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4월 24일에 광장으로 나가는 이유

[기고] 실업자 항의의 날 집회를 열며

석훈 씨는 확실하진 않지만, 뉴스에서 한 번도 일자리 문제가 나아졌다고 하는 걸 들어 본 적 없는 것 같다. 주위를 둘러봐도 그랬다. 안정적인 직장이 꿈이라던 고등학교 동창, 학점과 스펙을 쌓기 위해 입학부터 노력하는 동기, 기약 없는 합격을 기다리며 새로운 자소서를 쓰는 선배 중 그 누구도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는데 매년 취업난은 심해졌다. 어른들은 노력하라고 했다.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서 실업자 항의의 날 집회 기획단에 참여하기로 마음먹었다.

종원 씨는 평생 ‘청년 실업’의 굴레 속에 살아왔다. “청년 실업 심각하다”는 뉴스를 들으며 태어났고, “청년실업 심각하다”는 말을 들으며 초·중·고등학교를 나왔고, “청년실업 최악이다”라는 말을 들으며 청년이 되었고, 실업자가 되었다. 종원 씨는 말로만 “청년들의 눈물을 닦겠다”며 희망고문해온 정권과, 규제 풀면 청년들 고용하겠다는 자본가들에게 분노를 느낀다. “실업자거나 비정규직이거나”라는 서글픈 선택지를 넘어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본의 이윤을 위한 일자리가 아닌,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희 씨는 안정적이지도 않을 일자리 하나 구하기 위해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하기 싫은 공부를 해가며 몸과 마음이 다 상해가는 현실 속에서 진정한 교육의 즐거움마저 빼앗긴 자신과 또래들이 안타까웠다. 사회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진작 보장해 줬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또, 지희 씨는 국회의원 같은 엘리트들이 문제를 해결해주길 기다려봤자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직접 지켜봤기에 이제는 청년들이 국가를 상대로 화를 내고 더욱더 크게 ‘일자리를 만들어내라’고 소리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준규 씨는 실업 문제가 오로지 이윤만을 생각하는 자본이 일자리를 늘리지 않고 줄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게 분명하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자본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고 ‘공정성’, ‘공공성’을 운운하며 시장 논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 맴돈다. 준규 씨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단언한다. 이 사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하고도 남을 정도로 생산력이 발달한 사회이며, 자본이 진보를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준규 씨는 말한다. 다 같이 자본주의에 한 방을 날려주자.

서정 씨는 어릴 때 부모에게서 지원받지 못하는 단짝 친구를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성공하겠다고 ‘노오력’했지만, 막상 친구가 힘들 때 옆에 있어주지 못했다. 먹고 살기 바빠서, 괜히 친구의 상처를 건드릴 수 없어서 연락을 드문드문 하게 되는 지금이 싫다. 서정 씨는 자기가 친구에게 시간을 내줄 수 있으면서,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친구가 학비와 집 보증금 때문에 스스로를 위험한 일자리에 내몰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일자리를 못 구해 붕 떠있거나, 불안정한 일자리에 매달린 청년에게 발 디딜 땅을 내어주는 것. 사회적 일자리 마련은 그 첫걸음이다.

민재 씨는 진심을 나누고 싶었다. 민재 씨는 친구의 불행이 자기 행복이 되는 자본주의 사회가 지겨웠고, 그래서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들었다. 청년 실업은 기성 자본주의 체제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제일 답답한 문제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당, 정의당 등 선거 때만 되면 앞 다투어 자기들이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호언장담해왔지만, 문제의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에 손대지 못하니 ‘취업사관학교’나 ‘창업 지원’ 같은 변죽 울리는 대책만 내놓았다. 민재 씨는 청년과 실업자들이 기성 정치인들을 믿을 게 아니라 거리로 나가 스스로 대안이 되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실업문제의 근원인 자본주의와 싸우고, '사회가 책임지고 일자리를 제공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호세아 씨는 청년 실업의 홍수 속에서 청년 자신의 문제가 아닌 우리가 사는 세상의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 청년들의 꿈과 희망을 가로막고 착취하는 자본주의 앞에서 누군가는 목소리를 내야할 것 같았다.

이들은 실업자 항의의 날인 이번 달 24일, 토요일 오후 2시에 홍대입구역 인근 어울마당로 광장무대에서 기득권 정치인들에게 청년 실업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라고 촉구하는 집회를 열기로 했다. 이들이 쓸데없는 일을 벌이는 걸까? 이들이 나고 자라는 동안 권력을 잡은 모든 정권이 실업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해결의 실마리조차 잡지 못한 채 더 심화하도록 놔둘 뿐이었다. 결국 2021년 1월 실업자는 역대 최다인 157만 명으로 불어났고, 그다음달인 2월에는 청년층 체감실업률이 역시 역대 최대인 26.8%를 기록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생긴 특수한 상황이라는 말은 변명일 뿐이다. 코로나19는 위기를 당기는 방아쇠 역할을 했을 뿐, 그전부터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가 표면으로 드러났다. 사태가 이지경인데도 정부는 현 체제를 뜯어고칠 생각은 전혀 안 하고, 부풀대로 부푼 거품 경제를 터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공황은 필연적으로, 주기적으로 발생한다. 아무리 애써봤자 체제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거품은 언젠가는 터지고 공황이 거품을 지속시킨 그 시간만큼 더 매섭게 서민 경제를 덮친다.

