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제2의 인국공을 부채질 하나

[1단 기사로 본 세상] “기재부의 나라냐”고 질타만 할건가

[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민주노총이 ‘콜센터 조직화’를 고민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민주노총과 산별노조 비정규직 담당자를 중심으로 조사부터 시작했다. 맨 처음 고민한 곳은 사무금융노련이었다. 은행과 보험, 증권사마다 콜센터는 필수였다. 회사가 비용을 줄이려고 임대료가 싼 구로나 금천구 등 서울 외곽에 콜센터를 이전하려던 때였다. 지난해 3월 콜센터 발 첫 코로나19 집단 감염지였던 에이스 손해보험 외주 콜센터도 구로구 신도림동에 있다. 당시 언론은 원청회사 이름 대신 어처구니없게도 지명을 따 ‘구로 콜센터’로 불렀다.

비용을 더 줄이려고 대전 등 중부권으로 이전하는 콜센터도 많았다. 언론도 ‘대전시 콜센터 메카로 떠오른다’(연합뉴스 2008.3.27) 같은 기사를 써댔다. 대전시도 콜센터 유치에 적극 나섰다. 그러나 원청이나 지자체는 콜센터 노동자들 삶의 질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

전라, 경상권보다 대전 등 중부권은 서울말을 구사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 그렇다는 얘기도 들었다. 인바운드나 아웃바운드라는 말도 그때 처음 들었다. 몇백 명씩 뭉쳐서 일하는 집단성이 노조 조직화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직률이 워낙 높아 소속감이 없다는 단점도 있었다. 산별노조마다 각개약진하는 콜센터 조직화 역량을 민주노총으로 모아내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 콜센터는 규모가 커서 먼저 조직화 대상으로 논의됐다. 공공운수노조(당시 공공노조)가 2008년 당시 경기도 안양에 있던 노동부 콜센터를 조직했다. 그때 건강보험공단 콜센터도 조직화 대상으로 떠올랐지만, 건보공단 노조인 사회보험지부가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콜센터 노동자들과 물밑 대화를 텄다는 얘길 들었다. 그러나 조직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공공부문 콜센터 조직화의 물꼬를 튼 건 2012년 9월 120다산콜센터 노조 결성이었다. 서울시는 2007년 다산콜센터를 만들어 2~3개 민간업체에 위탁시켰다. 다산콜 노동자들은 전문 행정상담을 하면서도 업체 간 경쟁으로 노동강도가 높아지고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렸다. 실학자 정약용의 위민, 청렴을 본받아 행정혁신을 이루겠다고 다산콜센터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그 일을 하는 노동자 배려는 1도 없었다. 서울 시민들은 지하철 막차시간부터 주말 집회나 행사 안내까지 뭐든 알려주는 만물박사처럼 다산콜을 애용했다. 대책 없이 만들었던 오세훈 시장이나 제대로 돌보지 못한 박원순 시장도 보여주기 행정을 펼친 건 매한가지다.

보수언론 ‘건보 콜센터’에 먼저 반응

이들은 노조 결성 뒤 서울시에 직접고용을 요구했다. 만 2년을 싸운 끝에 2014년 12월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직접고용 추진을 밝히면서 연구용역에 들어갔다. 재단을 설립해 직접고용하는 방식으로 결론 났다. 이를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돌았지만 싸움의 당사자들이 충분히 논의해 결정했다. 5년의 투쟁 끝에 다산콜 노동자들은 다산콜재단 정규직이 됐다.

건보공단노조가 콜센터 조직화에 주춤하는 사이 보수 언론은 이를 제2의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로 몰아가고 있다. 매일경제신문은 2월 1일자 ‘건보 정규직으로 바꿔 달라는 콜센터 노조의 요구 과도하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인국공 사태는 문재인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무리한 정규직화의 부작용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건보공단 직고용 논란은 인국공 사태보다 더한 사회적 갈등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며 말머리를 제2 인국공으로 명확히 다잡았다.

