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정의와 계급, 글로벌 부르주아지

[99%의 경제]


《붕괴(Crashed)―십 년간의 금융위기는 어떻게 세계를 바꾸었는가?》의 저자 아담 투즈(Adam J. Tooze) 컬럼비아대 교수가 탄소 배출량을 계급별로 구성한 글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주로 2015년 파리기후협정을 전후로 기후 정의의 문제설정과 관심이 변했다. 협정 이전에는 대부분 남반구와 국가 간 또는 선진국과 신흥국 간의 누적 탄소 배출량 또는 1인당 탄소 배출량의 격차를 살피는 것이었다. 이후에는 소득수준별, 계급별 탄소 배출 문제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기후 정의의 관심과 대상이 국가에서 계급과 계급집단 등으로 구체화했다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후 위기 대응의 계급적 성격을 구성하고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세부적인 방안까지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국가별 대응과는 양적,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국가라는 장막 뒤에 과연 누가, 어떤 계급이, 어떻게 탄소를 배출해 왔는지의 문제는 곧 에너지 전환의 대상, 의제, 주체, 자금 동원 문제의 계급적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현재의 지배적인 계급구조에서 글로벌 부르주아지들은 이런 문제를 동시에 또 세계적인 수준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전에 마주하지 못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이 계급이 자신의 응집력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이하의 글은 아담 투즈의 글을 다소 변형하여 전개했다.)

기후 위기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문제다. 이것은 ‘생산’의 측면에서 너무나 명백하다. 생산에 고착된 화석연료에 대한 이해관계는 오랫동안 기후 운동의 적이었다. 그것은 ‘소비’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계층, 불평등, 계급 구조는 우리가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방식을 구성하고 또한 에너지 전환의 모습을 만들어 갈 것이다.

1990년대 세계 기후정치의 첫 단계에서 기후 정의 문제의 구성 방식 때문에 이런 측면은 감춰졌다. 처음에는 부유한 국가와 개발도상국 간의 엄청난 배출량 격차에 관심이 집중됐다. 주요 변수는 1인당 CO2 배출량과 지구 온난화의 주요 동인이었던 글로벌 북반구(global North,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누적 배출량이었다.

  1820년부터 2015년, 지역별 CO2

출처: Chancel and Piketty 2015

이러한 지표는 여전히 관심과 비중이 높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간 신흥 시장과 선진국 경제 간의 격차는 좁혀졌다. 무엇보다 중국을 필두로 여러 아시아 경제의 눈부신 성장으로 탄소 배출량이 급증했다. 동시에 많은 국가에서 배출량의 불평등은 더욱 극심해졌다. 오늘날 자동차와 항공의 주요 성장 시장은 아시아에 있다. 소비자 수요의 미래 패턴은 떠오르는 ‘글로벌 중산층 (global middle class)’에 의해 정의될 것 이다. 이에 월스트리트의 자산관리 시장은 유럽과 북미를 넘어 전 세계에 퍼져있는 부유한 계층의 자산을 탐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그 결과 여전히 엄청난 격차로 특징되는 배출 패턴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균형은 더 이상 국경이나 남반구와 북반구의 분할처럼 깔끔하게 잘리지 않는다. Chancel and Piketty(2015)의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CO2 배출량의 불평등은 ‘국가 간 불평등’이 아닌 ‘국가 내 불평등’으로 더 많이 설명되고 있다. 국가 내 CO2 배출량의 불평등은 1998년 글로벌 불평등의 1/3에 불과했지만, 2013년에는 이의 절반을 차지했다.

