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토론하고 싶었던 사람, 변희수 하사에게

[레인보우]


안녕하세요. 늘 마음으로만 써보던 편지를 이제야 제대로 써봅니다. 오늘은 또 한 번 변희수 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날이었거든요. 이 편지를 쓰고 있는 2021년 10월 22일, 법무부 장관이 육군참모총장에게 군이 제기한 항소를 포기하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입니다. 군은 당신에 대한 전역 처분이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준비하던 중이었지요. 아무튼 그러한 군의 항소 결정에 분노하던 차에 법무부 장관이 직접 항소 포기를 지시하다니, 다소 놀라우면서도 이런 결정들이 왜 이제야 이루어지는지 참 속상하고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편 법무부는 “이 사건 판결은 성전환자의 군 복무를 인정하여야 한다는 취지가 아니고”, “성전환자의 군 복무 인정 여부는 추후 관련 규정의 개정 검토, 군의 특수성 및 병력 운용, 국방 및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 국민적 공감대 등으로 종합하여 입법적·정책적으로 결정되어야 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여 두었더군요. 당신이 ‘사건 처분 당시 여성’이었기 때문에 음경 상실, 고환 결손 등을 이유로 한 전역 처분은 부당하다는 법리적 해석 이상의 의미는 섣불리 부여하지 말라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법무부의 지휘에 따라 국방부도 “군의 특수성, 국민적 여론 등을 고려한 정책연구를 통해서 성전환자의 군 복무 여부를 면밀하게 검토하겠다”라는 입장문을 냈습니다만, 저는 문득 지난해 3월 당신이 <한겨레>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변 하사님은 당시 기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중사와 상사 중에도 트랜스젠더가 있어요. 장교 중에도 있고요. 그분들도 앞에 나오셔서 좀 더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게요. 법무부와 국방부가 인정하든 말든, 지금 군에는 여러 트랜스젠더 군인들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방부는 트랜스젠더의 군 복무를 인정할지 말지를 검토할 것이 아니라, 이미 트랜스젠더 군인들이 존재하고 지금까지 함께해 왔다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면 될 일입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정책 연구는 현재 복무하고 있는 트랜스젠더를 포함해 앞으로 복무하게 될 이들이 어떻게 하면 차별 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존중받고, 역량을 잘 발휘하며 군 생활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내용으로 진행하면 되겠지요. 당신이 어렵게 길을 내었으니, 이제 조금씩 그 길을 넓혀가야 하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그러고 보니, 그 기사에서 변 하사님은 생계에 대한 이야기도 했어요. 군인 연금 대상도 아니어서 전역 결정 이후에 바로 돈을 벌어야 했는데 코로나19로 사람을 잘 안 뽑아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고요. 트랜스젠더인 당신이 고등학교 때부터 한 길만 바라봤던 군의 의미와, 그곳에서의 전역 결정이 생계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는 이 사회가 아마 짐작하기 어렵겠지요. 솔직히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일을 계기로 저는 그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곳이 단지 군대라는 조직이 아니라 당신의 평생의 일터이자 삶터였다는 점에 대해, 그곳을 떠나게 되었을 때 다른 삶의 자원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을 것에 대해 말입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진행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는 트랜스젠더의 85%(500명)가 월 평균 임금 200만 원 미만을 받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높으며, ‘현재 소득 없음’에 응답한 비율도 55.4%(326명)에 달한다는 걸 보여주었습니다. 반면에 자영업을 하고 있다고 응답한 트랜스젠더는 10.5%로 다른 성소수자 그룹(동성애자·양성애자)보다 4.7%보다 높았죠. 주민등록번호에 따른 문제나 이 사회의 성별 규범으로 구직과 취업 자체가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채용 후에도 입사가 취소되거나 채용이 거부된 경우도 많았고, 직장에서의 차별과 부당대우, 해고, 권고사직 경험 비율도 높았어요.

그런데 또 많은 트랜스젠더가 가정에서 학대를 경험하고 쫓겨나거나 일찍 집을 떠나게 되는 상황은 삶의 기반을 더욱더 어렵게 만듭니다. 당신 또한 일찍 집을 떠나왔고 부사관 양성 목적의 고등학교를 선택한 데에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큰 영향을 미쳤겠지요. 그렇기에 당신에게 군은 그만큼 더 중요한 공간이었을 것입니다. 그 의미를 저는 이렇게 뒤늦게야 깨달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몇 년 전부터 스페인, 폴란드,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3.8 세계 여성의 날을 기해 열리고 있는 ‘여성 총파업’에서는 트랜스젠더의 노동과 주거, 부채에 대한 요구가 중요한 의제로 포함되고 있더군요. 차별과 학대를 방치함으로써 불안의 비용을 부채로 감당하게 하는 이 세계의 착취 구조에 대해 이제 우리도 같이 토론하고 나설 때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이것도 이제야 말이지만 나는 당신과 군대에 관해 토론하고 싶었다는 걸 말하고 싶네요. 전역 처분이 취소되고 나면 ‘기갑의 돌파력으로’ 차별을 없애겠다고 말한 당신과 함께, 당신이 좋아하는 그 전차와 군대에 대해 ‘빡세게’ 토론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보곤 했습니다. 당신은 이제 멀리 있지만 이렇게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으니 언젠가 또 그런 날도 오겠지요. 나는 당신의 당신을, 또 다른 당신을 만나겠습니다. 부디, 잘 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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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어려운 상황을 끝내고 하루속히 합리적인 결과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늘 건강하시고 따스한 겨울 되시길....