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상담사입니다” 건보 상담사들, 직영화 쟁취 파업 선포

노조 설립 1년간 공단, 면담 거부…저비용·감시모델 민간위탁, “노동조건과 상담 질 하락”

하루 8시간 노동에 화장실 네 번(15분), 휴식 시간 0분. 민간위탁으로 운영되고 있는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상담사의 노동실태다. 공단은 용역업체를, 업체는 상담사들을 상담 건수 등 실적 위주로 평가하는 구조에서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놓였다.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건보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이런 노동환경의 개선과 공단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서는 공단 직영화가 돼야 한다며 오는 1일 파업을 예고했다. 이들이 공단에 직영화 요구를 하는 이유는 지난 9월부터 진행한 임금 교섭에서 하청업체들이 단 한 조항의 수정안도 제시하지 않는 등 원청에 책임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청의 책임 회피에도 국민건강보험공단 김용익 이사장은 임금조건 개선 및 직영화와 관련한 노조의 면담 요청을 지난 1년 동안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는 27일 오전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06년 건강보험 고객센터가 설립된 이후 처음으로 16년간의 침묵을 깨고 행동에 나서려 한다”고 파업을 선포했다.

13년 일하는 동안 업체가 4번 변경됐다는 광주센터 이연화 조합원은 “13년 동안 변한 것이 있다면 날이 갈수록 강해지는 업무 강도와 늘어나는 업무량 그리고 나의 소속 이력”이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최근에는 질병관리본부의 업무까지도 떠안아서 업무량은 늘어나고 있다. 입사할 때는 하루에 5~60콜만 받아도 많이 받는다고 했는데 13년이 지난 지금은 180~200콜까지도 받는다”고 말했다.

또한 이연화 씨는 “(업체 관리자로부터) ‘아파도 조금만 참을 수 있느냐. 팀 실적이나 너의 개인 실적에 영향을 미치는데 지금 갈 거냐’라는 질책을 받았다. 퇴근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니 팀장이 전화해 ‘납부 마감일인데 벌써 퇴근하냐. 당장 올라와서 전화를 더 받고 가라’라고 했다. 시간외근무수당도 주지 않으면서 말이다. 2018년도에는 최저임금을 맞추기 위해 식대를 용역업체 마음대로 없애버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담 시) 우리의 첫인사는 ‘함께하는 건강보험 상담사’다. 하지만, ‘13년간 열악한 환경에서 건강보험공단 업무를 수행하느라 참 고생 많았소’라는 말 한마디는 못 할망정, 공단은 1년 동안의 면담 요청에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전국 11개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속한 지부는 10개 업체(본부, 대전센터 업체 동일)와 지난 9월부터 임금 교섭을 진행했지만, 최종 결렬됐다. 이어 지난 15일 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접수하고 이틀 전까지 940명 조합원의 쟁의권을 확보한 상태다. 지난 1월 19일부터 3일 동안 진행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는 재적조합원 940명 중 899명(95.6%)이 투표에 참여해 855명(90.9%)이라는 압도적인 찬성률이 나왔다. 파업을 앞두고 노동자들은 공단 이사장이 지금이라도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김숙영 지부장은 기자회견에서 “상담사들은 도급업체 사이에서 버림받고 외면당하며 15년을 참고 또 참았다. 그러나 이제 박탈감과 소외감에 더는 못 참겠다. 이에 2월 1일 총파업을 결의했다”며 "만나서 대화로 풀자고 수차례 공문을 보냈고, 시위도 했다. 그러나 공단은 거부하고 있다. 더는 상담사들을 파업으로 내몰지 않고, 이사장은 책임 있는 모습으로 대화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7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민건강호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자신의 공단 사번이 적힌 피켓을 들고 퍼포먼스를 했다.

