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40분 노동, 64만 원으로 한 달을 살라고?

[르포] ‘택시 완전월급제’ 시행을 요구하며 싸우는 택시 노동자들 이야기

  8월 5일 세종시 국토교통부를 감싸는 인간띠잇기를 하기 위해 이동하는 택시 노동자들 [출처: 연정]


510일 고공농성으로 완전월급제 법이 만들어졌지만

“법을 빨리 시행하고 지키라는 진정서를 가지고 국토교통부에 민원 진정을 하러 갈 겁니다. 경찰은 막지 마십시오. 우리는 평화적으로 들어가서 진정서를 제출하고 나올 겁니다. 아니면 책임질 수 있는 국토교통부 담당자가 나와서 진정서를 받으십시오. 왜 경찰 뒤에 숨기만 합니까? 우리는 경찰과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길을 여십시오. 왜 못 들어가게 합니까?”


8월 5일 오후, 세종특별자치시 국토교통부 정문 앞.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는 폭염 속에서 택시 노동자들이 ‘국토교통부장관 귀중’이 적힌 진정서 봉투를 들고 경찰 앞에 앉아있다. 국토교통부 담당 부서의 책임 있는 실국장 면담 요청 공문을 세 번이나 보냈지만 답변이 없었다. 일부 국토교통부 공무원들이 나와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책임이 있는 담당 부서 실국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전주 택시 노동자 김재주 씨는 택시 사납급제 폐지와 전액관리제(완전월급제)를 요구하며 지난 2017년 9월부터 510일간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을 벌였다. 그 결과 2019년 8월, 여야 만장일치로 다음과 같은 법이 만들어졌다. 이른바 택시 노동자 완전월급제(전액관리제) 법 조항이다.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약칭: 택시발전법)

제11조의2 (택시운수종사자 소정근로시간 산정 특례) 일반택시운송사업 택시운수종사자의 근로시간을 「근로기준법」 제58조 제1항 및 제2항에 따라 정할 경우 1주간 40시간 이상이 되도록 정하여야 한다.


언론은 ‘30년의 악습’인 택시 사납금이 폐지됐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택시 노동자들이 급여를 받게 되면 불성실하게 근무하는 법인 택시 기사가 생겨 택시회사 수익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보도도 있었다. 8시간 노동에 최저임금을 받으며 근무 태만이라도 한 번 해봤으면 덜 억울했을까?

택시 노동자들은 법이 만들어진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올해 3월, 세종시 국토교통부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그리고 6월 6일에는 부산에서 30년 가까이 택시 노동자로 살아온 명재형 씨(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부산동원택시분회장)가 20여 미터 망루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서울을 제외한 전국 모든 지역의 법인 택시는 5년 이내 범위에서 완전월급제를 시행한다는 11조의 2 부칙이 만들어지고, 택시 사업주가 이를 악용했기 때문이다. 사업주들은 운송수입금(기준금) 인상과 플랫폼 산업 등을 통해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전보다 많은 수익금을 챙기고 있다.

부 칙 [2019.8.20 제16500호]

이 법은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른 날부터 시행한다.

1. 서울특별시: 2021년 1월 1일

2. 제1호를 제외한 사업구역: 공포 후 5년을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제1호에 따른 시행지역의 성과, 사업구역별 매출액 및 근로시간의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날


  8월 5일 국토교통부에 완전월급제 즉각 실시를 요구하는 진정서 접수를 하기 위해 모인 택시 노동자들. 경찰이 막자 정문 앞에서 연좌하고 있다. [출처: 연정]

3시간 30분 근무해서 매월 460만 원을 내라?