하지만 논리는 빈약하다. 매경은 건보 콜센터가 인국공과 달리 위탁업체 정규직의 본사 직고용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기간제나 파견용역근로자가 아닌 민간위탁업체 정직원을 본사 직고용하는 것은 채용의 공정성과 형평성 문제뿐만 아니라 공단 경영의 효율성 면에서도 큰 부담이 된다는 거다.

  매일경제 2월1일 사설.

민간위탁업체 정규직이었다가 서울시가 만든 재단 직접고용을 따낸 다산콜재단 상담사 사례는 매일경제 머릿속엔 없다. 간접고용 노동자는 모두가 파견, 용역, 민간위탁회사에선 정규직이다. 현대차 사내하청 비정규직도 하청회사의 정규직 신분이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수없이 싸웠고, 또 일정한 성과도 냈다. 다단계 하청구조로 엮인 간접고용의 문제점을 아예 보려고도 않는 서술이다.

문제는 업무의 내용이다. 법원도 늘 이걸 따진다. 그래서 법원은 완성차 공장에서 사내하청은 있을 수 없다는 일관된 법리를 폈다. 건보 콜센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공단의 핵심업무와 연계된 필수 업무를 한다. 심지어 이들의 사원증엔 공단이 부여한 사원번호가 적혀 있다. 공단이 사번을 관리하고 하루 콜 실적과 휴가, 교육기록도 확인한다.

넘어야 산은 하나 더 있다. 언론이 확대재생산 해낸 기존 정규직과 취업준비생들의 반발이다. 매일경제 사설은 공단 정규직 노조가 지난해 5월 실시한 상담사 직고용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 반대 의견이 75.6%에 달했던 걸 언급했다.

왜 당사자도 아닌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의 고용형태에 설문조사를 하는가. 건보공단도, 인천공항공사도, 서울교통공사도, 전교조도, 도로공사도 한결같이 정규직노조가 마치 정규직 전환을 가로막는 벽이 됐다. 나는 죽도록 고생해서 시험 쳐서 들어왔다는 정규직 정서의 바닥엔 비정규직을 정규직 전환하면 우리 회사 재정이 버틸까 하는 불안이 깔려 있다. 사용자가 할 고민을 정규직이 먼저 고민한다. 공공기관 낙하산 사장 누구도 그런 걸 신경 안 쓰니 더 그런가 보다.

취준생 논리는 좀 다르다. 정규직 전환하면 신규채용을 줄일 거라는 두려움이 취준생을 비정규직의 적으로 만든다.

정부가 나서 ‘최소한’ 필수 핵심업무만큼은 정규직으로 채용할 만큼 인력기준을 새로 짜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천명할 생각이었다면, 취임 다음날 인천공항 가서 사진 찍을 게 아니라 기획재정부로 달려갔어야 했다. 대통령은 거기서 “꼭 필요한 일인데도 그동안 비정규직으로 사용해온 공공부문 일자리는 정규직 전환하도록 인력기준을 확대하고, 전환 때문에 신규채용을 억제하는 일도 없도록 하라”고 주문하고 챙겼다면 지금처럼 을(정규직)과 병(비정규직)이 머리채 잡고 싸우는 일은 없었다. 취준생은 정규직 채용 일자리가 늘어나 오히려 좋아했을 거다.

누굴 위한 ‘공정’인가

정규직이 말하는 ‘공정’은 허구다. 조국 사태에서 여실히 깨닫지 않았던가. 우리가 말하는 교육제도와 입사 관문은 공정과 거리가 한참 멀다. 굳이 드라마 ‘SKY 캐슬’을 보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이다. 조국만 그랬던 것도 아니다.

  조선일보 1월20일 10면.

연세대 경영대 교수 10명이 부총장 딸 대학원 부정입학에 관여해 형사 피의자로 입건됐다. 검찰은 부총장 딸을 합격자로 내정해 놓고 시험 평가점수를 조작했다고 결론 내렸다. 부총장 딸은 성적과 영어 성적 등 정량 평가에선 지원자 16명 중 9등을 했지만, 학업계획서와 추천서 등 정성 평가에선 ‘만점’을 받아 최종 5등으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 2차 구술 평가에선 100점 만점을 받아 최종 합격했다.

