와서 참 맑은 동생들이었답니다. 물론 그 또래의 고민들도 안고 있었지요.

    노동이란 게 한편으로 그렇습니다. 오랫동안 생계를 이어주기도 하지만 암과 같은 병에 노출될 때는 인생이 송두리째 날아가고 맙니다. 사실 탄광 뿐만이 아닙니다. 나는 보통 사람보다 공장을 열배 이상은 다녀봤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좋은 제품, 첨단상품 대부분은 임금노동자들이 돌가루를 마시거나, 마연가루, 쇳가루, 가스, 매연 등을 마시면서 탄생하는 물건들입니다. 물론 안전에 대한 노력을 많이 하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100%라고 할 수 있는 사업장은 없을 것입니다.

  • 문경락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곳 주민들은 갈 곳이 없어요. 늙고, 병들고, 가난해서 떠날 수가 없는 사람들인 겁니다. 까막동네 부지도 대다수가 개인 땅이 아닙니다. 석탄공사, 철도공사, 하천부지 땅이 섞여 있어요. 주민들은 그 땅에 그냥 작은 집 하나 올려서 사는 것이죠. 도계에서는 광업소 없어지면 발전이 없다고, 동네가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오갈 데 없는 우리가 죽는 것은 상관없다는 겁니까. 개발과 발전이 사람 목숨보다 소중합니까. 광업소를 살리려고 하면 우리도 살게 해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여기서 탄가루 마시며 사는 진폐 환자들에게 그 누구도 이주대책을 얘기한 적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신경 써 준 곳은 아무 데도 없습니다. 저희는 그냥 광업소가 빨리 떠났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숨 좀 쉬면서 살고 싶어요.

  • 술 취한 노옴

    은혜야 상복입고 국민의 힘 초상이나 얼른 치뤄라

  • 김치치

    좋은 기획이네요. 끝까지 열심히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