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럽고 눈물 나는 1년, 그래도 끝까지 가야지요”

[연정의 바보같은사랑](125) 정년 두 달 남겨두고 투쟁하는 아시아나항공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기노진 씨 이야기

공항 일이 밖에서 볼 때는 화려해보이지만…

“아직까지는 견딜 만해요. 어제는 침낭이 좀 두꺼운 게 올라와가지고 그저께보단 따듯하게 잔 편이에요. 첫날 모포 올라오는데, 3시간 동안 싸웠거든요. 저희가 박영선 후보 낙선운동 하러 올라온 게 아니거든요. 무슨 폭동을 일으키려고 온 것도 아니고. 1000인 해고 사태가 현 정부에서 일어난 거기 때문에 조속한 시일 내에 풀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달라고 요구하기 위해 올라온 거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 캠프농성 4일차인 3월 26일 오전. 농성 중인 케이오 해고노동자 기노진 씨(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케이오지부 소속)는 캠프 측에서 식사 반입을 막으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단식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일하면서 생긴 허리와 어깨 병 때문에 쥐가 나는 거 말고는 그럭저럭 아직은 할 만 하다고 했다.

아시아나항공의 2차 하청업체(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 아시아나에어포트의 하청회사)인 (주)케이오는 김포·인천공항에서 수화물 분류와 기내 청소 등을 하는 회사로,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사장 박삼구)이 100% 지분을 갖고 있다.

기노진 씨는 2012년 이 회사에 입사해 김포·인천공항에서 기내 청소하는 노동자들을 각 비행기 게이트로 이동 시키는 ‘케빈버스’ 운전기사로 일하다가 지난해 5월 해고당했다. 노진 씨는 ‘케빈버스’라는 대형버스에 청소노동자들과 함께 이들이 비행기 청소를 할 때 사용할 비닐팩이나 화장지·핸드타월·물비누·기내책자·물컵을 싣고 하루 종일 공항을 누비고 다녔다. 아시아나항공뿐 아니라 제주항공, 싱가폴항공, 터키항공 등 국내 타사 항공기와 외국항공기에도 노동자들을 이동시켰다. ‘케빈버스’는 원청에서 쓰던 버스를 사용하다 보니 시시때때로 여기저기 고장 나기가 일쑤였다. (아시아나케이오지부 김계월 지부장)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 농성장에서 진행 중인 케이오 해고노동자 투쟁승리 문화제 [출처: 연정]

“공항 일이 밖에서 볼 때는 화려해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늘과 땅 차이예요. 버스도 여름에는 에어컨 작동이 잘 안되고 겨울에는 히터 작동이 잘 안되고 그래요. 청소하러 가는 여성노동자들은 저한테 항의를 해요. 위선에다가 고치라고 하면 맨 날 부품 없다고만 하고. 저희가 버스를 한번 타면 3시간 4시간도 탈 때가 있어요. 식당 문 닫고 할 수 없이 컵라면이나 먹게 되죠. 밥 먹다가도 급하다고 부르면 가야 되고. 감독들이 있는데 빨리 가라고 재촉을 해요. 워키(무전기)로 어디 어디로 가라고 계속 연락이 와요. 거기도 안전 수칙이 있는데, 다 위반해야 되는 거죠. 안전사고도 많이 일어나요. 사고가 나면 운전자가 모든 걸 다 덮어 써야 됩니다. 3교댄데 말이 그렇지, 2교대로 보면 돼요. 너무 힘들었죠. 그렇게 일을 시키다가 하루아침에 그냥 길바닥으로 내쫓은 거죠.” (기노진 케이오 해고노동자)

새벽 6시 출근을 할 경우 원래 오후 3시가 퇴근 시간인데, 야간 근무자가 출근하는 밤 10시까지 근무할 때가 많았다. 야간근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몇 시간 동안 게이트와 게이트를 계속 오가느라 화장실도 못가면서 일해야 했다. 노진 씨는 밖에서 온 몸이 땀에 젖어가며 쓰레기를 치우거나 하역작업 하는 노동자들에 비하면 자신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했다. 기본급은 늘 최저임금인데, 연장수당은 지급이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까. 기노진 씨는 고달픈 일이었지만 정년까지 일하고, 정년 이후에는 다른 노동자들처럼 촉탁직으로 몇 년 더 일을 하고 노후를 보낼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며 열심히 일했다. 코로나19로 항공업계 불황이 시작되었어도 모두 조금씩 어려움을 나누고 견디면 회복될 거라 믿었는데, 회사는 노동자들의 그러한 믿음을 저버렸다.

