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노동자들, 백기완 선생 빈소로 행진하는 이유

비정규직 노동자들 백기완 정신 되새기며 “맨 첫발, 딱 한발 떼기에 온 힘 다하겠다”

“비정규직이라는 체제와 사람이 일할 수 없는 작업장에 사람을 때려 넣은 자본주의 체제가 용균이를 죽였다”


고 백기완 선생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2019년 1월, 이곳에서 마이크를 잡은 백기완 선생은 울분을 토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의 시신이 안치된 곳이었다. 그리고 사망 59일 만에 장례식이 열리던 날, 백기완 선생은 광화문 광장에서 또 한 번 마이크를 잡았다.

“용균이가 목숨을 빼앗겼다는 얘기를 듣고 내 첫마디가 ‘돈이 주인이고 돈밖에 모르는 이 사회가 용균이를 학살했다’였습니다. 누가 죽였습니까? 돈이 주인이고 돈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죽였습니다. 이런 독점자본주의를 뒤집어엎어야 합니다.”

백기완 선생은 생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앞장서 왔다. 백 선생은 2000년에 들어 ‘같이 일하고 같이 잘 살되, 올바로 잘 사는 세상’을 제창했는데, 이는 비정규직의 착취와 억압 없이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김용균 노동자 장례가 치러진 후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이 출범하던 날, 백 선생은 다시 한번 “자본주의가 있는 한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오지 않는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을 발칵 뒤집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5일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백기완 선생의 최근 10년의 행보는 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이었다. 그리고 오늘(17일),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은 백기완 선생이 안치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까지 긴 행진을 시작한다. 이들은 “자리를 털고 백기완 선생님이 가장 먼저 달려가고 싶었던 곳은 LG트윈타워, 아시아나케이오, 코레일네트웍스 등 투쟁하는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이 싸우고 있는 그곳이었을 것”이라며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라는 백 선생의 뜻을 기리는 추모행진에 나선다고 밝혔다.

백기완 선생의 마지막 10년,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에 함께했다

백기완 선생이 본격적으로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과 거리로 나선 건 2008년이다. 백 선생은 당시 기륭전자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점거 농성 현장으로 달려가 강제 진압을 막는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출신의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기도 했다.

  2014년 12월 26일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오체투지에서 고 백기완 선생이 노동자들을 부둥켜 안고 울었다. 이날 오체투지는 청와대를 향했으나 경찰에 막혀 청와대까지는 이르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그는 2012년 노동자 대통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한 김소연 전 기륭전자 분회장의 유세 현장에 나타나 “김소연은 목숨을 걸고 옳은 얘기만 한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달라”며 “경제민주화니 하는 이런 얘기가 아닌 200년간 자본주의가 세상을 망쳤으니 세상을 뒤엎어야 한다는 말을 당당히 하라”고 당부했다. 백 선생은 1987년과 1992년에 노동자, 학생, 민중들의 요구로 민중대통령 후보로 출마해, 노동자민중 정치세력화의 초석을 만든 인물이기도 했다.

2011년에는 여든의 나이에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 희망버스 투쟁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 백 선생은 노동자들과 함께 한진중공업의 담을 넘은 뒤 마이크를 잡고 “이명박 정부는 합법을 위장한 김진숙에 대한 살인 행위를 하고 있다. 야만의 시대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백 선생은 이 사건으로 19년 만에 경찰 소환장을 전달받고는 “80년 평생을 독재정권과 싸우며 피눈물을 흘리다 늙어버린 나에게도 경찰은 소환장을 보내왔다”며 “경찰은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몸부림을 파괴하는 만행을 즉각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밖에도 백 선생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 유성기업 노조파괴 분쇄 투쟁, 거제 조선소 비정규직 우선해고 반대투쟁, 삼척동양시멘트 비정규직 투쟁 등 싸우는 노동자의 투쟁 현장에 함께하며 끊임없이 목소리를 냈다. 2019년 말에도 사회 원로들과 함께 도로공사 톨게이트 비정규직 투쟁을 지지하고 엄호했다.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 길 위에서 백기완 선생을 배웅하다


고 백기완 선생의 사회장 3일 차인 17일 해고노동자들은 다시 길 위에 섰다. 이들은 LG트윈타워, 코레일네트웍스 농성장이 있는 서울역을 거쳐 고인이 잠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까지 추모 행진을 펼쳤다. LG트윈타워에선 청소노동자들이, 코레일네트웍스에선 질서유지, 건축물 유지보수 등의 업무를 맡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됐다. 백 선생의 말대로라면 ‘구조조정’ ‘정리해고’는 “너무나 정서적인 표현”으로 고인은 이를 “강제추방”이라 명했다. ‘강제추방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백기완 선생님의 정신을 이어받아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다짐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LG트윈타워분회 박소영 분회장은 목이 메어 말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또박또박 투쟁의 의지를 전달했다. 박 분회장은 “65세 중년의 나이에 노조를 만들었고 벌써 1년 5개월이 다 되어간다. 노조를 만들기 전의 핍박과 착취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백기완 선생님 말씀대로 목숨을 걸고 노조를 만들어 첫발을 내디뎠다. 엄청난 대재벌과 싸우고 있지만, 선생님의 험난한 발자취 기억하면서 열심히 싸워 꼭 고용승계 받도록 끝까지 투쟁하겠다”라고 밝혔다. 현재 LG는 해고된 청소노동자들을 고용승계하라는 사회적 요구에도 다른 빌딩으로의 취업을 제안해 ‘노조 파괴’ 의혹을 스스로 키우고 있다. 노동자들의 파업농성은 벌써 64일 차다.


