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복직하던 날, 네 번째 해고를 예상했다

[연정의 바보같은사랑](136) 영풍의 네 차례 해고에 맞서 20년 투쟁하는 시그네틱스 노동자들 이야기①

영풍그룹의 네 차례 해고에 맞서 2001년부터 20년 동안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 시그네틱스 노동자들(금속노조 경기지부 시흥안산지역지회 시그네틱스분회 소속)이다.

2000년 시그네틱스를 인수한 영풍그룹은 ‘정규직과 노동조합이 없는 꿈의 공장 시그네틱스’를 만들기 위해 20년 동안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을 네 번 해고했다. 시그네틱스 파주공장을 포함해 영풍전자·코리아써키트·인터플렉스·테라닉스 등 영풍그룹 계열사 모든 공장은 불법파견 혐의를 피하기 위해 수십 개의 소사장 업체를 두고 무노조로 운영되고 있다.

20년 동안 ‘영풍그룹의 해고에 맞서 민주노조를 지키며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투쟁해온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의 최근 일상과 심정을 3회에 걸쳐 독자들과 나눈다.
- <필자주>


영풍그룹 투쟁과 해고는 나의 고향

“너무 예쁘다!”

“색감과 디자인이 너무 예뻐!”

“원단도 시원해 보인다!”


7월 14일 저녁,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이 시끌벅적 하다. 시그네틱스 해고노동자들이 천으로 만든 가방을 보고 있다.

“이건 한 번도 안 쓰고 버리려고 내놨던 건데, 이뻐서 챙겼어. 제대로 걸지도 않고 버리는 현수막이 너무 많은 거야.”


시그네틱스분회 윤민례 분회장이 버리는 현수막을 이용해 현수막 가방과 피켓 가방을 만들게 된 배경을 이야기 해준다. 한복도 만든다는 남옥연 조합원이 이 가방을 만든 주인공이다. 정혜경 씨는 옥상 텃밭에서 길러 수확한 호박을 조합원들에게 나누어준다. 이들의 소란스런 대화와 웃음소리를 들으며 생각한다. 시그 언니들 살아있구나.

“자, 이제 얼른 얼른 사라지세요. 여기 모여 있으면 안 됩니다. 두 사람은 저쪽 건너로 가시고, 여기 두 사람은...”


즐거운 수다도 잠시, 윤민례 분회장이 조합원들에게 피켓팅 할 위치를 정해준다. 7명의 조합원이 피켓 하나씩 챙겨들고 광화문 인근으로 흩어진다. 코로나19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로 인해 말 그대로 일인시위만 할 수 있다.

“나는 영풍그룹 투쟁이 고향이자 그냥 삶이에요. 여기가 내 고향이야. 해고가 그냥 고향인 거야. 영풍에서 시그네틱스에서 해고 없는 삶은 있을 수가 없어. 영풍은 앞에서는 책도 팔고 반도체 생산도 하고 4차 산업 혁명을 선도하는 우수기업이라고 선전을 해요. 그러면서 석포제련소도 그렇고 온갖 환경파괴는 다 해요. 우리 여성노동자들은 네 번 씩 해고해서 길바닥에 있게 하고, 복직하면 일은 안 시키고 또 해고할 궁리나 하는 아주 나쁜 기업이에요. 영풍은 열 번도 해고할 거예요. 노동조합 없고 정규직 없는 공장 만드는 게 영풍의 목표거든요. 나는 이제 정년이 몇 년 안 남았는데, 그때 까지 몇 번 해고가 될 진 모르겠으나 끝까지 간다 이런 마인드에요.”


1987년에 첫 직장인 시그네틱스에 입사해서 올해로 35년 차가 되는 김양순 씨(시그네틱스분회 수석부분회장)는 시그네틱스에서 4번 해고된 장본인이다. 양순 씨는 열 번 해고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시그네틱스에서 마지막 꼭지점을 찍을 거라고 했다. 요즘처럼 더운 날은 '거길 왜 나가?'하는 생각이 턱 밑까지 차오를 때도 있다. 하지만, 막상 나오면 즐거운 마음으로 투쟁을 한다.

  7월 14일, 동화면세점 앞에서 저녁 선전전을 준비하고 있는 시그네틱스분회 조합원들 [출처: 연정]

영어‧수학 시험 보고 입사한 시그네틱스

양순 씨는 시그네틱스에서 반도체 칩 정품과 불량을 구분하는 테스트 업무를 했다. 10~20억에 달하는 고가 장비를 보호하기 위해 작업 공간은 늘 시원하고 깨끗했다.

