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힘든 싸움에 도전한 여성 노동자들의 희망 이야기

[서평] <회사가 사라졌다-폐업·해고에 맞선 여성노동>, 싸우는여자들기록팀 또록, 파시클, 2020

레이테크코리아 혜선 씨의 남편은 이렇게 얘기했다.

“아니, 회사가 문 닫고 간다는데 그걸 어떻게 할 거야”
“그럼 어떻게 해”
“당신도 당신 살 길을 찾아야지”


자본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힘들지 않은 싸움은 없지만, 폐업에 맞선 싸움만큼 힘든 싸움을 찾기 어렵다. 문 닫고 간다는데 그걸 어떻게 할 거야. 소유권을 틀어쥐고 있는 사장이 공장을 처분한다는데, 주인이 집을 판다는데, 회사가 어려워 더 운영할 수 없다는데 어떻게 할 거야. 이게 널리 퍼져 있는 폐업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다.

여기, 폐업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체념에 도전한 여성 노동자들이 있다. 성진씨에스(자동차 시트 제작), 신영프레시전(핸드폰 부품 조립), 레이테크코리아(문구용 스티커 제조)에 다녔던 중년의 여성 노동자들이다.

  싸우는여자들기록팀 또록 지음, 2020.11.30, 파시클 출판사

당신들 노동은 천 원짜리야

이들의 노동은 폄하됐다. 반찬값 노동으로 치부됐다. 심지어 레이테크 노동자들은 사장으로부터 “당신들 노동은 천 원짜리야”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렇게 일했는데도 말이다.

“하루에 2천 개, 3천 개 해야 할 수량이 있었어요. 수량을 맞춰야 한다기보다, 그만큼은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다 있어요. 이건 꼭 해줘야 한다. 그래서 누가 시켜서 일을 한 게 아니라, 내 스스로가 열심히 했어요.”

해고 방식까지 잔인했다. 레이테크코리아 사장은 해고장을 받지 않겠다는 노동자의 뒤를 쫓아가며 거리에서 이렇게 소리 질렀다.

“○○○, 당신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해고장이야. 받아 가!”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이 세 사업장의 공통분모는 노조 혐오와 노조 탄압이다. 레이테크코리아는 노동자들을 감시하기 위해 탈의실에 몰래 CCTV를 설치했다. 2018년엔 한 끼 삼천 원쯤 되는 식대마저 빼앗길 상황에 놓인 성진씨에스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자 원청인 코오롱은 두 달 만에 물량을 끊었고, 노동자들은 물량 부족을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지노위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았지만, 회사는 바로 폐업으로 맞섰다.

세상엔 중소기업 사장들의 착한 마음씨에 관한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지만, 중소기업 자본가들은 노동운동에 가장 적대적인 세력이다. 왜냐하면, 대자본에 대한 종속성, 중소기업 자본들이 늘 직면하고 있는 과잉경쟁, 중소기업 자본의 (기술적, 경영적) 후진성 때문에 발생하는 손실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야만 평균이윤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중의 굴레

지은이들은 여성 노동자들이 살아온 과정과 투쟁의 면면을 세심하게 기록했다. 성진씨에스를 다니면서 일이 끝난 후 한두 시간 목욕탕 알바를 했던 노동자의 이야기,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어머니의 몫을 나누기 위해 열다섯 어린 나이에 학업을 포기하고 공장을 다닌 이야기, 아이를 가지고도 집에서 부업을 하면서 쉰 적이 없다는 노동자의 이야기에는 여성 노동자의 치열한 삶이 배어 있다. 한 노동자는 여성들이 그렇게 살아야 했던 이유를 이렇게 얘기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남편이 무너지면 집이 무너지지 않아요. 엄마가 더 강하게 일어나잖아요. 근데 엄마가 무너졌어요. 그럼, 남자들은 그런 걸 덜 하잖아요. 역할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남편이 사업하다 망하면 물론 이혼하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은 다 엄마가 주축이 돼서 또 일으켜서 빚 갚고 뭐하고 다 하잖아요”

이 책은 여성의 인내와 헌신에 담겨 있는 이 사회의 모순과 억압을 드러낸다. 가부장제와 가족주의가 작동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노동조합이 이 문제를 끌어안고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제기한다. 특히 남성 노동자들이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이렇듯 생계부양자이면서 동시에 주 양육자의 역할을 수행한 어머니에 대한 숭배와 찬양은 아이러니하게도 여성 혐오와 함께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어머니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거나, 거부하는 여성들에 대해 비난을 쏟아내는 방식으로 말이다. 엄마를 과하게 떠받들면서, 받은 만큼 헌신하라는 가부장제 사회의 요구가 가볍지 않아 보여서다. 그 요구에 저항하는 선택을 하려면 어머니라는 역할 앞에 놓인 존경과 숭배가 만들어내는 힘 혹은 권력에 대해 함께 고심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의 권리를 찾아 나서는 싸움 안에서 가부장제와 가족주의라는 규범에 대한 탐색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노동조합도 여성 노동자들과 이런 논의를 나눌 장을 만들어야 한다.”

남성 노동자들의 투쟁과 비교했을 때 여성 노동자들은 이중의 굴레에 갇혀 싸워야 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가정과 일터에서의 굴레 말이다. 투쟁하더라도 남편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투쟁 현장에 있으면서도 내내 가족과 집안일을 걱정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우리는 착하고 가정적인 여성, 헌신적인 어머니라는 틀이 여성을 얼마나 짓누르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가? 투쟁하는 노동자들도 여성 노동자에게 일하는 노동자보다 엄마와 아내의 자리에 충실하길 바라지는 않는가? 책을 읽으면서 멈출 수 없었던 질문이다.