  세계 CO2 배출량의 불평등: 국가 내(within) 비중과 국가 간(between) 비중

출처 : Chancel and Piketty 2015

이는 어떤 국가가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지 보다 누가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도 같이 큰 국가의 상당수 상류층은 소비와 글로벌 이동성에서 서구 특권 계층의 수준을 누리고 있다. 반면 수억 명의 빈곤 계층은 전기 사용은 물론 깨끗한 요리 도구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오직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런 개인 간 탄소배출의 불평등 문제를 최초로 다룬 보고서가 2007년 인도에서 나왔다. 〈가난한 자 뒤에 숨어(Hiding behind the poor)〉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이 보고서에 따르면, 월 소득 4만5천 원 (3천 루피) 이하 인도 빈곤층 4억3천만 명의 1인당 탄소 배출량(1.1)과 월 소득 45만 원(3만 루피) 이상의 부유한 인도인 1천만 명의 1인당 탄소 배출량(4.97)은 5배 가까이 차이 났다.

  국가별, 인도의 소득수준별 1인당 평균 CO2 배출량 비교
출처 : 그린피스 2007

이는 기후 정의를 위해 어떤 ‘나라’가 아닌 ‘누가’ 탈 탄소 전환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 지에 관한 본질적인 물음을 제기한다. ‘글로벌 북반구(north)’ 국가의 모든 소비가 본질에서 유사하다고 간주하는 것은 소비와 탄소배출의 큰 차이를 무시한 것이다. 배출량이 세계 평균보다 크지 않은 유럽 노동계급은 왜 슈퍼 소비하는 미국이나 싱가포르 부자들과 같은 조건으로 희생해야 하는가? 왜 신흥시장의 백만장자들에게 그들이 배출하는 양에 비례해 감축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안 되는가? 유럽 노동계급의 에너지 소비는 개발도상국 평균보다 훨씬 높지만, 미국이나 OPEC 국가는 물론 유럽의 상류층보다는 훨씬 낮았다. 이러한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Chancel and Piketty(2015)는 기후 위기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에게 ‘글로벌 부담금 (global levy)’을 제안하기도 했다. 소득수준이나 항공 마일리지와 같은 여러 지표로 이 추가 부담금 지급자를 선별할 수 있다고 봤다.

  1990~2015, 소득별 불평등한 탄소배출 증가량의 공룡 곡선
출처 : Oxfam 2020

2020년 옥스팜(Oxfam)과 스톡홀름 환경 연구소는 탄소 배출량의 글로벌 불평등에 대한 최신 연구를 발표했다. 1990년과 2015년 사이 소득수준에 따른 탄소 배출량 변화를 살펴보면 이른바 ‘공룡 곡선 (dinosaur curve)’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1990년과 2015년 사이의 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 중산층을 중심으로 증가했다. 세계 소득 상위 10%에서 탄소 배출량이 빠르게 증가했고 특히 상위 1%에서 급증했다.

이 기간, 세계인구 절반인 소득 하위 50% (약 31억 명)는 누적 배출량이 7%에 불과했고 가용 탄소 예산의 4%만 사용했다. 반면, 세계 인구의 가장 부유한 10%(약 6억3000만 명)는 누적 탄소 배출량의 52%를 차지했다. 25년 동안 세계 탄소 예산을 거의 3분의 1(31%)이나 가져다 썼다. 또한 가장 부유한 1%(약 6,300만 명)는 누적 배출량의 15%, 탄소 예산의 9%를 차지했다. 잘 사는 세계 인구 1%가 나머지 세계 인구의 절반이 배출한 탄소량과 탄소 예산의 두 배를 사용한 셈이다. 탄소 배출량 증가만 봐도, 가장 부유한 5%(약 3억1500만 명)가 전체 배출량 증가의 1/3 이상(37%)을 차지했다. 가장 부유한 1%의 배출량 증가는 세계인구 절반인 하위 50%의 3배였다.