“저는 하루 3시간 30분 일해서 월 82만 원을 받습니다. 일을 더 하고 싶어도 배차를 해주지 않습니다. 82만 원 갖고 먹고 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기 왔습니다. 이미 법이 만들어져 있고 시행만 하면 우리도 최저임금은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진정서 제출하러 왔는데, 경찰과 공무원들은 왜 막는 겁니까? 국토교통부 공무원들이 일 안 하고 책상에서 탁상공론할 때, 우리 노동자들은 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전주 수정택시에서 10년 가까이 택시 운전을 해온 기영섭(가명) 씨가 이야기한다. 완전월급제 법안이 만들어지자 회사는 월급제를 한다며 소정근로시간을 6시간 50분으로 정했다. 그리고 올해 다시 3시간 30분으로 줄이고, 차 한대를 4명이 4교대로 운행하게 했다. 이렇게 근무해서 책정된 임금이 월 90만 원이며, 4대 보험 등을 공제하고 실제 82만 원 정도를 수령한다. 회사는 사측 입장을 대변하는 기업노조를 이용해 회사 입맛에 맞는 임단협을 체결했다. 정년이 지나 고용이 불안한 촉탁직 노동자들을 앞세웠다. 그리고 성과급을 준다는 명목으로 매월 기준금 460만 원을 내라고 했다. 하루 3시간 노동으로는 ‘어용노조’의 조합장도, 조합원도 결코 채울 수 없는 금액이다. 회사는 기업노조 조합원들에게는 연장근무로 460만 원을 채우도록 했다. 반면 기영섭 씨 등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는 연장근무 배차를 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회사는 노동자들을 괴롭히기 위해 3시간 30분 근무 중 휴식 시간 1시간 30분을 강제로 사용하게 했다.

“생활하기 정말 힘들죠. 집에 가서 고개를 못 들어요. 대리운전이나 퀵 서비스라도 해야 하는데, 투쟁을 해야 하니까요. 대신에 3시간 반짜리 월급쟁이다 보니 손님들이 하자는 대로 다 해드려요. 손님이 골목 가자 그러면 골목 가고 다 해드려요. 기업노조 사람들은 기준금 벌려고 죽기 살기로 연장근무를 해요. 12시간 하면 180만 원 버는데, 그거 갖고 먹고살기 힘들잖아요. 16시간씩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면 기준금 월 600만 원 정도 찍고 기사가 270~280만 원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심야에 일하는 분이 많아요. 새벽에 일해야 할증이 붙어 시간당 단가가 올라가니까.”


잦은 심야 노동과 불규칙한 식사, 부족한 수면 등으로 건강이 상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늘 피곤한 상태로 일하다 보니 손님과 싸우게 되고, 가까운 거리를 가자고 하면 승차 거부 하는 일도 발생한다. 손님을 한 명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신호위반과 불법 유턴을 하다가 사고도 많이 난다. 사고가 나면 회사는 모든 책임을 기사 탓으로 돌리고 압박한다. 1~2년 전만 해도 60대의 택시를 운행을 했던 회사는 현재 20여 대만 운행하고 있다. 그래도 회사는 손해 볼 일이 없다. 회사가 택시 노동자 1인에게 받는 기준금이 사납금제 당시보다 오히려 100만 원이나 늘었기 때문이다. 회사는 ‘말 잘 듣는’ 소수 노동자들을 기계처럼 부리며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입장이다.

택시 노동자들을 내쫓고 있습니다

“3시간 30분으로 바뀔 때, 6명이 사직서를 쓰고 나갔어요. 30년 일한 사람의 퇴직금이 반 토막 나는데, 누가 있겠어요. 문재인 대통령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겠다고 했잖아요. 근데 양질의 일자리는커녕 저질 일자리를 만들어서 택시 노동자들을 현장에서 다 내쫓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 앞 고공농성장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 택시 노동자들 [출처: 연정]

택시 사업주들의 이러한 행태는 상상을 초월한다. 국토교통부 앞에서 만난 경산시민협동조합 택시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는 회사가 소정근로시간을 2시간 40분으로 정해놔서 한 달에 64만 원을 받고 일한다고 했다. 생활이 어려워 은행에 대출을 받으러 갔더니 갚을 능력이 안 된다며 거부당한 일도 있었다. 충주 하나로택시에 근무하는 한 택시 노동자는 5개월 동안 급여를 전혀 받지 못했다고 했다.

“기준금 352만5천 원을 정해놓고 거기에서 100원만 빠져도 월급을 안 줍니다. 한 푼도 안줘요. 다른 회사는 352만5천 원에서 미달하면 채우지 못한 만큼만 빼고 나머지를 주는데, 여기는 한 푼도 안 줘요. 빚내가며 사는데, 일해도 힘이 안 나요.”


8개월 동안 월급을 받지 못한 동료가 6명이나 있다고 한다. 원룸 월세조차 내지 못해 쫓겨날 상황에 있는 노동자도 있다.

“집회에 참가하신 여러분께 세종 경찰서장의 명을 받아 경고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하고 있습니다. 불법행위는 경찰에게 채증되고 있습니다. 지금 즉시 불법행위를 중지하고 원래 신고한 대로 집회를 진행하기 바랍니다.”