“그땐 월급날 식당에 쭉 모여서 현찰이 담긴 봉투로 월급을 받았어요. 그런 시대가 있었네. 들어올 때 시험도 봤어요. 수학, 분수 인수분해 이런 거 있잖아. 영어, 기본적인 영작 같은 것도 보고. 시험을 너무 못 보면 떨어져요. 우린 일할 때 제품이나 카드에 영어를 많이 쓰거든요. 수량도 에러나면 안되니까 수학 시험을 본 거 같아요.”


시그네틱스는 반도체 칩에 전기 기능을 연결하고 외부 손상이 가지 않도록 패키징 한 후에 성능을 검사하는 반도체 후공정 회사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은 삼성전자 등 국내기업과 해외로 납품된다. 시그네틱스는 1966년 미국 시그네틱스사가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 설립한 해외 투자법인 1호 기업이다. 국내 반도체 산업의 효시는 1965년 미국의 코미 코퍼레이션이 설립한 한미합자회사 구미산업(트랜지스터 조립생산)이다. 그 다음 해인 1966년 ‘외국인투자및외자도입에관한법률’이 제정되면서 미국 페어차일드, 시그네틱스 등 외국 반도체 회사가 한국에 공장을 설립한다. 그리고 10년 후인 1975년 네덜란드 다국적기업 필립스가 시그네틱스를 인수하여, 1995년 거평그룹이 인수하기 전까지 운영했다. 양순 씨가 근무할 때만 해도 삼성이나 대우, LG에서 업무를 배우러 오기도 했었다. ‘잘 나가던’ 시절에는 4천 명의 노동자가 근무할 때도 있었고, 은행 직원보다 월급이 많을 때도 있었다. 상여금이 600%였던 때라 두 달에 한 번 보너스가 나왔다.

“옛날에 나는 일 끝나면 가는 데가 있었어요. 회사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데야. 골목으로 쭉 내려가면 첫 번째 집이었어. 할머니가 하시는 집인데, 가게 이름이 일번지야. 거기 가서 쫄면이랑 깁밥, 계란 사먹고 그랬어요. 그 옆에는 다원이라는 레스토랑이 있었어요. 시그네틱스 입사하고 맨 처음 정식을 먹었는데, 옥수수 수프였나봐. 그것도 처음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는 거야. 행복했어요. 아, 참... 일번지 위에는 빵집이 있었다. 사라다빵을 그때 처음 먹었잖아. 양파에다가 계란 으깬 거에 속 재료를 듬뿍 넣고 마요네즈를 넣어서 한 거였어. 너무 맛있어서 집에도 사가지고 가고.”


80년대 후반 시그네틱스에 처음 입사했던 때의 이야기를 하는 김양순 씨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난다. 얼마나 맛깔스럽게 이야기를 하는지 입에 침이 고인다. 필립스 시절 시그네틱스가 잘 나가던 때의 이야기다. 회사 앞에는 화장품 가게와 논노·반도패션 등 유명 메이커 옷가게들이 즐비했다.

물론, 시그네틱스의 노동조건이 설립 당시부터 좋았던 것도 아니고, 외국자본 시절 해고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국내 최초 외국인 투자 1호라는 요란한 언론 조명과 달리 설립 당시 백여 명의 여성노동자들은 월 4천 원의 임금을 받고 일했다. 당시, 미국 노동자 평균 임금이 15만원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미국 시그네틱스가 자선사업을 하기 위해 한국에 온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그 뒤 노동조합을 만들고 임금인상과 상여급 지급, 급식개선, 위험수당 지급 등을 요구하는 투쟁으로 노동조건이 개선된다. 필립스는 한국 여성노동자들의 저임금 노동을 통해 반도체 대호황기의 혜택을 누릴 만큼 다 누리고, 더 이상 한국 공장을 유지하는 장점이 없어지자 미련 없이 매각하고 떠났다. 운영하는 동안에는 작은 불황조차 인내하지 않았다. 많게는 2천 명 가까이 자진퇴사를 가장한 대량해고를 하고, 남은 노동자들에게는 상여금 삭감 등을 받아들이게 했다. 그래도 한 사람이 네 번의 해고를 당하는 일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땐 그냥 영원히 그럴 줄 알았지. 이렇게 4번 해고될 줄 몰랐어. 거평 영풍 국내 기업이 인수하면서 이렇게 인생이 꼬인 거지. 노동조합 없애는 게 목적이니까.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7월 28일, 광화문 일민미술관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고 있는 김양순 씨 [출처: 연정]

