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유전(富者有田)이 아니라 경자유전(耕者有田)

[유하네 농담農談] 농지는 투기의 대상이 아니다

  보름달만큼 동그란 유하와 세하 [출처: 이꽃맘]

가을풍경

‘툭툭’ 앞집 할머니 집 앞 밤나무에서 알밤이 떨어집니다. 가을입니다.

집 앞 논은 누레지고, 대추나무 사이에 심어놓은 들깨 송이에서 하얀 꽃이 떨어집니다. 콩 꼬투리가 단단해지고, 하트모양 고구마 잎도 풍성해집니다. 초록색 대추 열매도 그 크기를 키우더니 붉은빛을 띠기 시작합니다. 늦여름, 때에 맞춰 심어놓은 배추가 자라고, 무도 싹을 올리고 잎을 키워갑니다. 초여름 갈무리해 둔 쪽파 종구를 다시 땅에 넣으니 파란 잎이 삐죽삐죽 올라오고, 고추도 막바지 빨간 살을 익혀가네요.

유하는 풀 속에서 커다란 방아깨비를 잡아듭니다. 쿵더쿵쿵더쿵 찧는 방아깨비의 방아에 유하, 세하의 웃음소리가 마당 가득합니다. 하늘은 파랗고 높아집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달이 둥실 떠오릅니다. 추석 즈음이 되니 달이 점점 동그랗게 차오릅니다. 별만큼 반짝이는 것이 하늘을 납니다. “반딧불이다.” 창문 앞으로 모여든 유하, 세하의 눈빛도 반짝입니다.

풍성하고 아름다운 초가을 풍경입니다.

벌초답

올해는 추석도 빨라 가을도 빨리 왔습니다. 추석이 가까워져 오니 이곳저곳에서 풀 베는 소리가 들립니다. 마을 곳곳의 무덤에 난 풀을 베는 것입니다. 유하 파파도 예초기를 둘러메고 나섭니다. 벌초해야 할 묘가 7개나 됩니다. 이제 막 자리를 잡은 동네에 조상 묘가 있을 리 만무합니다. 유하 파파가 하는 벌초는 집 앞에 있는 밭을 빌리는 값입니다.

예전에 마을에 살던 분들이 돌아가신 뒤 마을에 묻혔습니다. 다들 그렇듯 후손들은 마을에 살지 않습니다. 먼 도시로 이사 간 후손들이 무덤을 관리하기 어려우니 마을에 사는 사람에게 밭을 빌려주고 조상 묘의 벌초를 맡깁니다. 이런 밭을 벌초답이라고 합니다. 유하네가 동네로 이사 오고 농사지을 밭을 찾는다는 소식에 마을 분들이 소개해준 밭이 벌초답입니다. 명절 즈음 되면 유하 파파가 예초기를 지고 나서는 이유입니다.

원칙은 경자유전(耕者有田)

유하네 마을 농지의 대부분은 외지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농사를 지으며 살던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고 농지는 자식들에게 상속됐습니다. 자식들이 시골에 살지 않고, 농사도 짓지 않으니 상속을 받은 자식들은 땅을 또 다른 외지인에게 팔거나 투자를 목적으로 움켜쥐고 있습니다. 농지는 농사를 짓는 사람만 소유해야 하지만 상속의 경우는 예외입니다. 헌법 121조 경자유전의 원칙은, 농지는 농사짓는 사람이 소유한다는 원칙을 명시하고 있지만 여러 가지 예외조항으로 무너집니다. 어느 통계에 따르면 15년 뒤에는 농지의 84%를 농민이 아닌 사람이 소유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외지인들이 농지를 투자목적으로 가지니 땅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갑니다. 농사의 기본은 땅인데 농부가 땅 한 평 갖기가 참 어렵습니다. 농사를 짓고자 하는 사람은 땅을 갖기 위해 농협에서 대출을 받아 빚더미에 앉거나 외지인에게 월세나 연세를 주고 땅을 빌려 쓰는 소작농이 됩니다.

