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위원회 청소년 위원은 왜 사퇴를 선언했나

[이슈①] 기후악당 국가가 지운 사람들

차례

① 탄소중립위원회 청소년 위원은 왜 사퇴를 선언했나
② 민주주의의 위기와 기후위기
③ 기후위기, ‘막아내는’ 것이 아닌 ‘함께 겪는 것’
④ 기후정의운동은 ‘사회적 대화’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⑤ ‘기후정의 선언’에서 ‘기후 총파업’ 까지
⑥ [워커스 사전] 탄소중립
⑦ 기후위기, 세상을 멈추는 노동자

  2019년 9월 27일 청소년기후행동이 주최한 '기후를 위한 결석 시위'에서 오연재 활동가를 비롯한 700여 명의 청소년이 청와대 인근에서 행진하고 있다. [출처: 청소년기후행동]

탄소중립위원회(탄중위) 위원에서 사퇴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한순간의 계기가 아니었기에, 정말 오래 고민하고 결정했다. 처음 탄중위에 들어가게 된 것은 단순히 미래세대로 존재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의사결정 주체로서 기후위기 대응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기존 기후위기 정책은 대부분 전문가 위주의 논의로만 이뤄졌다. 아무리 밖에서 이야기해도 실제 전환 방향에서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여지는 없었다. 당시는 문재인 대통령이 탄소중립을 직접 선언한 후에 만들어진 자리였고, 논의 테이블 위에서 당사자가 이야기하는 것이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 것이라고 아주 조금은 생각했다. 그래서 청소년 당사자의 참여로 제대로 된 대응책이 나오기를 기대한 것도 사실이었다. 위원회 추천과 임명, 그리고 사퇴 직전까지 정말 많이 고민했다. 한편으로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리에서 끝까지 버티지 않은 것이 나쁜 선례로 남아 청소년•청년 당사자의 정책 참여 창구를 제한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도 했다.

하지만 탄중위 위원으로 참여한다고 해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제대로 된 논의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었다. 논의 구조는 비민주적이었고, 논의 결과도 기후위기로 많은 영향을 받으며 살아갈 당사자들의 삶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시나리오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이미 정해진 방향 안에서만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다. 그 정해진 방향은 ‘어떻게든 지금까지 탄소배출을 해온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었고, 현재의 정치적, 경제적 논리에만 갇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리를 지키는 것이 과연 미래세대의 의견을 관철할 수 있는 방향인가를 고민했고,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미 막대하게 배출하고 있는 온실가스를 줄이려는 노력 없이, ‘탄소중립 포기’와 ‘기존 시스템 유지’라는 지금의 전제는 그 자체로 잘못됐다. 탄중위는 세 가지 시나리오 모두에서, 산업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과 별 차이 없는 미흡한 수준으로 설정했고, 석탄발전소와 LNG 발전소를 존속하며 불확실한 기술을 제시했다. 이는 탄중위의 논의가 기후위기 영향의 최전선에 놓인 사람들보다 산업계의 이익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무엇보다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결정하는 이 중요한 논의가, 기후위기로 무너져 내릴 사람들의 삶을 배제한 채 현재의 이익과 타협으로만 도출되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었다. 우리는 기후위기로 통제 불가능한 수준의 재난에 노출돼가고 있으며, 식량•주거•노동•빈곤 등 사회 불평등이 극단으로 심화하는 상황을 마주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이 영향을 더 오래 또는 많이 받게 될 사람들은 전문성이 없다는 이유로 이야기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함부로 배제됐다.

기후위기 대응 과정은 사회구조를 전환해가는 과정에서 실제 가장 많은 영향을 받게 될 당사자들의 삶이 고려돼야 한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논의는 미래를 살아갈 청소년과 청년을 포함한 평범한 시민의 삶을 재난으로 밀어붙이게 될 것이다. 탄소중립을 포기한 기후위기 대응 시나리오야말로, 다음 세대에게 기후위기 대응책임을 떠넘기고, 위기를 막기 위한 사회 전환 과정을 방해하는 일이다. 게다가 탄중위 구성에서도 이해관계자를 대변할 산업계 인사들은 충분히 확보한 반면, 노동 및 농민 등의 참여는 보장되지 않았다. 이들의 이야기가 추첨을 통해 모인 500명의 탄소중립시민회의의 짧은 기간의 숙의로 대변될 리 없다. 탄중위가 비민주적이고 대책 없는 논의를 이어가는 동안, 평범한 시민들은 전문가들의 현실성 없는 위기 인식 앞에 안전한 삶을 살아갈 권리를 빼앗겼다.

지금은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 굉장히 중요하고, 놓쳐서는 안 될 시기다. 한국 정부는 오는 10월 말 UN에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출할 예정이다. 또한 비슷한 시기 탄중위 3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최종안도 발표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 논의 구조의 변화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기에, 정부 정책의 논의 구조와 작동 방식을 거부하며 사퇴를 결정했다. 이후에는 시민이 직접 만드는 ‘기후시민회의’를 구성하려 한다.

우리는 더 이상 죽거나 피해를 보아야만 주목받는 기후재난의 피해자로서만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시민이 기후위기 당사자로서 스스로 논의 테이블을 만들고, 기후위기 대응의 대원칙을 만들어가려 한다. 사회 전환 과정과 탄소중립 방향에서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직접 이야기하고 전달하려 한다.

시민 누구나 자기 삶을 위협하는 문제에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듣지 못하는, 혹은 듣지 않는 각자의 이야기를 공론화하고 사회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끌어올려야 한다. 기후위기의 피해는 동등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숙의 과정에서는 더 직접적이고 큰 영향을 받는 당사자의 목소리가 확보돼야 한다. 그래야만 기후위기 상황의 심각성을 대표할 수 있고, 최소 1.5℃ 수준의 대응을 끌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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