복직하던 날 해고할 거라는 걸 알았어요

“시골에서 졸업하고 취직을 못하고 집에 있었는데, 아는 사람이 지원해보라고 연락이 와서 들어가게 됐어요. 회사 근처에서 자취를 했는데, 연탄 때면서 풍로에 밥 해먹던 생각이 나요. 반도체 칩에 납을 입히는 공정에서 일했는데, 황산도 만지고 했어요. 3교대가 좀 힘들긴 했는데, 나이가 어리니까 할만 했어요. 외국계 회사라서 다른 데보다 월급이 많아서 괜찮았죠. 결혼하기 전까지는 월급 타면 생활비랑 용돈 빼고 집에 돈도 보냈거든요.” (김은정 조합원, 4차 해고자)


동화면세점 앞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김은정 씨는 1988년 스무 살 되던 해에 시그네틱스에 입사해서 올해 34년 차를 맞이했다. 은정 씨에게도 시그네틱스는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다.

“시그네틱스는 나하고 평생 웬수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한테는 첫 직장이고 시골에서 돈 없이 자란 나한테 돈을 벌게 해주고 결혼도 하게 해준 곳이니까 좋은 점도 있죠. 근데 네 번이나 해고를 하니 솔직히 지겨워요.” (김은정 조합원, 4차 해고자)


2018년 세 번째 해고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났지만, 회사는 노동자들을 출근시키지 않고 휴업을 했다. 노동자들은 위장휴업 소송을 거쳐 1년 만에 생산설비도 없는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시그네틱스 광명사업부로 네 번째 복직을 한다. 일거리를 주지 않던 회사는 결국 경영악화를 이유로 폐업을 하고 9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다. 4차 해고 노동자들 중 7명의 노동자와 1차 해고자 15명 등 총 22명의 노동자가 조합원으로 남아 시그네틱스 파주 공장으로 복직을 요구하며 투쟁을 계속 하고 있다.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은 종각 영풍문고와 강남 영풍그룹, 반월시화공단에 있는 영풍그룹 계열사 코리아써키트·테라닉스 등에서도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세 번째 복직해서는 한 열흘 정도 밖에 못 다녔어요. 2~3시간 정도 육안으로 칩을 검사하는 일을 주고, 그 이후에는 계속 앉아서 시간을 보내게 해요. 감옥 같았어요. 그게 싫으면 스스로 그만두라는 거죠. 또 해고 할 거라는 걸 알았죠. 역시나 70% 휴업수당 주면서 나오지 말라고 하더니 2월에 해고를 했어요. 싸우는 것도 지겨운데, 할 수 없잖아요.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취직을 할 수도 없고, 회사가 미우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내 소신껏 투쟁하는 거예요.”


올해 초, 네 번째 해고를 당한 김은정 씨는 세 번째 복직하는 날 네 번째 복직을 예상했다고 했다. 안 맞아도 전혀 서운하지 않을 그 예감은 신기하게도 딱 들어맞았다. 이제 광화문에서 피켓 대신 돗자리를 깔아야할 판이다. 미래에 올 수도 있는 경영상 위기를 이유로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대법원을 풍자한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밴드의 <서초동 점집>이라는 노래가 있다. 광화문에는 복직하는 날, 다음 해고를 점치는 시그네틱스 해고노동자들의 ‘광화문 점집’이 생길 지도 모르겠다.

  7월 14일, 동화면세점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고 있는 김은정 씨 [출처: 연정]

처음에는 투쟁을 반대하던 가족들도 두 번째 해고 이후로는 별 말을 하지 않는다. 은정 씨의 소신에 대한 존중일 수도 있고, 포기일 수도 있다.

“언니들 다 떨어져 나가고 복직자들도 지금 7명밖에 안 남았어요. 포기할까 고민도 많이 했어요. 돈 준다고 나가라는 유혹도 많았고.. 그런 돈은 승도 안차고, 내 속마음에 ‘이건 아니다’ 그런 게 있어요. 우리가 잘못한 게 없는데, 해고해도 투쟁하고 법으로 하면 또 이길 거다. 2차 해고부터 악착같은 게 생겼어. 오기가 생긴 거죠. 이번 4차도 마찬가지에요. 니네가 해봐라. 나는 또 이길 자신이 있으니까. 저는 끝까지 싸우기로 결정했어요. 1차 해고 때 가장 앞에서 싸우다가 복직 못한 분들은 저보다 더 절망적인 상황인데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복직을 위해 투쟁하고 있잖아요. 금속노조 시흥안산지역지회에서는 돌아가면서 영풍 계열사에서 일인시위를 해주고 계세요. 죄송하면서도 그분들 때문에 힘이 나요.”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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