고 백기완 선생의 유족인 이종회 사회변혁노동자당 대표도 LG트윈타워를 찾아 백 선생의 정신을 전했다. 이 대표는 “백 선생님이 지난 1년간 병상에 계시지 않았다면, 여러분과 분명 함께했을 것”이라며 “백기완 선생님이 늘 그러셨듯 여러분들의 첫발 떼기를 함께 하겠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이 대표는 이어 “10년 간 임금 한 푼 못 올린 여러분들을 착취해 엘지가 이 건물을 올릴 수 있었다. 백기완 선생님은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래서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사는 사회, 노나메기 세상으로 나아가자고 말씀하셨는데 현실은 너는 놀고 나만 일하고, 너만 잘살고 나는 힘든 세상이었다”라며 “구 씨 그룹과의 싸움에서 노조가 기어이 승리해 백기완 선생님의 노나메기 세상을 열어가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추모행진을 함께한 윤종희 씨에게 백기완 선생은 비정규직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묻자 윤 씨는 몇 마디 채 뱉기도 전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윤 씨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당사자 중 한 명으로 2005년 노조를 결성했다는 이유로 전원이 해고돼 1895일을 싸워왔다. 사회적 합의로 복직 약속까지 받아냈지만 회장은 야반도주했고, 노동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비정규직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윤종희 씨는 “백 선생님은 우리가 절박하게 싸울 때 가장 먼저 달려와 주시고 앞장서 주셨다. 이소선 어머니와 함께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겐 큰 버팀목이었다. 선생님께선 비정규직 투쟁을 시작으로 노동운동 곳곳에 힘을 불어넣어 주셨다. 주저앉아있으면 일어설 수 있도록 불호령 내주시고, 주저앉지 않도록 응원해 주셨다”라고 고인을 회고했다.

이어 “병상에 계신 선생님께서 한번은 다시 일어나 쓰러져 가는 노동자들에게 다시 한번 큰 힘이 되어주시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렇게 떠나셔서 너무 마음이 아프고 아쉽다. 선생님은 한발 떼는 것에 최선을 다하라고 하셨다. 그 한발 떼기에 온 힘을 다하라고 하셨는데, 그런 투쟁을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로 남게 됐다”라고 말했다.


서울역에선 해고노동자 99명이 서울역 로비에 모여 고인을 추모하고, 아시아나항공 본사를 거쳐 서울대병원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행진엔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한국산연, 한국게이츠, 아시아나케이오, 쌍용차, 기아차 비정규직, 삼표시멘트, 삼성전자서비스, 코레일네트웍스, 학습지노조, 유성기업, 대우조선 비정규직(보안산업),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 세종호텔, 뉴대성자동차학원, 이스타항공, 기륭전자, 콜텍 등 비정규직-해고노동자들이 함께했다.

장례식장 방문한 문 대통령, 비정규직의 절규 들었나

[출처: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

한편 같은 날 오전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대병원 백기완 선생 장례식장을 직접 방문해 조문했다. 문 대통령은 유족과 장례위원회 관계자들에게 “평소에 백기완 선생님을 여러 차례 만나 뵙고 말씀을 들었다. 술도 나눈 적도 있고, 집회 시위 현장에서도 늘 뵈었다. 그래서 많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유족은 두 개의 선물을 대통령에게 전달하며 “세월호 진상규명이 선생님의 뜻이었다. 진상규명이 안 되면서 사회적 우려들이 크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될 수 있도록 힘써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두 개의 선물은 하얀 손수건과 백 선생의 저서 <버선발이야기>로 손수건은 통일이 되면 백 선생이 북녘의 어머니 묘역에 올려드리려고 했던 것이고, 책은 노나메기 사상, 민중사상이 담긴 백 선생의 마지막 저서였다.

장례위원회 양기환 대변인 또한 장례위의 입장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양 대변인은 “선생님이 마지막 글로 남기신 말씀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김진숙 힘내라, 노나메기 세상, 노동해방이다. 코로나 사태로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노동자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삶이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는데 대통령이 문제 해결에 나서 달라”라며 “여기 40일 넘게 단식한 송경동 시인도 와있는데, 선생님의 뜻인 김진숙 복직에 관심을 가져달라”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유족에게 말했던 것처럼 “잘 알겠다”라고 답했다.

문 대통령이 조문을 마치고 장례식장을 나서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통령에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김수억 비정규직이제그만 공동소집권자는 “문재인 대통령, 노동존중은 어디로 갔습니까? 비정규직의 피눈물이 보이십니까?”라고 외치며 정부의 노동 정책에 대한 강한 반감을 표했다. 김소연 장례위 상임집행위원장(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운영위원장), 유흥희 비정규직이제그만 집행위원장, 박성호 한진중공업 전 열사추모사업회 대표 등도 ‘비정규직 피눈물’, ‘노동존중이 어디 있습니까?’라는 글귀가 쓴 종이를 들었다. 문 대통령은 잠깐 멈춰 종이에 쓰인 글귀를 보고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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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문 대통령이 조문을 마치고 장례식장을 나서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통령에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김수억 비정규직이제그만 공동대표는 “문재인 대통령, 노동존중은 어디로 갔습니까? 비정규직의 피눈물이 보이십니까?”라고 외치며 정부의 노동 정책에 대한 강한 반감을 표했다. 김소연 장례위 상임집행위원장(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운영위원장), 유흥희 비정규직이제그만 집행위원장, 박성호 한진중공업 전 열사추모사업회 대표 등도 ‘비정규직 피눈물’, ‘노동존중이 어디 있습니까?’라는 글귀가 쓴 종이를 들었다. 문 대통령은 잠깐 멈춰 종이에 쓰인 글귀를 보고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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