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감세’ 주장만 할 텐가

[1단 기사로 본 세상] 1979년 조세부담률 20% 넘었다고 불안 조성했는데

[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덴마크는 세계최고 수준의 조세부담률을 갖고 있다. 2007년 기준 덴마크 국민의 조세부담률은 48.4%로 세계 최고였다. 2위 스웨덴도 47.8%에 달했다. 조세부담률은 국내총생산(GDP)에서 국세와 지방세 등 조세가 차지하는 비율로 국민의 조세 부담을 측정하는 대표 지표다. 조세부담률이 높은 나라는 대부분 북유럽 복지 선진 국가들이다.

2007년 덴마크 국내총생산(GDP)의 절반가량을 세금으로 만든다는 소리다. 90년대 복지국가 위기 때 덴마크는 공공부채가 GDP의 80.1%에 달했지만 2007년 26.0%로 크게 줄었다. 공공부문이 경제 운영의 절대적 강자로 등장했다. 덴마크의 고용보험(실업급여)은 조세로 대부분 충당한다. 실업급여 재원은 노동자와 자영업자 등 가입자가 정액으로 내는 보험료와 일반재정지원, 노동시장 관련 조세로 마련한다. 노동시장 조세는 노동자와 자영업자 등 모든 소득자에게 무려 8%가 세금으로 부과된다. 실업급여 재원 80%를 이처럼 일반 조세에서 충당한다. 덴마크의 조세부담률은 지금도 세계 최상위권이다.

반면에 한국은 어떨까. 2007년 국가예산이 책정한 복지 관련 지출은 국민총생산의 6%를 약간 웃돌아 유럽 복지 선진국의 1/5을 넘지 못했다. 실업급여의 소득대체율은 선진국의 1/4 정도인 20%도 안 됐다. 극빈층에게 주는 공공부조는 특히 낮아서 복지 선진국의 1/10 수준이었다. 국가 복지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차상위계층의 비율은 총인구의 거의 10%에 달했다.

한국의 노조 조직률과 단협 적용률은 모두 OECD 최하위권이라, 중앙 교섭이나 연대임금 정책을 펼 여력도 없다. 노동조건은 거의 100% 기업 내부 노동시장에 의존하다 보니 죽기 살기로 정규직, 특히 잘리지 않는 정규직인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이 되려고 공시생들이 폭증하고 있다. 기업 지배구조의 비민주성 때문에 저임금과 고용불안정이 낳은 이중 노동시장 문제가 외부 노동시장과 국가 복지체제에 전가되고 있다.

덴마크는 14년 전에 조세부담률이 50%에 육박했는데, 우리는 올해 첫 20% 돌파가 예상된다는 기획재정부 자료에 조선일보가 지난 9일 10면에 ‘국민 조세부담률 올해 첫 20% 돌파’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2021~2025년 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올해 조세부담률은 지난해 19.3%보다 높아진 20.2%가 된다.

한국은 선진국은 물론이고, 국민소득 수준에 비해서도 조세부담률이 지극히 낮은 데도 조세 저항이 남달리 강하다. 한국에서 조세 저항의 역사는 뿌리가 깊다. 이를 부추긴 언론의 책임이 크다.

이처럼 낮은 조세부담률 때문에 한국의 복지 지출 규모는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일 뿐만 아니라 제3세계 평균도 안 된다.


출판인 고 한창기 선생이 1979년에 펴낸 ‘70년대의 마지막 말’이란 책에 실린 당시 김성두 조선일보 경제담당 논설위원의 글도 2021년 조선일보의 조세부담률 보도와 닮았다. 김 논설위원은 “1975년 우리나라의 조세 부담률은 17.1%였는데 1981년에는 21.5%가 될 전망”이라는 재정 당국의 발표를 언급하면서 “조세부담률을 21.5%로 잡은 건 무리”라고 질책했다. 1979년과 2021년, 42년이 지났는데도 조선일보의 ‘감세론’은 참 한결 같다.

그래도 1979년엔 양심은 있었다. 김 논설위원은 조세부담률의 급격한 인상을 경계하면서도 “조세부담률만으로 따진다면 우리나라 반드시 높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른 나라의 조세부담률을 보면 1973년 스웨덴은 42.5%, 프랑스와 서독 영국은 대체로 35% 안팎이었다. 미국은 28%, 일본은 22.6%”이라며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들의 조세부담률이 높은 걸 인정했다. 나아가 김 논설위원은 “조세 부담률이 높은 나라일수록 사회보장 제도도 그만큼 더 완벽하다. 국민으로부터 거두어들인 무거운 세금은 대부분이 고도의 사회복지 수준의 유지를 통해 국민에게로 환원되기 때문에 실질 부담률은 아주 낮다”고 경제 전문가다운 면모를 보였다.

언론은 1979년에 국민 조세부담률이 20%가 넘어선다고 우려했는데, 42년이 지난 지금도 조세부담률은 제자리다. 증세 하지 않으면 공공부조와 아동수당, 지방재원 지원 등 급격히 늘어날 재정 수요를 어찌 감당하라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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