나는 이겼어요

노동자들은 할 수 있는 모든 투쟁을 하려고 노력했다. 공장을 점거했고, 원청 건물에 찾아가 집회를 했고 쉴 새 없이 노동부와 정부 기관을 쫓아다녔다. 세 사업장 노동자가 함께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폐업과 해고를 막지 못했다. 공허함, 분함, 자괴, 우울 같은 감정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하지만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하며 미처 알지 못했던 힘을 경험했다. 할 말을 할 힘, 사장과 정부에 맞설 힘을 발견했다. 나의 생계를 위해 싸웠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다른 노동자를 생각하는 대의가 있었다. 내가 여기서 조금이라도 견뎌 주면 누군가에게 갈 어려움이 줄지 않을까, 그 마음으로 가장 힘든 싸움을 이어왔다. 그리고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인식을 바꿨다. 그저 ‘고생했구나’라고 지나친 세월을 ‘갑질’이라 이름 붙일 수 있게 됐다. 회사와 관리자들의 갑질 속에서 살아온 세월을 정확히 되돌아보게 됐다. 이제 내가 좀 더 배워서 다른 사람보다 직급이 높거나 관리자가 되었다면, 나 역시도 노동자를 착취했을 거로 생각한다. 누군가를 억압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다. 쉬운 길을 가려는 유혹에 대한 거부다. 그래서 이겼다는 말은 결코 자기만족이 아니다. 거짓 희망이 아니다.

“맞서서 싸우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정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더러워서 피할 수도 있고 치사해서 피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또 딴 사람이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니, 나는 맞서서 싸우겠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온갖 못난 갑질에 피하지 않고 싸우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나는 이겼다고 생각해요”

위로금 아니면 혁명

이 책에 소개된 폐업에 대한 사회적 해법은 부족하고 아쉽다. 책을 낸 목적이 사회적 해법을 제시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노동자운동의 상상력과 폐업에 맞설 수 있는 연대의 힘이 아직 매우 부족하기 때문일 게다.

책에서는 주로 정부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데 옳은 지적이다. 정부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노동자 민중 혈세를 기업에 쏟아붓지만, 그 돈이 노동자의 고용 유지를 위해 쓰이는지는 관심이 없다. 반드시 정부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더 큰 희망을 꿈꿀 필요가 있다. 근본 대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왜 그랬으면 하는지, 그래야 하는지 한 가지 기억나는 사례를 통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2011년인가 충남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자들이 폐업에 맞서 프랑스로 원정투쟁을 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내가 한국에 온 프랑스 고참 활동가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활동가의 연락처를 발레오 노동자들에게 알려줬다. 발레오 노동자들이 프랑스에서 그 고참 활동가를 만났는데 노동자운동이 활발한 프랑스에서도 참 힘든 폐업 투쟁의 경험을 얘기해주며 폐업 투쟁의 운명은 결국 ‘위로금 아니면 혁명’이라고 얘기했다.

무조건 동의하지는 않는다. (위장) 폐업을 철회시킨 사례도 꽤 있다. 폐업이 위로금으로 끝난다고 해도 의의가 없는 게 아닐 것이다. 폐업을 막아내지 못하더라도 단호한 의지로 싸울 때, 자본가와 채권단, 그리고 정부로부터 최대한의 조치를 강제해 낼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단결과 연대 정신을 지켜낸다면,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여기저기에서 늘어날 것이고, 자본가들과 정부의 사기는 꺾일 것이다.

다만, 폐업 사업장 노동자들이 아무리 강력한 투쟁을 해도 자본주의 사회 자체를 깨뜨리지 않는 한 끊임없이 일어나는 수많은 폐업을 막아낼 수 없고,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좋은 일자리를 온전하게 보장받을 순 없다는 측면에서 ‘위로금 아니면 혁명’이라는 말을 이해한다.

성진씨에스 사장은 입버릇처럼 “힘들어지면 언제든 회사를 접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주의에서 생산은 사회적 필요가 아니라 이윤 논리에 의해 좌우된다. 공장의 소유권이 자기에게 있으니 이윤이 남지 않으면 언제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그런데 왜 수많은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운영되고 발전하는 공장과 기업의 소유권을 자본가들이 가져야 하는가? 생산은 사회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왜 소유는 사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왜 공장과 기업은 노동자들의 것이 될 수 없는가?

우리는 이윤 논리와 사적 소유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 자본가들은 해고와 직장폐쇄를 정당화하기 위해 파산했다거나 손실이 크다는 얘기를 꺼낸다. 이런 협박에 맞서기 위해선 회사의 회계장부를 공개하고 영업비밀을 폐지할 걸 요구해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폐업을 받아들이라는 정책에 맞서 우리는 문을 닫거나 급격하게 고용을 줄이는 기업들에 대한 보상 없는 몰수와 노동자가 통제하는 기업 운영을 제기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공장을 집단적으로 소유하는 새로운 사회체제를 건설해야 한다. 한 줌 자본가들의 이윤보다 수천만 노동자의 생존이 중요한 체제 말이다.

물론 이 일은 아무 때나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며, 몇몇 공장 노동자들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전체 노동자가 떨쳐 일어서야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이 아니다. 책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폐업 노동자들의 분노를 본다면, 가장 힘든 싸움에 도전했던 여성 노동자들의 힘과 용기를 본다면. 자본주의가 더 깊은 위기로 빠져들 때, 그래서 몇몇 공장이 아니라 수많은 공장이 한꺼번에 마비되고 산업이 무너질 때, 노동자계급 전체가 살아남을 방법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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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맞서서 싸우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정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더러워서 피할 수도 있고 치사해서 피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또 딴 사람이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니, 나는 맞서서 싸우겠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온갖 못난 갑질에 피하지 않고 싸우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나는 이겼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