업체 바뀌어도 동일한 ‘공단 사번’

11개 민간위탁업체는 건보의 12개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상담사는 총 1623명이다. 이 노동자들은 공단 사번을 부여받고 공단의 모든 상담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협력업체 소속이다. 이 사번은 업체가 바뀌더라도 퇴사할 때까지 그대로다. 구체적으로 이들의 업무는 건강보험 자격, 보험료, 보험 급여, 건강검진, 의료급여,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세무 업무와 4대 사회보험 징수통합 업무 등 무려 1,060여 개에 달한다.

또한 건강보험공단은 전산시스템으로 실시간 모든 상담사의 콜을 감사하고 있다. 심지어 이 사번을 통해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일별 로그인·로그아웃부터 인사관리, 휴가 등의 근무 기록을 관리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공단은 직영화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노조 설립 1년 동안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

한편에선 건강보험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서 고객센터가 공단 직영화돼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나오며 투쟁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 26일 오후 ‘건강보험 공공성 강화를 위한 운영 구조 개선 방안’ 국회 토론회가 보건복지위 고영인, 최종윤 의원, 환경노동위 양이원영 의원 공동주최로 디이그제큐티브센터코리아에서 열렸다. 지부는 공단 관계자에게 토론회 참석을 요청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우선 발제자로 참여한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은 공단이 고객센터를 위탁했음에도 사번을 부여하고 노무관리를 하는 이유에 대해 고객센터 업무가 공단의 업무와 일정 정도 구분되는 독립적으로 수행되는 업무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건보 고객센터의 경우 “건강보험공단 업무의 특성상 고객정보 조회를 바탕으로 한 국민 개별의 보험서비스 업무 처리가 핵심이기 때문에 안내와 관련 업무의 처리를 종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 있다고 전했다. 또한 “공단의 지사 업무가 수행하는 업무와 대부분의 영역이 겹치고 있을 정도로 콜센터만의 독자적인 업무 영역인 안내 서비스만으로 구별되지도, 한정되지도 않는다는 점” 등을 짚었다.

때문에 “업무의 특성상 콜센터의 업무가 단순 안내 이상이라는 점과 원·하청간의 모호한 업무 구분이 교차되면서 콜센터 업무는 해가 갈수록 증가하게 된다”며 오히려 “실질적 권한이 주어지지 않고 불필요한 서류작업이 과잉되면서 업무량이 증가하는 반면 그에 따른 책임도 전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위탁, 저비용·감시모델…
“노동조건과 상담 질 하락으로 이어져”


민간위탁으로 인한 노동조건과 상담의 질 하락 문제도 지적됐다. 이재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민간 수탁업체는 건강보험에 대한 전문성 없이 노무와 실적관리 역할에 불과”하다며 “상담에 필요한 전문적인 장비와 시설, 유지·보수 등도 공단에서 제공하고 상담사에 대한 교육과 교재 제공 역시 공단에서 담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체계적인 교육 상담, 직무 훈련 시스템의 한계로 노동자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며 숙련을 쌓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또한 노동환경과 관련해서도 “위·수탁 구조에서는 실적과 수량적 평가 중심으로 개인과 팀, 그리고 업체 간 경쟁과 통제 방식의 노무 관리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실적을 위한 실시간 전자 감시와 노동 통제 방식의 노무 관리로 기본적인 노동권, 건강권 침해뿐 아니라, 인격 모독과 성차별 사례까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2019년 기준 건보 고객센터 노동자의 1인당 하루 상담 응대 건수는 120.1건이다. 연평균 상담 응대 건수는 3천314만여 건에 달한다. 그가 공개한 건보 고객센터 상담사 업무일지 사례를 보면 하루 8시간 노동 중 화장실 간 15분(4회)을 제외하면 휴식 시간 없이 상담했을 때 113건을 처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저비용·고감시 모델’ 방식의 인적 관리전략은 공공서비스에 적합하지도,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오히려 많은 문제와 한계가 발생한다”며 “(건강보험) 가입자를 위한 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직영화를 통해 고객센터 상담노동자의 소속감과 책임감, 노동권을 보장하고, 숙련된 전문 상담 역량을 강화해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은혜진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