  출처 : 옥스팜 2020

옥스팜이 강조했듯 ‘세계 인구 증가’가 기후 위기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생각은 완전히 잘못됐다.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 또는 아시아 빈곤층에 집중된 인구 증가는 전 세계 탄소 배출량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지속 가능한 개발목표(SDGs)에서 요구하는 것처럼, 현재 전기 공급조차 받지 못하는 소득 하위 10억 명이 기본적인 전기 연결을 받는다고 해도 탄소 배출량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에너지 소비량이며 소득 분배 상위 50%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기후 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세계 빈곤층의 개발 열망이 아니라, 세계 인구의 더 부유한 절반, 특히 상위 10%와 1%의 과도한 소비다. 탄소배출이 많은 항공기 이용을 살펴보면, 가장 부유한 유럽인과 적은 소득으로 사는 유럽인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정확히 보여준다. 유럽이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싶다면, 가장 부유한 시민들의 빈번한 비행을 억제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이 때문에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단거리 항공 여행을 중단하라는 요구가 계속되고 있다.

한편, 옥스팜 데이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럽은 1990년 이후 전 세계 배출량 급증의 주요 동인이 아니다. 가장 부유한 유럽인조차 이 기간에 배출량을 5%만 증가 시켰다. 유럽의 성장은 전반적으로 너무 느렸고 불평등 수준은 세계 공룡 곡선에 크게 기여할 만큼 급격히 증가하지 않았다.

  글로벌 CO2 배출량 증가율, 1990-2015
출처 : 아담 투즈 2021. SEI / Oxfam 2020을 기반으로 한 자체 계산

1990년과 2015년 사이 전 세계 탄소 배출량 증가의 절반(52.5%)을 차지하는 것은 중국이다. 그런데, 중국 인구의 절반인 소득 하위 50%의 배출량은 오히려 줄었다 (-4.7%). 배출량 증가의 2/3는 중산층 (소득 상위 50~10%) 때문이며, 나머지 1/3을 소득 상위 10%가 점유하고 있다. 소득 기준으로 볼 때, 중국은 물론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MENA), 북미 지역의 소득 상위 10%의 탄소 배출량이 상대적으로 크게 증가했다. 인도와 나머지 아시아 지역의 배출량 증가는 전체 탄소 배출량 증가의 1/4을 차지하지만, 배출량 증가는 소득 분배에 걸쳐 고루 퍼져 있다.

세계적으로 볼 때도 결론은 비슷하다. 세계 인구의 절반인 소득 하위 50%의 탄소 배출 증가는 5.3%에 불과하다. 나머지 세계 인구의 절반이 탄소 배출 증가 전체를 이끌었다. 그것도 소득 상위 10%가 탄소 배출 증가의 절반(45.5%)을 차지했다. 지역별로도 비슷한 결론이 나온다. 세계 소득 상위 1%의 글로벌 배출량 증가 (18.9%) 중 북미 19%, MENA지역 27%, 중국은 28.2%를 차지했다.

결국 전 세계 탄소 배출을 감축하기 위해서는 북미, 아랍, 중국과 아시아 상위 10%의 소비 패턴과 생활방식의 변화를 수반해야 한다. 이제까지 소비라는 측면 에서는 개인의 선택(자유 시장적인 소비자 선택)이라는 관점으로 문제에 접근했다. 하지만 소비자의 선택은 제공되는 재화와 서비스의 범위, 그리고 이를 생산하는 시설과 인프라의 유형으로 제한된다. 그러므로 화석연료 소비의 근본적인 변화는 이런 생산과 인프라 결정에 따라 주도돼야 한다.

하지만 개별 소비와 생산·기반구조 결정을 병행해야 한다는 단순한 진단보다는, 누가 이런 생산 시설과 기반구조 설치를 결정 하는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전국적인 언론과 미디어, 소셜네트워크 등을 통해 정책적 선택지를 구성하고 여론을 주도하는 이는 누구인가? 이를 입법하거나 결정하는 사람은 또 누구이며, 기술 솔루션으로 엔지니어링을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국가 공익사업의 관리자부터 고객에게 새로운 태양열 솔루션을 제안하는 전기 사업자 까지, 이 또한 소비 데이터에서 강조하는 소득 상위 10%의 그룹이 기반 구조의 개발과 생산을 주도한다.