큰 잘못 저질러 회사에서 쫓겨난 것처럼 되어 버려

지난해 3월 16일 케이오 노사협의회가 유급휴직에 합의했다. 그러나 회사는 4일 만에 이를 뒤집고 희망퇴직 공고문을 게시했고, 무기한 무급휴직 동의서 작성을 강요했다. 무급휴직에 사인을 안 하면 정리해고 하겠다고 했다. (3월 24일, 회사와 한국노총 노조는 노사협의를 통해 무기한 무급휴직 동의서를 작성하지 않는 노동자들에 대한 정리해고 진행과 절차 등을 합의했다.)

정부는 코로나19와 관련하여 항공여객운송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고 휴업수당의 최대 90%까지 고용유지지원금을 지원하고 있었지만, 케이오는 나머지 10%의 자부담조차 하기 싫었는지 이를 신청하지 않았다. 아시아나케이오지부는 고용유지지원금 신청을 통한 유급휴직이나 공평하게 순환 무급휴직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회사는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냥 명예퇴직을 할까? 저도 여러 번 고민을 했는데, 이건 아니다, 결의를 했어요. 우리 끝까지 가자.” (기노진 케이오 해고노동자)

490여 명의 노동자 중에 120 명이 희망퇴직을 했고, 360명이 무급휴직을 신청했다. 회사는 무급휴직 신청자 중에 160명만 근무를 시켰다. 그리고 5월 11일 회사는 희망퇴직도 무급휴직도 신청하지 않은 8명에게 정리해고 통보를 한다. 공교롭게도 8명 전체가 민주노총 아시아나케이오지부 조합원이다. 기노진 씨에게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속상한 기억이 있다.

“저희들을 해고시키기 위해서 회사가 갑자기 인사고과를 했어요. 해고된 사람들이 점수가 다 똑같습니다. 5점 만점에 다 1점이에요. 여성 노동자들 중에는 지각 한번 조퇴 한번 결근 한번 했다고 1점을 줘서 해고시킨 사람도 있어요. 형평성에 너무 어긋나잖아요. 내가 큰 잘못을 저질러서 회사에서 쫓겨난 것처럼 되어 버렸는데, 다 큰 자식들 보기도 창피하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끝까지 가자, 생각했죠. 명예회복은 해야 되잖아요. 납득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게 무슨 해고 사유가 됩니까?” (기노진 케이오 해고노동자)

노진 씨는 회사가 코로나19를 이용해 자신의 입맛에 맞는 노동자들을 골라 쓰려고 정리해고를 했다고 했다. 많을 때는 2백 명 정도 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사사건건 노동법 준수 등 바른 요구만 하니 얼마나 미웠을까. 한국노총의 정리해고 합의로 인해 한국노총 조합원들도 피해를 많이 보게 된다. 남은 160명 중에는 징계를 받았거나 희망퇴직을 신청했던 노동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가하면 모범상을 받았거나 스페셜 파트(비행기 일등석 좌석을 청소하는 파트)에서 일하면서 신입 직원들에게 업무 교육을 했던 노동자는 해고되었다. 사측은 그 평가 기준과 결과를 보여 달라는 해고노동자들의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 공정한 기준도 원칙도 없는 인사평가는 8명을 정리해고 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3월 17일,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 캠프 까지 행진 중에 투쟁사업장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는 케이오 해고노동자들 [출처: 공공운수노조]

무급휴직 재입사 시켜 줄테니 1년 치 임금 퉁 처달라?

6명의 해고노동자들은 해고통보를 받은 지 나흘째 되던 날인 2020년 5월 15일 금호아시아나 본사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했다. 천막은 세 번이나 강제철거를 당했고, 해고노동자들은 지난해 8월부터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그사이 지난해 7월과 12월,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케이오 노동자들이 당한 정리해고가 부당해고라는 판정을 내렸다. 지노위와 중노위는 케이오의 정리해고가 ‘긴박한 경영상 필요에 의한 것으로 보기 어려우며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해고대상자를 선정하거나 노동자 대표와 성실하게 협의하였다고 볼 수 없으므로 부당하다’는 판정 이유를 명시했다. 이에 따라 30일 이내 원직복직과 해고기간 임금 지급 명령을 하였으나 케이오 사측은 복직을 거부하고 돈이 없다며 해고기간 임금 지급마저 거부했다. 그러면서 강제이행금 4천만 원을 냈다. 사측의 황당한 처사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케이오 해고노동자 기노진 씨 [출처: 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케이오지부]

