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초의 반봉건 혁명, 태평천국의 난

[혁명의 세계, 반란의 역사]

[출처: 위키백과]

중국은 땅이 넓고 인구가 많아 특정 나라나 외부 세력이 점령하는 게 쉽지 않다. 그만큼 정치 사회적으로 대국 건설에 유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중화사상으로 무장해 동아시아 문명의 중심으로 군림했던 것이다. 반면 중앙집권적 봉건제의 특징으로 침략과 약탈이 빈번하고 내부 반란이나 봉기도 자주 일어나는 조건을 아울러 지녔다.

특히 청나라 등장 이후 농민의 저항은 일상이 됐다. 지주계급의 과도한 징수와 지역 관리들의 착취가 풍년과 흉년을 가리지 않았던 탓이다. 이는 곧 국가 지배체제의 위기를 가중했고, 19세기 유럽의 침략과 민중의 투쟁으로 봉건제와 함께 역사적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당시 민중 투쟁이 급진화하면서 등장한 반란이 태평천국의 난이다.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는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는데, 그 비용을 가난한 민중에게서 충당했으니 불만이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청나라 탐관오리의 탐욕과 횡령이 이들의 고통을 가중했다. 빈곤한 민중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삶을 포기하거나 세상을 뒤집는 것뿐이었다.

이때 나타난 인물이 홍수전이다. 그는 광동성 화현의 중농 집안 출신인데, 한족이지만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객가인(客家人)이다. 참고로 중국의 가장 대표적인 객가인 출신으로 손문, 등소평, 장국영 등이 있다.

홍수전은 객가로서 주변부적 소외계층에서 벗어나고자 과거시험을 통해 신분 상승의 꿈을 꾸었다. 하지만 여러 차례의 낙방으로 결국 좌절된다. 이때의 경험이 과거제도와 유교의 가르침에 대해 회의감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 선교 팸플릿 〈권세양언(勸世良言)〉을 접하면서 급속도로 기독교를 학습하게 된다. 이 책에서 묘사된 선민의식, 선과 악의 전쟁, 천국의 도래 등이 그를 사로잡았다. 현실에 대해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그가 열병을 앓아 환상을 봤는지 아니면 영적 체험을 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기독교로부터 커다란 깨우침을 얻은 것은 확실하다.

지상의 천국을 꿈꾸다

1843년 7월 친구 풍운산, 사촌 홍인간과 비밀결사 ‘배상제회(拜上帝會)’를 조직하고 자신을 하나님의 둘째 아들이라 자칭한다. 당시 타락하고 불안정한 사회에 불만을 가진 민중은 그의 사상에 매료됐고, 세력은 급격하게 불어났다. 청나라의 정치력은 무너졌고 사방에 악취가 진동해 민중들은 사회변혁에 강한 욕망을 가졌다. 그는 대동세계와 기독교의 평등사상을 혼합시킨 이상사회를 구상했다. 그의 평등사상은 민중 내부의 분열을 피하고 빈곤한 농민을 흡수하여 그들이 함께 사회변혁을 목적으로 투쟁하도록 힘을 줬다. 그는 기독교적인 혁명 운동을 일으켜 ‘지상천국’을 만들겠다는 꿈을 꾸었다.

  홍수전 [출처: 위키백과]

그러나 조직 확대는 관군 및 그 지역 지배 세력들과의 격렬한 대립을 불러왔다. 풍운산을 비롯한 동지들의 체포가 잇따르자, 홍수전은 정치혁명으로 확장하기를 결의한다. 상제회는 종교적·사회 혁명적 조직으로 발전했다.

1850년 7월 홍수전은 전국 각지의 회원들을 계평현 금전촌으로 모은다. 금전촌에는 2만 명의 회원이 모였다. 여기서 성별과 무관하게 군대를 조직하며 혁명을 준비했다. 모두 변발을 자르고 머리를 붉은 천으로 감싸 청나라와 단절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래서 ‘장발적(長髮賊)’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여진족의 변발 풍속을 따르지 않는 장발은 그 자체로 범죄다. 그리고 1851년 1월 11일 공식적으로 태평천국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국가를 선포한 것이다. ‘천평(天平)’이라는 연호도 채택한다. 홍수전은 스스로 천왕이라고 칭했다. 최소 2천만 명이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한 반란인 ‘태평천국’의 시작이었다. 이를 ‘금전기의(金田起義)’라고 한다. 민중이 금전에서 정의로운 봉기를 했다는 것이다.

민중의 열렬한 옹호와 지원 속에서 태평군은 중국 남부의 많은 지역으로 신속하게 세력을 확장했다. 그리고 조직을 정비해 양수청을 동왕, 소조귀를 서왕, 풍운산을 남왕, 위창휘를 북왕, 석달개를 익왕에 봉하면서 지도체제를 강화했다. 그리고 점차 북으로 세력을 확장하며, 계림, 류주를 통과해 호남경내에 들어섰다. 태평천국은 청나라 관병의 결사적인 저지와 포위 공격을 받았다.

태평천국은 1853년 3월 19일 남경(南京, 난징)을 함락해 자신들의 수도(天京)로 정했다. 천경을 중심으로 강소성, 절강성, 강서성 등 주요 도시를 점령하며 천하에 그 맹위를 떨쳤다. 이 무렵 태평천국군의 병력은 백수십만까지 비약적으로 팽창한다. 그리고 청나라 수도 베이징을 향해 북벌에 나섰다.

