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4당의 선거연합, 여전히 건재한 자민당

[INTERNATIONAL1] 정권 교체 기대 속에 치러지는 중의원 선거

일본 중의원이 14일 해산하고 오는 31일 총선을 실시한다. 지난 10월 1일 일본 자민당의 새 총재로 취임한 기시다 후미오 전 정무조사회장은 이날 각의를 열어 중의원 해산 방침을 의결하고 정식 해산을 선언할 예정이다. 중의원의 임기 만료는 10월 21일로, 새 총리는 당초 예상보다 1~2주 먼저 의회를 해산했다.

아베 전 총리의 후임인 스가 전 총리는 도쿄올림픽과 패럴림픽을 발판으로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해 중의원 선거에서도 안정적으로 압승하겠다는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코로나19 감염 확산에도 올림픽·패럴림픽을 강행하며 반발이 일었고, 스가 총리의 애매한 발언과 대화를 피하는 모습으로 지지율이 급하락했다. 심지어 자민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고 결국 스가 총리는 자민당 총재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사실상의 사퇴였다.

당초 중의원 선거에서는 아베-스가 정권의 코로나19 대응 실패가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스가 총리의 퇴진으로 새 총리가 어떤 정책을 표명할지에 따라 선거의 형상은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정권교체 기대와 야당의 부진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일본의 경기침체, 장기 집권한 아베 정권의 적폐, 그리고 코로나19와 올림픽·패럴림픽 무관객 개최에 따른 재정부담 등 집권 여당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일본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 줄 정권 탄생의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야당도 여당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이며 정권 탈취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정권 지지도는 하락하는 반면, 야당 지지도는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 <지지통신>이 9월 10~1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민당 지지율은 26.5%, 공명당은 5.0%로 자민-공명 연립정부의 지지율이 30%를 넘었다. 하지만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지지율은 3.0%, 공산당 2.2%, 사민당 0.2%, 레이와 0.2% 등 야당 세력을 모두 합쳐도 10%가 채 되지 않는다. 투표할 정당을 묻는 질문에는 자민당 49.9%, 입헌민주당 10.8%, 공명당 6.2%, 유신 4.5%, 공산당 3.7% 순이다. 중의원 선거에서 야당 세력이 과반의 의석수를 차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일본 자민당 총리 후보자(왼쪽부터 고노 타로, 기시다 후미오, 다카이치 사나에, 노다 세이코) [출처: 자민당 홈페이지]

정권 교체 열망에도 기존 야당이 집권하지 못하는 현상은 일본에선 익숙한 일이다. 일본은 이른바 ‘55년 체제’에 따른 자민당의 장기 집권이 이뤄져 왔다. 이번 총재 선거에도 극우 여성 정치인인 타카이치 사나에 전 국무상, 주류파인 키시다 후미오 전 외무상, 리버럴로 불리는 코노 타로 백신담당상과 노다 세이코 전 총무상이 출마했다. 자민당이 극우적인 아베 정치를 원한다면 타카이치, 원하지 않는다면 코노를 선택했을 것이다. 기시다를 선택한 것은 큰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어떤 후보를 선택했더라도 자민당의 정치 기조를 벗어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야당의 상황

야당에서도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야당이 정권을 잡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은, 다수의 야당 후보자가 출마해 표가 분산된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야당은 후보 단일화를 통해 세력 결집을 꾀해왔다. 이번 선거에서는 ‘시민연합’이라는 시민단체가 중심이 돼 입헌민주당과 공산당, 사민당, 레이의 ‘4당 공통 정책’ 합의를 이뤄냈다. 이를 통해 복수 후보의 출마를 앞둔 지역구에서는 후보 단일화가 진행될 예정이다.

4당 공통 정책은 각각 독자적인 정책을 갖고 있는 야당들이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양보하는 최대공약수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번에 합의된 공통 정책의 골자는 ①코로나19의 경험을 토대로 의료체계 강화 확충을 도모 ②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 ③소비세 감세와 부유층 증세 등 세제 개혁을 실시 ④원자력 발전소 없는 탈탄소 사회를 추구 ⑤선택적 부부별성(夫婦別姓) 실현 등이다. 야당은 이러한 내용의 공통 정책을 통해 아베 정치가 아닌 진보 정치를 실현하자고 호소하고 있다.

야권의 선거 공조는 오래전부터 시도해 온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공조의 특징은 기존에 참여하지 않았던 일본공산당이 협의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반면 반공 보수적 입장을 갖고 있는 국민민주당은 이번 협의와 거리를 두게 됐다.