“지노위 중노위에서 부당하다 판정난 거를 사용자 측이 인정 안하고, 김앤장 변호사 3명을 붙여서 행정소송으로 간 거예요. 돈이 없다면서 변호사를 3명이나 고용해요? 저희가 해고된 날부터 노동위원회 판정 날까지 임금을 지불하라는 건데 그 돈도 없다면서 참... 아주 분노가 치밀죠.” (기노진 케이오 해고노동자)

돈이 없어 해고기간 임금도 못준다고 한 회사는 김앤장 변호사 3명을 수임하고 행정소송을 했다. 회사는 지노위 판정 이후 마련된 몇 번의 교섭 자리에서 해고노동자들에게 무급휴직에 사인하면 2월에 재입사를 시켜주겠다고 했다. 그 대신 부당해고 기간 임금은 안주겠단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사측에게 부당해고 인정하고 밀린 해고기간 임금을 최저임금으로 달라고 했으나 회사는 이러한 최소한의 요구도 들어주지 않았다. 법과 제도적인 판단으로 부당해고로 판정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사측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결백을 인정받고 싶어 했다. 회사는 1년 치 부당해고 기간 임금을 무급휴직 재입사로 퉁 치자는 제안을 해고노동자들이 받을 거라 생각했을까?

기노진 씨는 돌아오는 5월이 정년이라고 했다. 함께 해고를 당한 김정남 전 지부장은 4월이 정년이다.

“부당해고 기간 임금도 안주면서 정년 2개월 3개월 전에 무급휴직으로 재입사를 하라니 도대체가 납득이 되질 않아요.” (기노진 케이오 해고노동자)

케이오지부 조합원들이 제기한 2018년도 체불임금 건에 대해서도 지급명령이 내려졌지만, 역시 회사는 행정소송을 넣었다. 노동자들이 60%만 받겠다고 하는 양보안마저 거부했다.

우여곡절이 참 많았어요

지난해 정부는 기간산업안정기금 40조를 긴급 조성하여 국가경제적 악영향을 최소화 한다며 아시아나항공에 기간산업안정기금 2조 4천억 원을 지원했다. 그 돈은 기노진 씨와 같은 항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보장에는 한 푼도 쓰이지 않았다.

  3월 26일 오후,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캠프 농성을 종료하고 캠프 앞에서 촬영한 단체사진 [출처: 공공운수노조 이스타항공지부]

기노진 씨는 지난해 봄에 투쟁을 시작해 사계절을 거리에서 보내고, 지난 3월 10일 정리해고 300일을 맞았다. 6명의 해고노동자 각자의 애환과 사연도 참 많았던 일 년이다. 그나마 최소한 생계의 끈이 되어주던 실업급여도 끝이 났다. 박영선 후보 캠프 농성 4일차 오후 농성이 종료되어 기노진 씨는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그이가 가야할 곳은 서울지방노동청 앞 천막이었다. 기노진 씨는 오늘 밤도 천막 안에서 아픈 몸을 뒤척이며 잠을 청하고 있으리라.

“최근에 두 번이나 입원을 했는데 나이도 있고 천막농성 하기가 쉽지 않아요. 차 소리에 지나가는 술 취한 사람 고성방가에 자다 깼다 자다 깼다 하는 거죠. 지부장도 저도 체중이 5kg이 감소했어요. 그러면서 비가 참 많이 왔던 여름도 보내고 추운 겨울도 보냈네요. 그런 와중에 최근에 아버님 마저 아들이 복직 되는 걸 못 보시고 영명하셨어요. 저희가 그런 우여곡절이 참 많았어요. 그런 거 때문에 더 북받치고 서럽고 눈물 나고 그래요. 그래도 끝까지 가야지요.” (기노진 케이오 해고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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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최근에 두 번이나 입원을 했는데 나이도 있고 천막농성 하기가 쉽지 않아요. 차 소리에 지나가는 술 취한 사람 고성방가에 자다 깼다 자다 깼다 하는 거죠. 지부장도 저도 체중이 5kg이 감소했어요. 그러면서 비가 참 많이 왔던 여름도 보내고 추운 겨울도 보냈네요. 그런 와중에 최근에 아버님 마저 아들이 복직 되는 걸 못 보시고 영명하셨어요. 저희가 그런 우여곡절이 참 많았어요. 그런 거 때문에 더 북받치고 서럽고 눈물 나고 그래요. 그래도 끝까지 가야지요.” (기노진 케이오 해고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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