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노동은 전혀 단순하지 않아서

[리아의 서랍]


지난 6월 26일, 50대 여성 노동자가 근무 중 휴식 시간에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그가 맡은 업무는 정원 196명의 대학교 기숙사 건물을 혼자 청소하는 것이었다. 그는 매일 8개의 화장실, 4개의 샤워실을 쓸고 닦으며 100L 쓰레기봉투를 들고 엘리베이터 없는 4층 건물을 오르내렸다. 곤란하고 지저분한 온갖 흔적들이 그의 손길을 거쳐 정리됐다. 코로나19로 배달음식 등의 쓰레기가 늘어, 그가 하루에 옮긴 쓰레기를 다 합치면 1톤가량이나 된다고 한다.

살아 있을 때, 그는 “힘들다”고 말했다. 학교 측은 노동자의 인력충원 요청에 응하지 않았고, 건물 밖 제초 작업까지 청소 노동자의 몫으로 떠넘겼다. 과중한 업무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생긴 후엔 노무 관리 방식을 군대식으로 바꿨다. 아둔하고 부당한 처사였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렇게 힘든 근무 환경을 조성하고, 한계 이상의 업무를 지시했던 관리직 인사 중 직접 건물 청소를 해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청소에 관해 고인보다 잘 아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고인이 겪었던 착취에 분노하며, 그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동시에 그 모든 일을 해냈던 고인의 대단함에 존경을 보낸다.

고인을 비롯한 청소 노동자들은 정말 똑똑한 사람들이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과업을 처리할 효율적인 방법을 파악하고 있었고, 인력충원이라는 정확한 개선책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관리자는 그런 그들을 자의적으로 구성한 필기시험으로 평가하려 들었다. 청소하는 기숙사 이름을 한자로 쓰라, 영어로 쓰라는 등의 말도 안 되는 시험이었다.

청소 및 경비 관련 단순 노무직 종사자의 55%가 중졸 이하의 학력을 가졌다. 학력 차별이 극심한 한국 사회에서, 한자나 영어 답안을 작성하지 못해 속이 시끄러울 사람이 있다는 걸 몰랐을 리가 없다. 누가 몇 점을 맞았는지 다 알도록 했다는데, 서로의 시험 점수를 신경 쓰느라 더욱 힘들었을 청소 노동자의 상황을 생각하면 몹시 마음이 아프다.

캐런 메싱은 노동자, 특히 여성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문제를 다룬 저서 《보이지 않는 고통》에서 1960년대에 잠시 카페테리아 종업원으로 일했던 기억을 꺼낸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영예로운 아이비리그 학생”이었던 그는 종업원으로 일하는 동안 지적인 능력 면에서 가장 큰 굴욕감을 느끼게 된다. 복잡한 주문을 처리하기 힘겨워하던 캐런은 같은 일을 손쉽게 해내는 또래 여성 노동자 비벌리를 보며 “똑똑하다”라고 표현한다.

그는 이후 여러 연구를 통해 저임금 노동자의 숨겨진 기술을 탐색했다. 예를 들면, 제빵공장에서 컵케이크를 포장하는 여성 노동자의 일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매우 쉬워 보이는 그 일은 컵케이크를 쥐는 순서부터 손을 두는 법, 포장지 기계를 고치거나 불량 컵케이크의 모양을 다듬는 일, 실수한 동료를 도와주거나 다른 단계의 작업에서 발생할 문제를 예측하는 일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캐런은 이 업무가 능숙해지기까지 도합 2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숙련된 노동자는 컵케이크를 2.7초에 하나씩 포장하는 반면, 비슷한 종류의 포장을 연구자가 하는 데에는 15초나 걸렸다.

이 이야기는 2005년, 요식업노동조합과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요식업노동조합은 연구자가 된 캐런에게 그들의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구를 제안했다. 노동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똑똑하다는 것을 알려 주세요.”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 알바 노동 시장에서 관심병사 취급받던 시절을 거치면서, 나는 단순 업무가 전혀 단순하지 않다는 걸 배웠다. 육체노동이 고도의 지적 능력을 필요로 할 때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일머리를 타고난 사람에 비하면 나는 거의 한 마리의 짚신벌레나 다름없었다. 캐셔를 하면 시재가 안 맞아서 울고, 조리를 하면 식음료를 망쳐서 울고, 서빙을 하면 눈치가 없어서 울었다. 똑똑한 주변 사람들이 나를 붙들고 일을 가르쳐 줬다.

집기를 닦는 법, 그릇을 들고 내리는 법, 고객의 말을 받는 법 등 사소해 보이는 절차 사이에도 다 숨겨진 노동이 있었다. 하다못해 공장에서 부품을 수납하는 반복 작업을 할 때도 그런 자세로 일하면 어깨 다친다고 자세를 고쳐준 노동자가 있어서 일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렇게 2년 정도 구르고 나니 겨우 한 사람분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는데, 그래도 여전히 나는 몸을 쓰는 일을 할 때마다 새삼 잘난척하지 말고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돌아서서 내가 잘하는 분야로 가면 금방 까먹긴 하지만, 깨닫는 순간에는 처절한 진심이다.

청소 노동에도 청소 노동자가 아닌 사람은 알지 못할 무언가가 있을 테고, 그걸 배우기까지 오래 걸릴 것이다. 사람이 살기 위해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꼭 필요한 일임에도 뭘 이렇게까지 못하나 싶어서 부끄러워지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 지점으로 청소 노동을 모르는 사람들을 데려가고 싶다.

대학 측은 문제의 필기시험에 대해 “청소 노동자들 본인들이 일하는 곳을 더 잘 알게 하고자 함이었다”라고 변명했다. 7월 중순이 다 돼가는 데도 책임 회피만 하는 모습이 한심하다. 그러는 당신들은 일하는 청소 노동자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가? 그들의 노동을 더 잘 알고자 한 적이 있는가? 무지해야 가능한 무시를 멈춰라. 모르면 청소 노동자에게 배워야 한다. 그래야 그런 멍청한 시험 문제를 내지 않을 수 있다. 다시는 단 한 명도 떠나보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다.

사건을 제대로 조사하고,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는 유족과 노동조합의 요구안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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