하지만 홍수전 등 지도부는 북벌 대의론에 대해 강남 일대를 평정하며 내실을 다진다는 소극적인 입장으로 기울었다. 이는 불과 4만 명의 병력으로 북경을 향해 진격한 북벌군이 연전연승하며 북경 100km 지점까지 접근했다가 뒷심 부족으로 패배하는 사태로 이어진다.

이어서 지도부는 권력투쟁에 따른 내분에 휩싸인다. 1856년에 홍수전과 양수청의 대립이 일어나, 홍수전은 위창휘와 연합해 양수청을 제거하고, 다시 위창휘를 제거했다. 이에 석달개도 태평천국에서 이탈했다. 이른바 ‘천경사변’이 일어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태평천국을 꿈꿨던 혁명군은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는다. 태평천국의 조직은 천왕 홍수전 밑에 6명의 강력하고 유능한 지도자가 각각 왕으로 포진해 서로 협조하고 상승효과를 극대화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권력투쟁으로 그 구조가 붕괴하면서 혁명은 성공하기 어렵게 됐다.

내부 권력투쟁은 그 후에도 지속됐고, 프랑스와 영국의 제국주의 군대가 청나라를 지원하면서 전세는 기울기 시작했다. 청나라의 정규군은 제대로 기능을 못 했지만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군을 조직한 증국번, 이홍장 등의 반혁명군대가 그 역할을 했다. 결국, 1864년 청나라 반혁명군대와 서구 제국주의 군대가 천경을 공격하면서 홍수전은 사망했고, 몇 달 후 천경이 함락되며 태평천국의 난은 끝났다.

여성들의 태평천국은 어디에

종교적 비밀결사로 시작한 태평천국의 난은 홍수전의 평등사상으로 수많은 민중의 지지를 받으며 혁명운동으로 발전했다. 태평천국은 토지 균등을 원칙으로 삼아 ‘천조전묘제도(天朝田畝制度)’를 공포하고, 남녀평등의 많은 정책을 실행했다. 전통 유가 사상에는 매우 비판적이었다. 이와 함께 전족 등 악습 철폐, 노비제 폐지, 아편과 술 금지 등의 개혁정책을 펼쳐 중국 민중의 지지를 받았다.

태평천국은 멸만흥한(滅滿興漢)의 종족적 민족주의를 내세워 농민을 비롯한 하층민의 호응을 얻으며 세력을 확대했다. 이는 훗날 한족의 민족주의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민족 간의 모호한 경계를 분명히 한 사건이었다. 한족의 피를 이어받은 사람들이 청나라를 멸망시키고 다시 한번 나라를 세우려고 했던 것이다. 만주인에 대한 적대감 형성, 만한 간의 민족 구분은 19세기의 산물이다.

태평천국의 정책은 너무 혁명적이라 일부는 실행 과정에서 변화를 가져왔지만, 대부분의 정책은 당시의 현실과 부합하기 어려워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태평천국의 난은 지배계급의 전복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혁명적이었다. 또한 중국 공산혁명에 사상적·전략적으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가장 혁명적인 성격은 여성해방의 맹아를 선보였다는 것이다. 여성의 적극적인 참여는 정말 괄목할 만하다. 수많은 여성이 청나라와의 전투에 열심히 임했다. 그들은 전쟁터에서 위험한 임무를 기꺼이 맡았고, 지휘관이 된 사람까지 있었다. 어느 외국인은 말에 올라탄 여성의 씩씩한 모습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홍수전은 자신이 점령한 지역에서 중국 역사상 최초로 남녀평등 정책을 추진했다.

대표적인 정책은 다음과 같다. ①토지를 분배할 때는 남녀의 구별 없이 가족의 수에 따라 분배한다. ②남녀 모두 군대에 편재하여 각자에게 알맞은 임무를 부여한다. ③과거 시험에 여과를 신설하여 능력 있는 여성을 발탁한다. ④일부일처제를 엄격히 실시하고 과부의 재혼을 허락한다. ⑤여성의 인신매매와 매춘을 엄격히 금지한다. ⑥여성의 족쇄인 전족을 없앤다.

태평천국은 중국에서 일어난 근대 아시아 최대의 민중혁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요즘 중국에서도 봉건 타파의 정신을 높게 평가해 태평천국을 난(亂)이 아닌 혁명이라 부른다. 하지만 여성들이 꿈꾸던 태평천국은 어즈버 꿈이런가 하노라!

〈참고문헌〉

1. 전국역사교사모임,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2-21세기, 희망의 미래 만들기》, (휴머니스트, 2005)
2. 조너선 스펜스, 양휘웅 옮김, 《신의 아들 洪秀全과 太平天國》(이산, 2006).
3. 패멀라 카일 크로슬리, 양휘웅 옮김, 《만주족의 역사》(돌베게, 2013).
4. 姬田光義·阿部治平 외, 편집부 옮김, 《중국현대사》(일월서각, 1985).
5. 오귀환, [태평천국] “함께 기도하고 모두밥을 먹자”, 《한겨레 21》 제544호(200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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