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무 줄이고 임금 올려야 옳은 보육

[1단 기사로 본 세상] 보육교사 1인당 아동 수 줄이기 시급하지 않아

[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출처: 경향신문 4월21일 12면]

경향신문이 4월 21일자 사회면(12면)에 서울시가 국공립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맡는 아동 숫자를 줄이는 시범운영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전했다.

보육교사 1인당 아동 수를 줄이면 교사들 노동강도가 줄어든다. 분명 보육교사에겐 좋은 일이다. 그런데 보육교사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건 이게 아니다. 몇 년 전 ‘보육교사 1인당 아동 수’ 기준을 국제 비교한 표를 봤는데, 한국의 교사 1인당 아동 수는 OECD 평균치만큼은 됐다.

현재 우리나라 어린이집에선 만 1세 미만(0세) 반은 교사 1명당 아동 수가 3명이고, 1세 반은 5명, 2세 반은 7명, 3세 반은 15명, 4세 이상은 20명이다. 프랑스 어린이집 0세 반은 교사 1인당 아동 수가 5명까지고, 1~2세 반은 8명, 3세 이상은 제한이 없다. 핀란드도 0~2세 반 교사는 아동을 4명까지 돌본다. 노르웨이도 0~2세 반 교사는 아동을 9명까지 돌본다. 우리나라 어린이집 교사는 담당하는 아동 수 기준에선 핀란드나 노르웨이 등 북유럽은 물론이고 프랑스 못지 않다.



육아정책연구소가 2017년 발표한 ‘교사 대 영유아 비율의 적정 기준 마련 방안’ 연구보고서에서도 “현재 우리나라 교사 대 영유아 비율은 어린이집 영아반(0-2세)의 경우 OECD와 EU 국가자료와 비교할 때 높은 비율은 아니지만, 유아반(3-5세)반은 다소 높은 편”이라고 밝혔다.

한국 어린이집 제도개선의 최우선 순위는 교사 1인당 아동 수 줄이는 게 아니다. 한국의 어린이집 교사들은 선진국보다 절대 뒤지지 않는 돌봄 아동 수인데도 왜 힘들어할까.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첫째 보육교사가 교재 준비부터 급식지도, 청소, 등하원 지도 등 어린이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잡무를 다 떠맡는 구조부터 바꾸어야 한다. 유럽은 교사가 아이 돌봄에만 온전히 신경 쓰도록 다른 잡무가 없다. 그런데 우리 보육교사는 원장의 개인 노예처럼 온갖 행사에 불려 나가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아무리 교사 1인당 아동 수가 적어도 이런 환경에선 늘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결국 불만은 보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만다.

지난 총선 때 경기도 한 어린이집에선 특정 정당을 좋아하는 원장이 교사들에게 그 당을 상징하는 색깔의 옷을 입고 출근하라는 엉뚱한 드레스코드 지침까지 내렸다.

둘째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이다. 전국의 어린이집은 동네 편의점만큼 많다. 전국에 편의점이 4만 개가량 있는데, 어린이집도 3만5천 개쯤 있다. 전국 어디서나 슬리퍼 싣고 나가면 발에 채는 편의점만큼 어린이집이 많다. 어린이집 교사도 26만 5천여 명에 달한다.

이들 가운데 71%인 18만여 명에 달하는 민간, 가정어린이집 보육교사는 대부분 최저임금만 받는다. 보건복지부가 해마다 내놓는 ‘보육교직원 인건비 지급 기준’은 국공립 어린이집에만 적용될 뿐이다. 그렇다고 국공립 어린이집 교사들이 넉넉한 임금을 받는 것도 아니다.

셋째 점심시간 등 휴게시간만 온전히 보장해도 보육의 질은 지금보다 훨씬 나아진다. 아이들 급식지도와 함께 자기들도 밥을 먹는 구조에선 온전한 점심시간이 없다. 근로기준법에 최소한도 책정된 ‘4시간에 30분’ 휴게시간은 어린이집 현실에 맞지 않다.


OECD 나라의 아동 1인당 공적 보육비용 지출만 보더라도 한국 정부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보인다. 교사 1인당 아동 수에선 선진국 못지않지만, 위 표처럼 정부가 보육 예산 지출을 아까워하니 보육의 질은 떨어지고 국민들은 출산 육아를 외면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엉망인 보육 환경을 바꾸지 않은 채 CCTV만 단다고 아동 학대가 줄어들진 않는다. 사건 날 때마다 분노해봐야 소용도 없다. 내 아이의 첫 ‘선생님’이 이런 환경에 놓여 있는 한 상황은 늘 반복될 수밖에 없다.

서울시는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보육교사 1인당 아동 수를 줄이는 시범사업은 나쁜 정책은 아니지만, 정작 시급한 건 다른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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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자본에 대한 욕구도 일종의 본능이란 영역에 포함된다고 합니다....대부분의 공적이나 사적인 기관들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들이 대부분 교사 줄이기나 급식비나 운영비 줄이기에서 그 답을 찾을 수 밖에 없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에 본능에 대한 잘못을 탄하기 보다는 산학련 협동처럼 국가가 적극적으로 민간과의 상생방안을 강구하여 채우고 덜어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