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가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모자원에 입소했습니다

[시설에 숨겨진 여성들②] 자립 후 생계 어려움에도 시설로 가지 않겠다는 K씨

[이슈] 시설에 숨겨진 여성들

① 마녀사냥이 벌어지는 시설에서 겨우 1년을 살았습니다
② ‘교회에 가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모자원에 입소했습니다
③ 15년간의 내부고발, “다시 싸워보려 합니다”
④ 토착 기업이 된 모자원, 비리와 세습의 역사
⑤ 미혼모는 탄생과 동시에 어머니로서 추방됐다
⑥ 정부가 시설에 숨긴 0.3%의 한부모 여성들



불교 신자였던 K(42) 씨는 모자원에 들어가기 전 ‘교회에 다니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해야 했다. K씨를 비롯한 다른 입소자들도 시설 입소 전 서약서를 썼다. 이 모자가족복지시설은 입소 기간을 연장하려면 두어 달 전부터 교회에 나가야 하는 이상한 규율을 정해놓고 있었다.

K씨에게 이곳은 두 번째 시설이었다. 기존에 머물던 시설을 떠나, 새로운 지역의 모자원으로 거처를 옮긴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어렵게 구한 일자리는 원래 거처와 멀리 떨어진 대도시였고, 돈이 부족한 K씨는 어쩔 수 없이 타지의 한 모자원에 짐을 풀었다.

“엄마들은 기도로 복을 받아야 한다.”

“엄마들이랑 어울리지 마세요.” 시설 원장의 첫마디는 이랬다. 왜 원장이 시설 입소자간의 관계를 지시하고 금기시하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그리고 나선 교회를 다녀야 한다는 서약서를 작성하라고 했다. K씨는 서약서에 서명을 했지만, 실제로 교회에 나가지는 않았다. 그가 교회에 나가지 않고도 버틸 수 있었던 건, 30세대가 넘게 거주하는 이 시설에서 그의 ‘드센 성격’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입소 당시 교회에 다녀야 한다는 서약서를 작성하게 했어요. 한부모들은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에 기도로 복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말이죠. 더 큰 문제는 다른 종교가 있는 엄마들에게까지 강압적으로 교회를 다니게 했어요. 저 같은 경우는 교회를 안 나갔어요. 그러니 저를 보는 직원들 눈빛도 변하고, 아예 인사도 안 받아주더라고요.”

심지어 K씨는 교회에 안 다닌다는 이유로 예정된 후원금도 받지 못했다. 모 어린이재단에서 매달 5만 원씩 그에게 후원금을 주기로 확정돼 있었지만, 이 지원은 다른 입소자에게로 갔다. 같은 불교 신자였던 그 입소자는, K씨와는 달리 열심히 교회에 나가고 있었다. 시설에서는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소 기간 연장이 불허된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불이익 때문에 입소자들은 입소 기간 연장 시기가 되면 교회를 열심히 나갔다.

직원 사무실, 엄마들의 과거를 알 수 있는 곳

시설에서 무탈하게 살기 위해서는 모든 사생활도 포기해야 했다. 직원 사무실은 엄마들의 과거를 알 수 있는 ‘비밀 창고’였다

“여기 온 엄마들은 다 가정의 아픔이 있어요. 자기가 겪었던 일들을 입소자들과 터놓고 얘기하는 엄마들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래서 상담 선생님이 존재하는 것이지만, 정작 이 선생님들에게 속 얘기를 터놓으면 다른 엄마들이 다 알고 있다고 봐야 해요. 엄마들에 관한 얘기는 사무실을 가면 다 알 수 있는 거죠”

시설에는 미혼모도 있었고, 남편을 사별한 사람도 있었으며, 사실혼 관계에 있는 여성도 있었다. 사실혼 관계에서 모자원에 입소한 K씨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인정을 받기 위해 1년 반 넘게 속앓이를 해야 했다. 당시 K씨는 결혼을 약속한 애인의 호적에 아이를 올려놓은 상태였다. 수급자 신청을 했지만, 서류상 부양의무자인 아이 아빠의 재산이 잡혀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결국 아이를 빼앗길까 봐 만남을 피해왔던 아이 아빠를 찾아가, 양육비는 필요 없으니 친권 포기각서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수급 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10년간 연락을 끊고 산 친정 부모가 K씨를 부양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도 애를 먹었다.

“그래도 시설 생활을 버틴 이유는…”

2013년 두 번째 모자원에 입소한 K씨는 그곳에서 3년을 산 뒤, 최대 연장 기간인 2년을 더 채우고 퇴소했다. 그에게 그때의 5년이란 시간은, 다시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시간이기도 했다. 시설은 입소자들의 ‘자립’을 내세워 무엇이든 강제하려고 했다. K가 노동으로 벌어들인 돈까지 시설에서 관리했다. 시설은 입소자가 노동하는 경우 사용 후 남은 임금의 70%의 저축하도록 강제했다. 직접 일을 해 벌어들인 임금의 사용처까지 은행 빚과 아이 학원비 등으로 제한했다. 다른 곳에 돈을 사용하게 되면 시설에 영수증을 제출해야 했다. 적금을 깨면 수급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수급비는 당시 매달 49만 원가량이 나왔고, 명절이면 50만 원가량이 들어왔다.

무엇보다 K씨에게 시설 생활이 상처로 남은 이유는, 입소자에 대한 차별과 괴롭힘 때문이었다. 어느 날인가는 피해자였던 한 입소자와 다른 입소자간에 시비가 붙었고, 그 과정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원장은 “멍청한 애 건드려서 뭐 하냐”며 가해자를 옹호했다. 원장을 비롯한 직원들 모두 갈등 해결에 나서지 않았고, 소위 ‘말발’이 약했던 피해자는 괴롭힘을 당하며 방치됐다. K씨는 약자를 보호한다는 시설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던 피해자에게 폭력이 가해지는 모습을 보며 진절머리를 쳤다.

K씨는 5년의 시설 생활을 정리하기 위해 LH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임대주택을 찾았다. 그러나 임대조건인 임대보증금을 5%를 납부할 수 있는 한부모는 많지 않았다. K씨는 지인에게 겨우 돈을 빌려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었다. 그가 자립하는 과정에서 시설의 별도 지원이나 상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그는 ‘근로 능력이 있다고 인정된’ 조건부 수급자다. 조건부 수급자는 2인 가구 생계 급여액인 80여만 원을 받지 못한다. 2월부터 초등학생인 자녀가 학교를 못 가게 되면서 하던 일도 중단했다. K씨의 아이는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증후군을 앓고 있다. 최근에는 증상이 더 심해져 K씨가 온종일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다. 코로나19와 자녀 돌봄 때문에 일을 할 수 없는 그는 22만 원 정도로 한 달을 버텨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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