서술형 평가에서 만점 받는 게 가능한 일인가. 그런데도 이런 일이 SKY라 불리는 대학에서 버젓이 벌어졌다. 입건된 교수들은 한결같이 ‘부정입학은 없었다’고 부인했다. 모두들 우병우 전 수석 아들처럼 “코너링이 절묘해 운전병으로 뽑았다”고 답하면 그만이다. 이렇게 쌓아 올린 ‘공정’의 탑을 이젠 허물 때도 됐다.

박범계 법무장관은 인사청문회 때 사법고시 존치를 원하는 고시생을 폭행했다는 의혹에 시달렸다. 사법고시를 없애고 로스쿨로 단일화하는 게 법률서비스 확대에 도움이 된다. 참여정부는 수험서 달달 외워 사법고시 합격한 판‧검사, 변호사 대신 ‘교육을 통해 실무적이고 전문적인 변호사들을 많이 배출해 시민에게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쉽게 이용하자’는 취지로 로스쿨 제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선한 취지와 달리 지금 로스쿨은 등록금에선 귀족학교로 변질했고, 교육 내용에선 변호사시험 고시학원으로 전락했다. 오롯이 변시 답안 작성 잘하는 비법만 가르친다.

최근 변호사시험 문제 사전유출 논란은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법무부와 변호사시험 관리위원회는 논란이 된 문제를 전원 만점 처리키로 했지만 응시생들은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논란을 빚은 행정법 기록형 문제(2번)는 연세대 로스쿨 강의 자료에 나왔던 문제였다.

이처럼 로스쿨이 귀족 고시학원으로 전락해 문턱이 높아지자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방통대 법학전문대학원 설치운영 법안’을 발의했다. 방통대에 로스쿨을 만들어 형편 어려운 사람과 직장인도 법조계 진출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매일경제 1월18일 29면.

개천용을 더 만들자는 취지지만 기존 로스쿨들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기존 로스쿨은 정 의원 법안이 ‘변시낭인’을 양산한다며 반발했다. 귀족 고시학원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엔 아랑곳하지 않던 로스쿨이 제 밥그릇 챙기기엔 발 빠르다.

로스쿨 설립 취지로 돌아가는 게 먼저다. 이처럼 문재인정부 들어선 좀 여유 있는 집단이 기득권 지키기에 더 혈안이다.

부산경남경마공원 문중원 기수가 비리의혹이 담긴 유서를 써놓고 숨진 지 1년 2개월이 지나서야 검찰이 마사회 간부와 조교사 2명을 기소했다. 고 문중원 기수는 유서에서 조교사 개업 심사에서 특혜가 있었던 구체적인 정황을 남겼지만 검찰 수사는 굼벵이처럼 느렸다. 문 기수는 조교사 면허를 따고도 5년 동안 마방을 배정받지 못했다. 문 기수는 유서에서 마방 임대에 마사회 특정 직원과 친분이 중요하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경향신문 1월15일 8면.

검찰이 추윤 갈등에 쏟은 노력의 반만 기울였어도 벌써 가해자를 처벌했다. 다단계 고용구조의 끝자락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법은 멀기만 하다.

추윤 갈등 속에 서울 동부구치소 코로나 집단확진자가 1000명을 훌쩍 넘었다. 이 와중에 교도소가 지난해 한 교도소가 주삿바늘을 재사용해 의료법을 위반했다. 국가인권위는 법무부에 재발방지와 구제 조치를 권고했다. 요즘 누가 주삿바늘을 재사용한단 말인가. 주삿바늘 재사용은 명백한 의료법 위반인데도 인권위는 법무부를 고발하지 않고 권고만 했다. 재소자라고 함부로 대하지 말라던 인권위였는데.

‘공정’은 이런 이들을 위해 사용하는 거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집권세력이라면 모름지기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가로막는 최대 걸림돌인 공공기관 운영권을 기재부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 이제 와서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고 볼멘 소리해 봤자 아무 소용없다.

  매일경제 1월15일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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