경찰은 진정서를 제출하려는 노동자들에게 계속 경고 방송을 한다. 국토교통부 담당 실국장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국토교통부 모빌리티정책과 과장이 본인이 책임자라며 진정서를 받겠다고 한다. 하지만 택시 노동자들은 진정서가 쓰레기통에 들어갈 것이라며 거부한다. 노동자들은 그가 앞에서는 해결할 것처럼 하고, 뒤로는 택시 사업주들을 위해 일해왔다고 이야기한다.

  국토교통부 앞 고공농성장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 택시 노동자들 [출처: 연정]

완전월급제 시행은 회사와 노동자가 상생하는 길

망루 위 고공농성 중인 명재형 씨가 아래를 본다. 함께 집회를 하고, 밑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한 달 가까이 이어지는 폭염에 멀리서 보기에도 수척해 보인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힘든 날씨인데, 망루 위는 몇 주 째 온도가 42도, 45도까지 올랐다. 결국 명재형 씨는 더위를 먹고 일주일 가까이 앓았다. 음식이 넘어가지 않아 물에 밥을 말아 먹으며 힘겹게 버티는 중이다.

이날 고공농성 60일 만에 처음으로 명재형 분회장의 건강 진료가 있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전충남지회 소속 의사 곽경남 씨가 크레인을 타고 올라가 혈압·혈당·맥박·문진 등 간단한 진료를 봤다. 의료진 곽경남 씨는 전반적인 상태만 확인을 했다며, 명재형 씨가 더위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경찰이 선풍기를 올리지 못하게 막아, 밑에서 손 선풍기를 충전해 올려줬다고 했다. 열대야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다며, 문제가 잘 해결돼서 빨리 내려오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결국 노동자들은 국토교통부 정문 앞에서 진정서를 찢고 허탈하게 돌아선다.

“우리 때문에 고공농성 하는 분한테 힘내라는 말밖에 못하네요. 언제나 미안하고 감사하죠. 사업주는 자기들 호주머니 챙길 방법만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상생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완전월급제하고 기준금 낮추고 60대를 다 운행해도 회사는 충분히 벌어갈 수 있습니다. 저희가 회사를 없애려고 이 싸움을 하는 게 아니거든요. 우리가 일을 안 해서 돈을 못 벌어다 주면 회사가 문을 닫는데, 회사 문 닫게 하려는 노동자는 없어요. 최저임금으로는 생활이 안 되니까 다들 250만 원 정도는 벌어가기 위해 열심히 일 할 거고요. 대신에 너무 피곤하지 않을 만큼 하겠죠. 그러면 사고율도 줄어들어 안전운행하고, 손님과의 트러블도 생기지 않을 겁니다. 사고가 줄어들면 사고에 따른 보험료가 줄어 회사도 이익입니다. 시민에게는 말 할 것도 없고요. 시민의 안전한 이동권이 보장되는 택시 운행이 가능해야 됩니다. 5년 이내에 대통령령으로 시행한다고 되어 있는데, 지금이 가장 필요한 때이니 지금 즉시 시행을 해야 합니다. 필요한 법이니까 만들어놨을 것이고, 필요한 법이 있는데 빨리 시행을 해야죠. 그게 우리 택시 노동자와 회사, 그리고 시민이 상생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영섭, 택시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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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누구라도 의식주 기본권만은 보장되어야 합니다 ..환절기 날씨 주의하시고 늘 건강하시길....

  • 택시노동자

    택시관련법은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법이 현장에서는 왜곡되어서 택시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몰지요.
    법만 만들면 뭐합니까? 시행이 되도 현장에서는 투쟁으로 돌파해야하는 것이 현실인데 시행조차도 안하고 있으면서...
    자율주행택시니 로보택시니 이것저것 동원해서 결국 택시노동자들을 4차 산업혁명의 제물로 쓰려는 것이겠지만 현실은
    https://news.v.daum.net/v/20210902193530097?f=o
    이 지경이니... 웃기지요!

  • 손윤경

    만들어진 법마저 이렇게 악용되다니.노동자들이 생계위협을 받지 않고 건강하게 일할권리를 찾을 수 있을때 우리사회가 좀더 건강한 사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힘을 가진 사람들이 그 힘을 제대로 써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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