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진짜 배민과의 천생연분을 끊는다

[리아의 서랍]


배달 음식을 너무 많이 시켜 먹는다. 그게 정말 내 인생의 문제가 되었다. 배달 음식을 끊으려고 앱을 지웠다 깔았다 하는데도, 배달의 민족 회원 등급은 최고 등급인 천생연분에 머문다. 배달의 민족에 위장을 내맡긴 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특히 원고 마감 등 회사 출퇴근 외에 추가로 할 일이 있는 날에는 하루 세끼를 전부, 완전히 배달로 때운다. 오래 일하느라 힘드니까 막 아침 점심 저녁 사이사이에 커피와 디저트까지 시켜 먹는다. 지금도 모니터에서 눈을 떼기만 하면 책상 주변에 다 마신 커피잔 세네 개와 엉망진창으로 뜯어먹은 과자 봉지 따위가 눈에 들어온다.

정신없는 ‘일’의 파도가 지난 후 남은 배달 음식 플라스틱 용기를 정리하다 보면 내가 환경 부문에서 굉장히 언행이 불일치하다는 자괴감이 든다. 기후위기와 동물의 권리를 걱정하는 주제에 이렇게 살면 안 된다. 플라스틱은 백 년 천년 매장해도 썩지 않는다. 지구 구석구석 각종 동식물의 몸을 거치며 잘게 부서져 미세 플라스틱이 될 뿐이다. 불에 태우면 유독성 물질이 나와 대기를 심각하게 오염시킨다. 인간이 그 뒤처리를 감당할 수 없으므로 안 만들고 안 쓰는 게 맞는데, 나는 다 알면서 또 이런 짓을 했다. 그렇게 괴로워한 다음 날에는 나름대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여보겠다고 굳이 샐러디에서 단호박 두부 샐러드 같은 걸 골라 먹어본다. 그건 그나마 종이 박스에 담겨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이도 결국 나무를 베어 만든다. 산림을 보호하기 위해 종이를 아껴야 한다고, 휴지 한 장도 아껴 써야 한다고 초등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나. 이미 제지 산업은 2018년 기준 약 550만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거대한 산업이 됐다. 지금 같은 상태에서 플라스틱 포장 용기를 전부 종이로 대체 했다가는 나무를 비롯한 물과 에너지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플라스틱 활용이 종이 소비로 인한 환경 파괴를 지연 시켜 준 측면도 있다는 건 이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가장 바람직한 행동은 다회용기나 장바구니를 들고 가까운 시장에서 직접 식자재를 사 요리해 먹는 것임을 안다.


몰라서 하는 잘못도 아니고 원해서 먹는 음식도 아니다. 배달의 민족과 천생연분 되기, 너무 끔찍한 사건 아닌가? 당연히 내게도 그럴듯한 버전의 변명이 있다.

나는 엄청 열심히, 많이 일하는데, 10대 때부터 일했는데, 왠지 자꾸 돈이 없다. 어쩌다가 추가 수입이 생겨서 저축하려고 두면 딱 그만큼의 지출이 생긴다. 지난달에는 강의하고 받은 돈 21만 원이 남아서 잠시 기뻤는데, 냉장고가 고장 나는 바람에 고스란히 21만 원짜리 냉장고를 사게 됐다. 정말로 모든 수입과 지출이 이런 식이다. 일하느라 돈 쓸 시간도 없고, 일해 봤자 돈이 생기지도 않으니 어찌어찌 기묘하게 균형이 맞는 상태로 살아진다. 그러니까, 여기서 일을 그만두면 굴러떨어질 곳은 죽음뿐이다. 한 치의 과장도 없이 그렇게 느낀다.

굴러떨어지지 않으려고 해야 하는 일을 하다 보면 일 외의 생활이 처참해진다. 퇴근해서 집안일을 살피며 직접 밥을 해 먹으면 저녁을 밤 10시에나 겨우 먹게 된다. 며칠 그렇게 살다 보니 일할 수 있도록 자신을 돌보는 시간이 임금노동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번은 차라리 안 먹고 쉬는 게 낫다 싶어서 굶어가며 대충 살아봤다. 곧 병에 걸리더라. 시장이 요구하는 정도의 노동력을 내놓으려면 남이 해준 밥 먹고 남이 세탁해준 옷 입고 남이 치워준 집에서 자야 하는 것 같다. 혼자서는 도저히 못 하겠다.

배달 음식은 이런 내 삶에 꼭 맞는 한 조각 퍼즐, 운명적으로 다가온 상대 같다. 예로부터 배달 음식이란 밥 먹을 시간을 따로내기 어려운 노동자가 살기 위해 먹는 밥이었다고, 2021년의 배달 음식은 그 확장판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얘기일까? 언제 손님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시장 바닥이나 상가 옷 가게 같은 곳에서 허겁지겁 입안에 털어 넣는 백반, 야근하는 직장인이 꾸역꾸역 삼키는 야식, 혹은 이사하는 날, 주방을 쓸 수 없어서 먼지 날리는 바닥에 앉아 신문지 깔고 시켜 먹는 짜장면 같은 거. 세상엔 여유와 즐거움을 위한 배달도 많다는 걸 알지만, 내 몫의 배달 음식은 좀 그렇게 생겼다.

그래서 어쩌라고? 아니 그런데 진짜 솔직히 음식 배달 서비스…나 같은 사람 밥 먹이면서 굶어 죽지만 않게 부려먹으려는 자본주의의 기획 아닌지…. 아, 아니다. 지금은 변명할 때가 아니고, 변화할 때가 맞긴 하다. 어쨌든 지금부터라도 그만 시켜 먹어야 한다. 우아한 형제들 2020년 매출액이 1조 995억 원이라는데, 관련 쓰레기 규모도 규모지만, 누구 것인지도 모르는 아가리속으로 착실히 입장료 내고 걸어 들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에 너무 ‘현타’가 온다. 글 나온 김에 배달의 민족 앱 삭제하러 가야겠다.

나는 요즘 매주 금요일마다 OFF magazine에서 살림에 도가 튼 안담을 강사로 모셔 <냉장고 파먹기 워크숍>이라는 걸 진행하고 있다. 담과 함께 실현 가능한 식단을 짜고, 나물을 무쳐 보고, 채소와 과일을 신선하게 보관하는 법을 배우는 등 여러 실습을 하다 보면 다음 달엔 배달 음식을 좀 덜 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용기가 생긴다. ‘일’로써 시간을 따로 빼 다른 사람과 함께 해 보니까 요리든 뭐든 훨씬 할 만하다고 느껴지는 것도 신기하다.

물론 워크숍 좀 한다고 뭐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쉬우면 애초에 인생의 문제가 되지도 않는다. 아무리 앱을 삭제해도 다시 깔게 되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이대로 무력하게 사회 탓만 하기 싫어서 꼼지락 움직여는 본다. 실제로 사회 탓이어도, 어떻게 해 지금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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