  배추가 자라는 유하네 밭 [출처: 이꽃맘]

불안한 소작농

땅을 살리는 농사를 지으려 하는 유하네는 불안합니다. 빌린 땅은 비가 많이 오면 진창이 되고 비가 안 오면 딱딱하게 굳어버립니다. 농사를 짓기 어려운 진흙밭입니다. 유하네는 이런 땅을 작물이 쑥쑥 자라나는 힘 있는 땅으로 만들기 위해 4년을 노력했습니다. 풀을 키워 베어 눕히고 옆 동네 도정 공장에서 왕겨를 사다가 썩혀 땅에 뿌려줍니다. 4년을 했더니 이제 땅이 조금 포슬포슬해졌습니다.

땅이 좋아질수록 걱정이 쌓입니다. 도시에 사는 땅 주인이 초보 농부 유하네의 노력을 알까요. 배추를 심던 유하 엄마가 “땅이 이렇게 좋아졌는데 땅 주인이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리면 어쩌지?” 합니다. “대출을 받아서라도 우리가 사야지!” 유하 파파가 의지를 담아 답합니다. 아직 갚아야 할 빚도 있는데 걱정입니다.

“트럭 또 올라간다.” 트럭 한 대가 흙먼지를 날리며 유하네 대추밭 뒤로 올라갑니다. 대전에 산다는 땅 주인이 돈을 꽤 준다는 나무 장사에게 몇 년간 땅을 빌려줬다고 했습니다. 떠돌이 나무 장사는 2천 평이 넘는 땅에 도시의 가로수로 인기 있는 벚나무를 잔뜩 심었습니다. 그리고는 풀을 죽인다며 일 년에 몇 번씩 제초제를 뿌립니다. 몇 년 나무를 키워 떠가면 그만인 나무장사꾼입니다. 이때마다 유하파파는 득달같이 달려갑니다. “여기다 약을 치시면 어떡해요. 우리 밭에 약이 넘어오지 않도록 하셔야죠.”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몇 년간 유기농 인증을 받기 위해 인증 비용까지 써가며 지켜온 대추밭으로 한순간에 농약이 넘어옵니다.

투자 놀이터가 된 농지

대통령선거가 가까워져 오니 유력정치인들의 농지 소유가 이슈가 됩니다. 어떤 정치인의 아버지는 세종시에 논을 샀다고 하고 또 다른 정치인은 제주도에 밭을 샀다고 합니다. 농사를 지어야 할 땅이 돈 많은 사람의 투자 놀이터가 되고 있습니다. 유하네 대추밭 뒤에 있는 산도 외지에 사는 산 주인이 공인중개소에 내놓았습니다. 심심치 않게 또 다른 외지인들이 산을 사겠다며 찾아옵니다. 산을 사러 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투자가치가 있는지 묻습니다. 도시 생활에 지쳤다며 멋들어지게 별장을 지을 수 있는지 살펴봅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뒷산은 탄약고가 있는 군사보호 지역이라 잘 팔리지 않습니다

LH 직원들의 집단 투기 사건 정도가 돼야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세우느니 어쩌느니 합니다. 부동산 투기 전수조사를 한다며 요란을 떨지만 결국 피해는 또 농민들, 원주민들에게 돌아옵니다. 현장 조사를 한다며 마을에 등장한 공무원들은 투기꾼들을 골라내기는커녕 이것도 불법이네 저것도 불법이네 마을 주민들의 심장을 콩닥콩닥 뛰게 만듭니다. 정작 외지인들이 산 땅에 있는 불법 농막은 잘 모르겠다며 넘어갑니다. 그저 조사 실적만 쌓으면 그만인 공무원들의 입장에서 농민들이나 지역주민들의 편의 같은 것은 안중에 없습니다.

유하 파파는 “저 산도 우리가 사서 표고버섯이며 산나물을 키우면 참 좋을 텐데” 합니다. “꿈은 크게 가지랬으니 꿈꾸는 것만으로도 좋네.” 유하엄마가 웃습니다. 농지는 진짜 농사를 지을 사람이 가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농민들도 땅을 지키고 지구를 살리는 지킴이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농지는 돈 놓고 돈 먹는 투기장이 아니라 생명을 이어가는 식량창고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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