이런 관점에서, 개별 소비자의 선택과 이를 유도하고 제한하는 구조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둘 다 소수의 행동에 따른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호함과 상호 얽힘은 에너지 전환의 또 다른 측면인 자금 조달 문제를 고려할 때 더 분명해진다.

향후 수십 년간 경제문제의 핵심은 에너지 전환 투자에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동원 하느냐다. 금융 기술 문제를 제쳐두고라도,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수십조 달러의 청정에너지 자산을 대차대조표에 추가해야 한다. 대부분의 예측가들은 이러한 자산 대부분이 재생 에너지 유틸리티, 국내 태양광 발전, 10억 대 규모의 전기 자동차 또는 새로운 저탄소 배출 항공기와 화물선의 지분 형태 등 개인(사적인) 대차 대조표 증가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심지어 공공부채 발행 등 공공지출로 자금이 조달되는 대부분의 사업도 결국 개인의 대차대조표에 (자산으로) 남게 될 것이다.


개인의 대차대조표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소득과 소비의 분배보다도 훨씬 더 부의 분배가 위쪽을 향해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에너지 전환이 금융자산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한, 에너지 전환은 소득 상위 10%에 의해 유지될 것이다. 또한 그들의 소비는 배출량 증가에서 엄청난 불균형을 초래하며, 그들은 의사결정을 통해 사회의 에너지 인프라를 형성한다. 게다가, 최근의 국제에너지기구(IEA) 연구에 따르면, 이 역시 국제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신흥시장과 저소득 개발도상국들이 에너지 전환을 달성하려면, 대부분은 현지 자산 보유자의 대차대조표에 따라 전환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기울어진 부의 분배, 비뚤어진 소비, 의사 결정력, 재정 능력 분석이 모두 같은 문제로 수렴된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다. 결국 기후 위기 대응은 계급 및 계급 정체성, 계급 관계 및 계급 권력에 대한 분석이다. 물론 기후 위기를 자본주의의 동학과 연결 짓는 분석은 언제든 부족하지 않다. 인류세(Anthropocene)가 아닌 자본세 (Capitalocene)를 논의해야 한다는 사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신조어를 둘러싼 논쟁 외에도, 이러한 문제는 추상적인 개념인 ‘자본’으로의 관심과 분석을 집중시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계급과 계급 집단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과 집중이다.

어떤 조건을 선택하든 에너지 전환이 일어나려면 다음의 결론을 피하기 어렵다. 지배적인(지배계급의) 조건 아래에서, 정책 결정권자, 소비자, 투자자로서 동시에 에너지 전환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사회적 계급, ‘글로벌 부르주아지(global bourgeoisie)’이다. 그리고 그것도 전 세계에 걸쳐 만들어야 한다. 이는 글로벌 부르주아지가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는 종류의 도전이다. 역사가 말해주듯, 아무리 좋은 시기라도 당연하게 여길 수 없는 그 집단의 응집력과 집단 지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도전이다.


[참고자료]
1. Climate, carbon and class, Adam Tooze, 2021.6.28.
2. Financing Clean Energy Transitions in Emerging and Developing Economies, IEA, 2021.6.
3. Confronting Carbon Inequality, OXFAM, 2020.9.21.
4. Carbon and inequality: From Kyoto to Paris, Chancel and Piketty. 2015.11.
5. Hiding behind the poor, Greenpeace India Society,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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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개인의 대차대조표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소득과 소비의 분배보다도 훨씬 더 부의 분배가 위쪽을 향해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에너지 전환이 금융자산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한, 에너지 전환은 소득 상위 10%에 의해 유지될 것이다. 또한 그들의 소비는 배출량 증가에서 엄청난 불균형을 초래하며, 그들은 의사결정을 통해 사회의 에너지 인프라를 형성한다. 게다가, 최근의 국제에너지기구(IEA) 연구에 따르면, 이 역시 국제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신흥시장과 저소득 개발도상국들이 에너지 전환을 달성하려면, 대부분은 현지 자산 보유자의 대차대조표에 따라 전환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