시장에 맡겨 두면 기업이 성장함에 따라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말 역시 거짓말이다. 자본이 축적되면 될수록 자본 중 생산수단에 투자되는 자본의 비중은 높아지고 노동력의 구매에 사용되는 자본의 비중은 줄어들기 때문에, 자본이 늘어나도 일자리는 그만큼 늘어나지 않는다. 때로는 줄어들기까지 한다.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말은 TV 뉴스나 신문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말이다. 실제로 고용 계수에 관한 통계를 보면, 2000년에는 산출액 10억 원이 늘어날 때 8명이 추가로 고용된 데 반해 2015년에는 단 4.5명만이 추가로 고용되었다. 자본주의는 발전하면 할수록 실업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체제다. 그래서 위의 일곱 사람을 포함한 실업자 항의의 날 집회 기획단은 자본주의 시장에 맡겨서 성장률을 높여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이제 사회가 책임지고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을 요구해야 한다. 실업자 항의의 날 집회 기획단은 청년들에게 공공부문에서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하라고 요구한다. 사실 한편에서 청년들이 실업으로 고통 받고 있지만, 동시에 보육, 교육, 의료, 생태, 산업안전 같은 부문에서는 오히려 인력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에 대처할 수 있는 간호노동자, 아이들을 돌볼 보육교사는 더 많아져야 한다. 따라서 공공부문을 대폭 확대하여 보육, 교육, 의료, 생태, 산업안전 등 사회적으로 필요한 영역에서 일자리를 만들어낸다면 실업 문제는 충분히 해결 가능하다. 또한 노동시간을 주 30시간으로 단축하여 일자리를 만들어낼 것을 요구한다. 임금삭감 없이 주 30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일자리 나누기를 시행하면, 과로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과로에서 벗어날 수 있고, 실업자들은 실업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들의 요구가 ‘실현 가능한 것인가?’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이니, 다른 복잡한 것은 미뤄두고, 한 명의 실업자, 또는 노동자로서 생각해보자. 사회가 책임지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청년들에게 공공부문에서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가 제공되고, 주 30시간으로 노동시간이 단축되고 일자리가 충분한 세상이 정말 비상식적인 세상인가? 이미 우리 사회의 생산력은 충분히 발달해 있다. 선진국 기준으로는 하루에 8시간이 아니라 2시간만 노동해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충분히 생산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렇게 발달한 생산력을 이용하면 모두에게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 반대하는 이들은 오직 자본가들뿐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원하지 않는 것도, 예산 타령을 하며 사회적으로 필요한 부문에서의 일자리 창출에 반대하는 것도 자본가들뿐이다. 그렇다면 150만 명이 넘는 실업자들, 청년들, 노동자들이 함께 힘을 합쳐 한 줌의 자본가들과 싸운다면 실업 문제 해결은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서 실업자 항의의 날 기획단은 자본주의와 싸우고, 청년 실업 문제의 ‘진짜’ 해결을 위해, 실업자 항의의 날 집회를 연다. 집회는 사회주의 대오 추진위원회 주최, 실업자 항의의 날 기획단 주관으로 진행된다. 사회주의 대오 추진위원회는 사회주의 선전보급을 강화하고 사회주의적 선동과 투쟁을 적극화하며 이러한 활동을 통해 사회주의 정당 건설 역량을 구축하기 위해 2020년 9월 6일 출범한 단체다. 이번 달 24일 토요일 오후 2시, 장소는 홍대입구역 인근 어울마당로 광장무대(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348-77)다. 방역을 지키면서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구글 폼으로 ‘온라인 발언’ 신청을 받는다(신청링크: https://tinyurl.com/ps36hx4w). 발언은 집회 당일 화상 채팅 어플리케이션 줌(Zoom)으로 진행해, 차량에 LED 화면으로 생중계할 예정이다. 또, 정식 집회에 앞서 16일 금요일 오후 7시 반에 민주노총 15층 교육원에서 ‘청년 일자리 토론회’를 연다. 그 다음날인 17일 정오에도 홍대입구역에서 선전전을 벌일 예정이다. 이 청년들의 고민을 당신도 해본 적이 있다면, 함께 거리로, 혹은 화면 앞으로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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