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밀레니얼, 잠이 오지 않는 밤의 스케치

[리아의 서랍]


잠을 제대로 잘 수 없게 된 지 20년 정도 됐다. 이쯤 되면 평범하게 잠들고 깨어나는 일이 어떤 것인지 까먹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약을 먹지 않고 잠을 청하면 잠들더라도 4시간에 한 번씩 깨어난다. 아예 잠들지 못할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머릿속이 타닥타닥 타는 것처럼 경련하는 이상한 감각이 들고, 온 우주에 내려앉는 먼지 소리가 다 들린다. 몸에 갇힌 느낌을 어떻게든 해소해 보려고 발버둥 치다가 다시 잠들려 노력하기를 수차례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아침이다.

그렇다면 복약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전혀 아니다. 약은 나를 일정한 규격으로 기절시키는 역할을 해 줄 뿐이다. 게다가 한 번 먹으면 약 기운이 가실 때까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서 소화해야 할 스케줄이 많은 시기에는 안 먹느니만 못하다. 부작용 문제도 있다. 최근에는 약 부작용에 따른 고통 때문에 달리는 기차 앞으로 뛰어들 생각까지 했다. 몇몇 외신 보도에 따르면 같은 부작용을 경험한 환자들이 종종 실제로 기차에 뛰어들곤 해 화제라고 한다.

어쨌든 의사한테 가면 하나같이 내게 정신병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들 하는데, 이게 정말 병이라면 진심으로 낫고 싶다. 처음 우울증 진단을 받았던 10대 때부터 30대가 된 지금까지 안 해본 시도가 없다. 성실하게 병원에 다니며 약을 먹거나 상담을 받을 때도 있었고, 병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의지로 이겨내려 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중간중간 병명이 바뀌거나 증상이 추가되기만 했을 뿐, 결과적으로는 아무것도 ‘치료’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잘 수 없고, 매일 죽음을 미루며 산다. 원래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처럼.

이런 상태로 오래 지내다 보면 점점 물리적인 병과 정신증을 잘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아파도 병원에 가기가 싫어진다. 진료를 받아봤자–몇십만 원이나 하는 검사비가 든다!–스트레스성이니 푹 쉬라는 진단이 나오기 때문이다. 피부에 발진이나 두드러기가 돋아 고생하는 것도, 영문을 모를 근육통에 신음하게 되는 것도 검사해 보면 어차피 내 마음의 문제다. 한번은 두통이 너무 심해 신경외과로 보내졌다가 돌고 돌아 결국 항우울제를 처방받은 적도 있다.

너무 총체적인 문제라서 혁명 말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현대 의학이 혼자 발전해서 괜찮아질 일이 아닌 듯하다. 예를 들어, 정신병원에서는 내게 주기적으로 입원을 권유한다. 그러나 입원비는? 병원에 들어가 있는 동안에도 그대로 출금될 집 월세는? 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못하게 하는 내 업무들은, 나는 누가 책임져 줄까? 정신병원이 아닌 병원 또한 내게 주기적으로 휴식을 권유한다. 쉬는 게 좋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어떻게 쉬어야 할지 의문이다. 가족이 없고 주거가 불안정한, 저임금 노동을 하는 빈곤 여성이 푹 쉴 수 있는 방법을 내가 빨리 알아내야 할 텐데….

이렇게만 써 놓으면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환자의 넋두리로 들릴 수도 있겠다. 엄살 심한 철부지라고 생각될 수도 있고. 하지만 글 밖의 나는 고통에 대해 잘 얘기하지 않는 편이다. 외려 건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안달이 나 있다. ‘멀쩡하게’ 할 일을 하면서, 아프다는 이유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알다시피, 이런 종류의 고통은 늘 의심의 눈초리에 시달리게 되며, 그에 맞서 진실을 밝힐수록 말하는 사람만 불리해진다.

정신이든 몸이든 결함이 있는 사람은 노동시장에서 기피 대상이다. 나와 비슷한 수준으로 아픈 사람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제도가 전무한 지금, 도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행위는 당장의 생존을 위협하게 된다. 친밀한 관계에서도 배제되기 쉽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아픈 사람을 감당하기 부담스러워한다. (아마 그들도 바쁘고 아파서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 이 글은 거짓말이다. 나는 괜찮다. 사람이 어떻게 20년 동안 잠을 못 잘 수가 있겠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요즘 코로나로 인한 불황 때문에 일거리가 떨어져서 새로운 직장을 구하고 있는데, 채용 담당자분께서 어쩌다가 우연히 이 글을 접하신다면 원고료를 받기 위해 쓴 소설로 읽어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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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속에서, 누군가 책을 읽고 있다고 가정하자. 푹 쉬는 방법으로 계속 자살이 떠올라서 피곤한 사람이, 자신이 겪는 문제-정신병, 통증, 원인을 알 수 없는, 어느 정도는 세계가 원인인 듯한 고통-와 연관된 것들을 다룬 이야기를 찾아 읽는 중이라면.

좋은 이야기들은 분명 미래 세상에 보탬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는 아직 미래가 안 왔다. 그가 느끼는 바는 다음과 같다. 돌봄 받는 경험은 역시 가족이나 연인, 돈이 있지 않으면 어렵구나. 나는 오롯이 내 몫이다. 끝까지 정신 차리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 그다음은 없다.

빈곤, 차별, 폭력…. 머릿속에 최초의 균열을 만든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사회 운동이 업무일 때만 가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사건들과 몸의 고통이 순서조차 알 수 없게 뒤죽박죽 섞여 기분 나쁜 퇴적물처럼 쌓여가는 매일, 손에 들린 연장이라고는 구글 캘린더와 스케줄러밖에 없을 때, 그 사람은 안 될 걸 알면서도 모든 실패됨과 거절당함, 역겨움과 수치심을 자기 관리의 신화 속으로 욱여넣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는 역류 현상이 일어나는 순간마다 다른 방법이 없음을 재확인하며 다짐하는 것이다.

‘다음엔 좀 더 나를 잘 관리해서… 들키지 않고… 성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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