4당은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하고 집권할 시, 공통 정책에 따라 정권 운영에 협력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들은 연립정부 구성이 전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공산당과의 연정은 하지 않겠지만 협력관계는 유지한다는 것이다. 비록 연정에 참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동안 배제의 대상이었던 공산당과 협력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공산당이 협의에 참석하게 된 것은 시민연합이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지역 당 조직이 약한 입헌민주당으로서는 공고한 지역조직을 가진 공산당과의 선거 협력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렇다면 제1야당으로 야당의 공동투쟁을 이끌 입헌민주당의 역사를 돌아보자. 입헌민주당은 1996년 히토야마 유키오와 간 나오토가 일본 최대 노총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의 지지를 받아 창당한 정당으로, 민주당의 혈맥을 계승하고 있다. 2009년에 정권을 잡은 민주당은 당 내부적인 대립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대응 실패 등으로 민심을 잃어 하야했다. 이후 2016년 보수계 야당인 유신과 합당해 민진당이 됐고, 2020년 도지사 선거 당시 비교적 진보적인 입헌민주당과 보수색이 강한 국민민주당으로 분열했다.

수권정당을 노리는 입헌민주당은 전국의 폭넓은 계층에서 지지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지역 당 조직이 약하고, 선거 때 렌고의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 렌고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당 운영이나 정책 입안 시 렌고의 의사를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대기업노조 정규직 출신 지도부가 장악한 렌고의 의사는 입헌민주당이 기대하는 폭넓은 유권자층의 민의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입헌민주당은 탈원전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원전기업 노조가 이에 강력히 반발하면서 갈등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원전기업 노조로부터 지원을 받는 국민민주당이 4당 협상에 불참한 이유 중 하나는 4당 공통 정책에 탈원전 공약이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보수정권과 결탁한 대기업들이 어용노조를 통해 야당 세력을 견제하고 있는 것이다. 입헌민주당은 조직된 노동자뿐 아니라 미조직 노동자, 시민, 학생 등 넓은 계층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대중정당이 돼야 확실한 수권정당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8월에는 4당 정책 합의와는 별도로 정당과 노동 및 시민단체 등 진보 세력이 결집해 ‘생명의 안전보장 확립을 위해-비정규사회 탈피 선언’을 공통이념으로 하는 ‘공동테이블’을 출범했다. ‘공동테이블’은 과거의 대립과 분단을 넘어, 보수정치와 대결할 진보적 정치 사회운동 건설의 설계도를 그리기 위한 네트워크다. 이는 어쩌면 보수와 진보의 중간에서 휘청거리는 입헌민주당에 정체성 확립을 요구하는 움직임일지도 모른다.

자민당 총재 선거와 중의원 선거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출처: 자민당 홈페이지]

다음으로 자민당 내부의 상황을 살펴보자. 자민당에는 정책이나 인맥 등으로 형성된 여러 계파(파벌)가 있고, 사실상 이들 계파의 역학관계로 움직인다.

이번 총재 선거 역시 기존 아베와 스가가 소속된 계파나, 이와 가까운 계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후보가 결정됐다. 각 의원이 소속된 계파에 뜻에 따라 투표가 이뤄졌다. 다만 총재 선거에서는 의원 투표와 함께 일반 당원 투표도 함께 실시된다.

아베 전 총재가 속한 당내 주류파가 가장 피하고 싶은 것은 아베 재임 당시 비리 의혹에 대한 재조사였다. 이 밖에도 에너지 정책, 여계 천황 문제 등 주류파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몇 가지 현안들이 있었다.

이번 총재 선거에서는 비주류 계파에 속한 이시바 시게루가 입후보 의사를 밝힌 바 있었다. 이른바 합리적 보수로 분류되는 그는, 아베 전 총재와 같은 극우적 입장을 취하지 않고 각종 비리에 강력한 자세를 취해왔기 때문에 일반 당원들로부터 꾸준한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이시바 시게루는 아베의 의혹에 대한 재조사 방침을 천명하다가 이에 반발하는 주류 계파들의 압력을 받았다. 그 결과 총재 선거 출마에 필요한 추천인이 모이지 않아 입후보조차 할 수 없었다. 유력 총재 후보로 간주됐던 코노 타로 역시, 계파들이 압력을 가해 탈원전이나 여계 천왕 용인 등의 지론을 막았다.

주류 계파가 안심할 수 있었던 후보는 기시다 후미오 후보였다. 조정 능력은 높지만 이렇다 할 특징적인 주장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에선 총선을 감안하면 개혁적이고 국민적 호응을 받고 있는 코노 타로를 총재 자리에 앉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기시다 후미오는 기본적으로 아베-스가 정치를 계승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아베-스가 재임 중 각종 비리와 의혹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생각하면 총선 국면에는 불안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야당이 아베-스가 정부의 실정을 공격하기 쉬운 후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자민당으로서는 새 총재 선출에 따라 중의원 선거 방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아베 정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아베 노선을 호소할 것인가, 자민당의 존폐를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아베 정치를 비판하고 개혁을 호소할 것인가, 혹은 아베 정치를 바꾸자고 외치며 새로운 자민당을 호소할 것인가.

하지만 계파 역학의 정치가 계속되는 한, 총재 선거도 ‘어느 간판(후보)이 제일 평판이 좋은가’를 선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선거 기간 중에는 좋은 말을 늘어놓겠지만 누가 총재가 되든 자민당 정치의 본질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오랜 경기침체와 구시대의 정치 속에서 일본 국민은 나라의 쇠퇴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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