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으로 사망한 급식실 노동자, 첫 산재 인정

“환기 설비 강화 필요해” 노조, 집단 산재 신청 예정·전수조사 촉구

근로복지공단이 급식실에서 일하다 폐암에 걸려 사망한 조리실무사에 대해 최초로 업무상 질병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해당 질병이 고온의 요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출 물질들로 인한 것이며, 이 폐암으로 인해 노동자가 사망했다는 이유에서다. 관련 노조에 따르면 고인이 암 판정을 받기 전부터 해당 사업장 노동자들은 공기 순한 장치에 대한 개선을 요구해왔으나, 1년이 지나서야 조처가 이뤄진 문제도 있었다. 노조는 앞으로 교육 당국에 급식실 전수조사 요구와 급식실 노동자 집단 산재 신청 등에 나설 예정이다.

지난달 23일 업무상 질병 승인을 받은 A조리실무사는 2005년부터 12여 년 동안 급식실에서 조리실무사로 일했다. 그러다 2017년 폐암말기 3기 판정을 받았고 2018년 4월 4일 끝내 사망했다. 이후 유족은 2018년 8월 3일, 산재보험 유족급여 및 장의비 신청서를 근로복지공단 수원지사에 제출했다.

근로복지공단 직업환경연구원의 업무상심의위원회는 A씨가 “12년 1개월 동안 학교 급식 시설에서 조리실무사로 근무하면서 폐암의 위험도를 증가시킬 수 있는 고온의 튀김, 볶음 및 구이 요리에서 발생하는 ‘조리흄(cooking fumes)’에 노출돼 사망한 근로자의 폐암은 직업성 폐암이며, 이 폐암과 관련해 사망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조리흄은 기름 등을 사용하는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질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국제암연구소도 이 물질이 폐암 발생의 위험도를 높인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번 판정과 관련해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조는 서대문구 마트노조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육 당국에 학교 급식실 공기 순환 장치에 대한 전수조사와 공기 질 개선을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노무법인 승리의 김승섭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급식노동자 최초로 폐암이 산재로 인정된 사례”라며 “산재보험법에는 업무상 질병에 대한 구체적 인정 기준이 없다. 직업성 암에 대해서도 적시돼 있으나, 조리 시 연기 노출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 기준이 없다. 이를 보완해 급식노동자를 비롯한 많은 조리 노동자들이 더 수월하게 산재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선웅 향남 공감의원의 작업환경전문의는 “조리흄 노출을 낮추기 위한 환기 설비를 강화하고, 위험 현장 발굴에 따른 개선 작업을 아주 진지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고인의 동료들은 지난 2016년, 학교 측에 1년 가까이 작동하지 않는 후드와 공조기를 고쳐달라고 요청했으나, 동료 B씨까지 노출혈로 쓰러진 2017년 4월 16일 후에야 수리가 됐다. B씨는 행정소송을 통해 지난해 초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이밖에 이 학교에는 지난 2016년 6월 다른 노동자가 튀김 작업 중 구토 증상을 호소하는 일이 발생한 적이 있으며, 이틀 뒤에는 또 다른 노동자가 감자튀김을 조리하던 중 어지럼증을 호소해 7일 동안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이러한 노동환경이 한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A씨는 1인당 100명이 넘는 식수를 담당하면서 일주일에 2~3회 이상 고온의 튀김 등 요리를 하다 사망했지만, 전국의 급식실이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노조는 “전국의 급식실은 1인당 100명에서 많게는 200명까지 식수를 담당하고 있으며 일주일에 2일 이상 튀김, 볶음, 구이 요리가 조리되고 있다”라며 “한 마디로 전국의 급식실이 현재 발암물질과 함께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관련 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근 노조 지부가 경기도교육청에 관내 20여 개 학교의 공기 질 샘플링을 위한 협조 공문을 요청했으나 6개월째 진행이 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이는 경기도 노동자건강증진센터 예산을 사용하는 것으로, 교육청은 공문만 발송하면 되는 상황이다.

한편 노조는 건강권 단체 ‘일과건강’과 함께 4월 내로 급식실 산재 사건에 대해 전수조사를 시작할 예정이며, 집단 산재 신청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설치하지 않은 시·도교육청에 대해서도 고소·고발에 나서겠다고 전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안전 및 보건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ㆍ의결하기 위해 노동자, 사용자 동수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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