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민주적 기후정책,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녹색 스트라이크]


한국의 폭염과 북유럽의 홍수, 터키와 그리스를 휘감은 산불, 미국 서부를 뒤덮은 열돔과 산불에 관한 뉴스가 일상을 덮친 2021년. 올해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 기후 위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됐던 시기로 기억될 것 같다. 여기에 지난 8월 9일,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기후 위기에 관한 포괄적 분석을 담은 6차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섭씨 1.5도 상승에 도달하는 시점이 3년 전 IPCC의 1.5도 특별 보고서의 예측보다 11년 일찍 앞당겨지고, 세기말 지구 기온 상승 범위도 이전 보고서에 비해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결과를 선보였다. 이에 대해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심각한 얼굴로 “인류가 당면한 코드 레드(긴급 적신호)”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국회의 최근 행보는 이런 긴급 상황과 너무나도 거리가 멀어 보인다. 지난 8월 4일, 정부 탄소중립 정책의 컨트롤 타워라 불리는 탄소중립위원회(탄중위)는 비공개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기술작업반’이 작성한 세 가지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안을 발표했다. 이 중 두 개는 아예 탄소중립을 포기한 안이었고 나머지 하나조차 상용화가 불확실한 기술과 연료 전환에 기대는 시나리오였다. 기후, 환경, 노동, 종교 단체들과 정의당, 녹색당 등 진보정당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탄중위 위원마저 “들러리”가 된 것 같다는 고백과 함께 “이럴 거면 정부가 다 하지 왜 위원회를 만들었느냐”라는 유체이탈식 발언까지 했다.

보름 후, 민주당은 기후 위기 대응 법안을 논의하던 국회 환노위에서 야당의 반대에도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을 강행 처리했다. 이 법안도 문제투성이였다. 2030년 온실가스 배출 목표를 IPCC의 권고인 ‘2010년 대비 45%’보다 턱없이 부족한 ‘2018년 대비 35% 이상’으로 명시했다. 곧바로 대통령이 약속한 2050 탄소중립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2050 탄소중립 의무를 법제화하는 대신 ‘목표’라고 수정해 탄소중립을 아예 포기한 것 아니냐는 빈축까지 샀다. 법안에는 이명박 정부 시절을 연상케 하는 ‘녹색성장’을 위한 기업 지원책들만 가득했다. 기후 위기 유발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묻거나, 온실가스로 피해를 받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 보장 조항은 찾아볼 수 없었다.

미국의 비판적 지식인 케이트 아로노프는 오늘에 이르러 “기후변화는 없다”라는 낡은 기후 위기 부정론은 많이 줄었지만 보다 세련된 형태의 부정론이 득세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은 탄소 중립 목표를 세우거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 등을 선언하지만, 그들의 사업 모델이 지속 가능한 미래와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부정한다. 사회체제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파리협약에서 약속한 섭씨 2도 이내의 기온 상승 목표조차 불가능하다는 사실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기업도 아닌 정부와 민주당, 탄중위의 기후 위기 부정론은 심각한 수준이다.

정부 여당에 대한 기대감이 무참히 무너지면서 저항 또한 거세지고 있다. 300개 이상의 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기후 위기 대응 포기하고 민주주의 왜곡하는 탄소중립위원회”와 “국회 환노위 ‘탄소중립 녹색성장법’ 의결을 규탄”하는 논평을 냈다. 노동계와 종교계 등도 정부의 거짓 탄소중립 정책을 비판했다. 이에 정부와 탄중위는 시민 500명을 선정해 ‘탄소중립시민회의’를 구성하고, 2030 온실가스 감축 등 탄소중립 계획을 결정하겠고 발표했다. 곧바로 기후정의포럼과 멸종저항서울,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가 “시민참여를 가장한 비민주적 논의를 규탄한다”라는 연명 캠페인을 벌였고, 이틀 만에 100개에 가까운 단체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이들은 8월 말 허구적 민주주의를 내세워 거짓 기후 위기 대응책을 정당화하는 탄중위와 탄소중립시민회의의 문제점을 다루는 토론회도 열었다.

이러한 비판의 목소리는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멸종반란한국 활동가들은 정부와 국회의 기후 위기 대책을 비판하며 ‘2050년 장기저탄소발전전략 공청회’가 열린 국회 정문에서 자전거 자물쇠로 목을 묶고 시위를 벌였고 13명이 연행됐다. 지난 2월에는 ‘녹색경영’을 표방하는 두산중공업의 해외 석탄 투자를 규탄하는 청년기후긴급행동의 활동가들의 시위가 있었다. 3월에는 정부 여당의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강행 통과를 규탄하는 시위가, 5월에는 P4G 정상회의가 열리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앞에서 멸종저항서울과 멸종반란한국 활동가들의 급진적 행동이 있었다. 비폭력 시민불복종 전술을 활용한 급진적 기후정의운동 활동가 네트워크는 탄중위와 탄소중립시민회의에도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에 지지를 보내면서도, 정부나 탄중위 반대 목소리를 낼 때는 애써 고개를 돌리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런 경향은 그레타 툰베리나 해외 기후정의운동에 보이는 태도와도 겹친다. 그들의 활동에는 열광하면서, 정작 그들의 급진적 주장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동조하기를 주저한다. 오는 9월 24일 툰베리가 이끄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의 전 지구적 기후 행동에는 한껏 기대하면서, 이들이 북반구에 의한 남반구 수탈 문제나 엘리트 및 기업의 배상을 요구하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급진적인 변화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정작 급진적인 비판과 주장이 나오면 움츠러드는 것이다.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선 체제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에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지만, 정작 탄중위 해체 등 기존 체제에 도전하는 요구에는 고개를 돌리는 이들이 많다.

지금까지 단일한 요구로 모여 있던 기후 운동이 바야흐로 분열의 국면에 이른 것 같다. 기후 운동은 얼마 전까지 “기후비상 선언하라”, “탄소중립 선언하라”, “기후 위기 대응 범국가 기구 구성하라” 등 정부와 국회에 기후 위기 대책을 내놓으라는 요구로 뭉쳤다. 그리고 이런 요구들은 거의 ‘수용’됐다. 정부는 탄소중립을 선언한 후 탄중위를 만들었고 국회는 기후 위기 법안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다. 기업들마저 기후 위기 담론에 편승해 장밋빛 약속을 남발하고 있다. 문제는 있지만 나름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듯도 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누구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판을 새로 짜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누구는 정부가 하는 일에 ‘개입’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정책을 만들자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개입’했던 결과가 우리 앞에 놓인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이라면 인제 그만 판단을 내릴 때가 됐다.

현 체제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보이는 대안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가장 비현실적으로 만드는 선택이다.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한 일에 착수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파리 협정 이행규칙이 논의되던 24차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의 마지막 세션 회의장 앞. 그곳에는 수백 명의 기후정의활동가들이 모여 있었다. 맨 뒤에 펼쳐진 현수막은 이런 문구를 담고 있었다: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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